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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초심 잃은 사람들을 위한 미국 최고의 선불교 문헌

일본 불교계에서는 스즈키 선사가 ‘과대포장 됐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미국·유럽 최고의 ‘마음의 선사’다. 그의 얼굴을 좌우로 나눠보면 왼쪽은 심각하고, 오른쪽은 장난기가 넘친다.
‘걱정하지 마세요. 행복하세요(Don't Worry, Be Happy·1988)’는 그래미상을 열 번 받은 바비 맥퍼린이 지은 노래다. 행복하려면 ‘네 자신이 되라(Be yourself)’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 된다. 달리 방도가 없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이렇게 말했다. “네 자신이 되라. ‘네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은 이미 누군가가 모두 차지했다.(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내가 내가 되면 집중력이 강화된다.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선(禪)을 집중력을 키우는 데 활용했다. 잡스는 『선심초심(禪心初心·Zen Mind, Beginner’s Mind)』(1970)을 애독했다. 『선심초심』은 미국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읽는 첫 번째 책이다. 미국 선 수행자들이 읽고 또 읽는 책이기도 하다.

『선심초심』의 우리말(왼쪽)과 영문판 표지.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며 미국에 소개
미국 정신의 핵심은 실용주의다. 아시아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멀뚱멀뚱 할 때에, 미국인들은 좌선을 활용해 체중 조절도 하고 직장에서 생산성도 높인다. 미국식 불교를 제시한 『선심초심』의 공이 크다. 그래서 저자인 스즈키 슌류(鈴木俊降·1904~1971)는 ‘미국 불교의 조사(祖師)(The Patriarch of American Buddhism)’라 불린다. 어떤 면에선 육조(六祖·The Sixth Patriarch)보다 더 자랑스러운 타이틀이다.

『선심초심』은 법문집이다. 스즈키 선사가 직접 쓴 게 아니라 제자들이 설법을 녹음한 후 글로 옮긴 것을 편집한 것이다. 에디터들이 ‘편집 독재권(editorial dictatorship)’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미국화(美國化)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스즈키 선사는 “내가 한 말을 제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면 『선심초심』을 읽어본다”고 말했다.

선사 자신이 선불교를 미국인들이 편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다.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즈키 선사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좌선도 종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말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예컨대 밥 먹는 것, 잠자리에 드는 것-그것이 불교다.” “선에 대해 깊이 알 필요는 없다.”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미국 사람들을 ‘꼬시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원래 불교의 본질이 그렇다. 정말 쉬운 게 불도(佛道)다.

스즈키 선사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현대인 일반을 위한 불교를 제시했다. 한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현대 문명은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것도 실상은 ‘최대 에고(ego)의 최대 행복’을 의미한다. 패러독스의 종교인 불교는 ‘나’를 공부하고 ‘마음’을 공부하는 데 최고다. 하지만 ‘나’라는 것도 ‘마음’이라는 것도 없다는 게 불교다.

스즈키 선사는 “불교를 공부하는 목표는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마음 공부’를 하면 우리 모두 불성(佛性)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세속적 의미’의 기쁨은 잠시다. 깨달음을 얻어 성불(成佛)해야 하는 나·우리 ‘스스로’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은 없다. 깨달은 ‘행위’가 있을 뿐이다.”

결국엔 없는 것으로 밝혀질, ‘나 스스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중간 단계에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스즈키 선사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최선의 길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스스로’를 없애는 길도 이렇게 제시했다. “뭔가를 할 때에는 온 몸과 마음으로 해야 한다. 스스로를 소진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는 일에 여러분의 흔적이 남게 된다.”

둘째, 현대인을 지배하는 이분법·이원론의 탈피하도록 만드는 게 큰 과제였다. 근·현대 철학에서 몸-마음의 관계 설정은 영원한 숙제다.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단박에 정리했다. “몸과 마음이 둘이다라는 생각은 틀렸다.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생각도 틀렸다. 몸과 마음은 둘이자 하나다.”

경전 읽기와 좌선으로 불교의 진리가 이해되기 시작하면, 우선 자만심과 좌절이 문제가 된다. 뭔가 좀 알고 체험했다는 자만심과 ‘아무리 열심히 하고 또 해도 제자리’라는 좌절이다. 자만심과 좌절은 ‘초심의 상실’을 낳는다. 스즈키 선사는 초심을 강조했다. 책 제목 자체가 ‘선심초심’이다. 초심에 대해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禪)에 대해 읽은 게 많더라도 매 문장마다 초심으로 읽어야 한다. ‘나는 선이 뭔지 좀 안다’라거나 ‘나는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하지 말라. 모든 기예의 진짜 비결은 초심자가 되는 것이다.”

초심 상실의 원인 중 하나는, 여러 가지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들과 ‘박치기’ 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사는 이렇게 ‘문제라는 문제’를 해결한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다. (‘여러분’이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문제라면, 문제라는 것은 없다.” “여러분의 문제를 즐겨라.”

‘그 놈의’ 소통 때문에 초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리라. 선사의 답은 이거다. “소통이란 여러분이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남이 먼저 여러분을 이해하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이 먼저 남을 이해하기 전에 남이 여러분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초심을 위협하는 좌절감을 낳는 원인은 ‘뭐든지 직접 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모든 것을 직접 할 수 없기에 그대신 ‘내가 일을 시킨 사람들을 통제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튼다. 부질없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지 않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두 번째로 나쁜 방식이다.”

내가 먼저 그를 이해하는 게 소통의 비결
크고도 많은 가능성 때문에 초심이 중요하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게 가능성이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빈 마음은 무엇이든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 초심자의 마음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 어떤 위기에도 초심만 살아 있으면 된다. 호랑이한테 물려갈 때도 초심만 있으면 산다. 생환할 가능성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토록 좋은 초심이란 무엇인가. 오로지 한가지만 알고 한가지 일에만 매진하는 게 초심이다. ‘우리 회사를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겠다’는 CEO나 신입사원의 초심이건, ‘아들 딸 많이 낳고 백년해로하겠다’는 신혼부부의 초심이건, 모든 초심의 핵심은 ‘한가지’에 있다. ‘한가지’가 보이면 모든 게 이해되고 갈 길이 보인다. 그래서 스즈키 선사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뭔가 한가지를 이해하고 또 이해하고 거듭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초심은 또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다. 스즈키 선사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매 순간을 여러분의 마지막 순간으로 대하라. 매 순간이라는 것은 뭔가 다른 것을 위한 준비가 아니다.”

스즈키 선사는 아버지 제자의 제자였다. 13세때 승려가 됐다. 젊었을 때 당시만 해도 싸구려 저질 일본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보고, ‘세계 최고’인 일본 선불교를 해외로 ‘수출’하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소원이 이뤄져 미국으로 간 그는 196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못지 않게 많은 것을 배우는 스승이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평범한 선사였다. 조동선(曹洞禪) 계통의 선불교에 속한 그는 샌프란시스코·로스앨토스·타사하라 선원(禪院)을 세웠다. 그의 제자들은 최소 70개 모임으로 나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스즈키 선사는 동부 아이비 리그를 중심으로 불교를 포교한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1870~ 1966)와 흔히 혼동된다. 많은 미국인이 “그 유명한 스즈키 다이세쓰이십니까”라고 물