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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책임 안 지는 일본의 ‘무책임 시스템’ 통렬 비판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일본의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 교수. 1996년 타계한 그는 2차대전후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에는 두 명의 덴노(天皇·천황)가 있었다고도 한다. 히로히토(裕仁·1901~1989)와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사진)다. 당시 도쿄대 교수였던 마루야마는 ‘학계의 덴노’ ‘마루야마 덴노’라고 불릴 만큼 전후 일본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올해는 마루야마 탄생 100주년. 일본에선 그를 기념하는 학술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에서도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한국과 일본 학자들이 참석한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동아시아 사상: 근대성, 민주주의 그리고 유교’. 이번 학술회의에선 마루야마가 연구했던 사상과 철학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던 마루야마는 일본이 근대화를 위해 문호를 개방했던 때부터 군국주의와 초국가주의를 통해 2차 대전을 일으켰던 과정을 면밀히 성찰했다. 특히 그는 일본이 패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냉철히 분석했다. 그는 일왕을 정점으로 한 ‘대(大)아시아주의’가 일본이 2차 대전을 일으킨 명분이라고 지적했다. 대아시아주의는 일왕이 추구하는 정의를 일본 외에 아시아와 세계로 전파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개념이 일본의 내셔널리즘·군국주의와 맞물려 한국·중국·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시켰다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국제학술회의엔 마루야마의 수제자로 불리는 와타나베 히로시(渡辺浩)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가루베 다다시(苅部直) 도쿄대 교수, 김영작 국민대 명예교수, 박홍규 고려대 교수 등 양국 학자 20여 명이 참가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축사를 통해 “역사인식 문제로 인해 한·일 양국이 향후 지표 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대한 방향 설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번 학술회의가 열렸다”고 말했다.

박충석 이화여대 명예교수
도쿄대에서 마루야마를 사사한 박충석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참가했다. 그는 1962년 일본에 유학, 72년 마루야마를 지도교수로 삼아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에게 마루야마의 사상과 최근 일본의 우경화에 따른 동북아 정세 변화를 들어봤다.

-일본 학자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를 국내에서 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
“그만큼 일본 근현대사에 있어 마루야마의 연구 업적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루야마는 일본의 천황제와 군국주의 등 2차 대전 직후 지식인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을 뛰어난 통찰력으로 분석한 학자다. 그는 패전 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본의 지도자들과 사회를 통렬히 비판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어떤 지식인도 천황 등 전쟁 책임자들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마루야마는 당시 일본의 이런 상황을 ‘무책임의 체계’라고 규정했다. ‘이런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가 있을 수 있냐’고 개탄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마루야마는 ‘일본이 천황을 구심점으로 한 군국주의를 통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로 인해 이웃 아시아 국가들을 원치 않는 상황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럼 국가는 어떻게 운영돼야 한다고 봤나.
“마루야마는 국가의 방향이 국민 스스로의 자율의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국민의 판단과 주체적 사고를 바탕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주의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영구 혁명론’이다. 그는 철저한 합리주의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주의자다. 그의 철학에는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고유한 민족주의를 해치는 행위를 일본이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패전 후 일본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당시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군국주의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에서 우경화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는 듯한데.
“예견된 일이다. 아베의 정책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본 문화와 민족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아베의 정책은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마루야마는 일본인들의 세계관을 ‘이키오이(勢·떠있는 세계·floating world)’라고 규정했다. 세상의 흐름은 하늘의 구름이 떠다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은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인다. 상황에 따라 세상이 항상 변한다는 의미인데 일본 문화를 이키오이 문화라 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이같은 상황주의에 민감하다. 아베 정부의 움직임도 상황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지난 16일 아베가 의회에서 ‘주일 미군이 한반도에 출동하려면 (미·일 안보조약상) 일본의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발언한 것도 이와 맥락을 함께 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 등으로 한국과 중국이 밀착해 역사 인식 문제 등으로 일본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에 대처한 것이다.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은 이런 상황주의에 대항해 일본을 민주적인 규범문화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일본 우경화 분위기는 아베 정권 이전에도 있었는데.
“우경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인물이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다. 그는 1982년부터 5년 간 총리를 맡았다. 그는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국제사회에서의 비중이 커지자 일본의 지위 향상을 꾀했다. 대국에 걸맞은 위상을 정립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전후 정치 총결산’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이를 ‘옷깃을 바로 잡고 국제사회로 떳떳하게 나가자’는 말로 표현했다. 미·일 안보체제를 기반을 한 기존의 경제대국 노선에서 벗어나, 군사력을 포함한 국제국가로의 성장을 추구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상황이 크게 달라졌으니 이에 맞춰 행동하겠다는 의미다. 아베의 우경화 발언도 패전 이후 물밑에서 숨죽여 있던 이런 의식을 표면화시킨 것이다. 그가 나카소네의 철학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같은 일본 정치인들의 행보는 마루야마가 주장한 이키오이와 일맥상통한다.”

-한국과 일본 문화의 차이는.
“한국은 전통적인 유교국가다. 유교 문화는 도덕과 규범을 중시한다. 벌어진 상황에 대해 내면적·심정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일본의 규범은 시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일본이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이라는 얘기다. 일본의 전통은 위기가 닥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몇 개의 방안을 설정해 밀고 나간다. A안이 안되면 B와 C를 내놓는 등 철저히 계산적이다. 이런 현실주의적인 문화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 발전을 이끌었다. 일본은 유교문화권의 경계에 있던 섬나라였다.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대륙을 경계하면서 독자적인 문화와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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