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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국가 혁신, 정부는 방향만 세우고 국민이 움직이게 해야

백용호 전 실장은 최근 서울 강변역 인근에 개인 사무실을 내고 ‘한가로운 구름’이라는 자신의 호를 따서 ‘한운재(閑雲齋)’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는 정치권 진출 여부에 대해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김춘식 기자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이제까지 없었던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내기 보다는 기존의 생각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다음 주인공은 당신입니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 표지.
 백용호(58)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명박 (MB)정부 5년 동안 권력의 핵심에서 정책을 좌우했던 사람이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학교(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로 돌아온 그는 최근 그간의 공직 경험 등을 모은 책 『백용호의 반전』(김영사)을 출간했다. ‘반전(反轉)’이라는 제목은 발상의 전환이나 역발상이 상식과 원칙을 벗어나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를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입장에서 비틀어 보는 것이라는 뜻에서 정한 것이라 한다.

 그런 그에게도 아쉬움이 많았다. 이 책은 공정거래위원장·국세청장에 이어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요직을 맡았던 일선 정책 현장 경험에 대한 반성문과도 같다. 그는 “공직 시절 하루하루의 현안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계획을 고민하지 못했던 점이 가장 아쉽다”며 “정권 초기부터 글로벌 경제 위기를 수습하는 데 매달리다 보니 기업 투자와 같은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미흡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더 행복하고 부강하게 만들려면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이 땅의 청춘들이 도전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온 사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만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공직에 있을 때보다는 시간이 많이 나다 보니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고, 등산도 다니고, 책도 읽고 했다. 일주일에 이틀 학교에 나간다. 지난 학기엔 시장과 정부’ ‘금융정책론’을 가르쳤다. 공직 퇴임 이후 젊은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했다. 대학 특강 요청이 잇따라 주로 지방 대학을 많이 다니며 젊은 학생과 얘기할 기회도 많이 가졌다.”

 -젊은이들을 만나보니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던가.
 “그들에게는 내가 미처 생각 못한 참신성이 있더라.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바르고 성숙됐다. 하지만 현실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 시대를 앞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젊은이들의 최대 관심은 일자리다. 대학 졸업 후 전공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일자리를 바라더라. 일자리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책임을 실감했다.”

 -현직에 있을 때 진작 신경 썼어야 했던 것 아닌가.
 “대학생이 가고자 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거에 비해 고용창출 효과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후방 고용유발효과가 컸던 자동차와 조선산업 등과 달리 정보기술(IT) 산업은 고용유발효과가 작은 데다 노동력을 글로벌 아웃소싱하는 게 특징이다. 대기업들이 수출을 많이 했지만 낙수효과가 작았던 게 그 때문이었다. 한국이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성장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성장 기반을 도덕성신뢰사회적 책임감 등과 같은 이른바 ‘사회적 인프라’에 근거해서 성장해야 한다.”

바람 잘 날 없던 시절 … 장기 비전 고민 못 해
-공직 경험을 모은 책을 냈다. 퇴임 후 1년간 집필했다고 들었다. (이 책에는 우리금융·대우조선해양의 민영화 논의 과정에서 국민주 방식을 자신이 적극 반대했던 일화와 부동산 대책회의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 요구에 대해 제동을 걸었던 뒷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공직 경험이 새로웠다.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공직 기간 동안) 보람도 있었고 성의도 다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현직 때 에피소드의 절반도 담지 못했다. 관련 자료들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 정권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4∼5년간은 말을 삼가는 게 예의라 생각한다.”

 -작금의 한국 경제 이야기를 해보자. 교단에서 이론을 가르쳤고 직접 정책 현장에서 이를 적용해 본 경험도 있다. 위기 돌파 해법이 있나.
 “지난 50여 년 동안 한국 경제는 오일쇼크에서 환란에 이르기까지 항상 위기의 연속이었다.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되느냐에 경제 발전 여부가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선 정책과 정부에 대한 신뢰와 시장의 신뢰가 유지돼야 한다. 최근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과연 대한민국 시장이 공정한가’라는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지속적 관심을 갖고 사회 통합과 시장 회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책 예측 가능해야 시장 제대로 작동
-힘 센 자리는 다 해봤는데도 해결하지 못한 게 있었나.
 “(잠시 생각하더니) 많았다. 경제 양극화 문제를 해소해서 전체적인 경제 성장의 체감을 국민 모두가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양극화로 인한 고통이 깊어지면서 중산층이 붕괴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대책도 심층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루 하루 바람 잘 날이 없어 현안이 얼마나 많던지, 장기적인 비전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못했다.”

 -좀 궁색한 변명같이 들린다.
 “한 정권의 임기 내에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유럽 재정위기 등 글로벌 경제 위기가 두 번이나 몰아쳤다. 임기 초반부터 우선 이를 헤쳐나가는 게 시급했다. 수출은 잘되는데도 내수가 침체되면서 성장이 둔화됐다. 그 고통이 살림이 어려운 계층에게 1차적으로 집중됐다. 세계적인 재정위기 속에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해야 했기에 재정 지출을 확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앞으로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여러 문제가 얽혀 있다. 양극화는 우리 경제가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 저성장 체제로 들어갔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정권 임기 내에 단기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대책 또한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주택 보급률이 낮았을 때는 1가구 1주택이라는 등식으로 접근했지만 지금은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상황이다. 개인 임대 사업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DTI나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푸는 것은 가게 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선 신중해야 한다. 정책이 자꾸 바뀌면 경제 주체들이 혼란스러워하고 거래가 위축되기 때문에 일관되고 예측 가능한 정책 아래서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가까이서 본 MB는 어땠나.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대문구에 출마했었다. MB가 인접 지역인 종로구에 출마하면서 자주 만나게 된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일부에서는 내가 MB와 가깝다고들 하는데 대통령은 나에게 업무에 대한 지시를 일일이 하지 않았다. 정책에 자율권을 줬다. 내 소신대로 했다. 다만 재임 시절 새벽이든 밤늦게든 수시로 전화해 이것저것 확인하는 바람에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요직을 잇따라 맡아 정권 내 실세로 떠올랐었다.
 “나를 원칙주의자로 생각해 그런 자리들에 임명했던 것 같다. 하지만 국세청장 임명 때는 장관급(공정거래위원장)인 나를 차관급 자리로 임명하면서 아무런 설명이 없어 놀랐었다. 국세청장을 맡게 되자 권력기관에 갔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국세청이 무슨 권력기관이냐. 징세기관이다’라고 답했다. 원칙에 충실하면서 투명하게 세금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융통성이 없다고 주변에서 욕도 엄청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경제위기에 대응하느라 여러 정책을 썼다. 그게 효과를 보면서 대한민국 신인도에 영향을 미쳐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에서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도가 올라갔던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을 탈없이 마무리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재임 시절 만났던 관료 중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FTA 통과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다.”

 -현 정부에서도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수 확보가 절실해지고 있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세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 성장률이다. ‘1% 경제 성장하면 세수가 2조원 더 걷힌다’는 말이 있었다. 기본적인 경제성장이 이뤄져야 안정적인 세수 기반을 확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탈루 세수와 비과세 감면이 너무 많다. 이를 적절하게 줄여나가는 것도 과제다.”

4대 강, 기후변화와 연관해 생각해야
-MB 정부는 기업 감세정책을 폈다. 그런데도 기업 투자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법인세율을 25%에서 22%까지 낮췄다. 특혜를 준 게 아니라 투자와 고용 창출에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들에게 물어보니 세계 경제가 불안해 투자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나마 IT 기업 위주로 자동화된 시설 투자에 집중되다 보니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했다. 앞으로의 정책 운용에서는 고용 창출효과가 큰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에 대해 정부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4대 강 개발사업에 대한 논란이 최근 불거지고 있다. 실패작 아닌가.
 “4대 강 개발은 앞으로 글로벌 기후변화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해봐야 하는 사안이다. 환경오염 논란 여부는 앞으로 전문가들이 밝혀주겠지만 수자원 관리의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 내가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지냈는데 정부에서 공사 수주 담합을 지시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 후 국가 개조론까지 등장했다. 현 정부에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역사는 계속 이어져 쉽게 단절하기 어려운 데다 우리 사회 규모도 커졌다. 정부가 주도해 일시에 사회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일정한 방향을 제시한 뒤 소통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국민 스스로 따라 오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정치권보다 기업과 시민단체의 힘이 강해지고 있는 추세다. 정부가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 정부의 임기 내에 이를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사회적인 합의점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차기 총선에 나온다는 소문도 있다.
 “인생에 있어 미래에 대해 담보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정치 입문을 권하는 사람 많지만 지금까지 확실하게 ‘노’라고 답했다. 사무실을 냈더니 단박에 여기서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부터 돌더라. 하지만 국회의원 생각은 지금으로선 없다.”



백용호 전 실장은 …
충남 보령 출신. 중앙대 경제학과, 뉴욕주립대 경제학 석·박사.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에 이어 공정거래위원장(2008.3∼2009.7), 국세청장(2009.7∼2010.7), 청와대 정책실장(2010.7∼2011.12), 청와대 정책특별보좌관(2012.2∼2013.2) 역임.
현재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정리=박종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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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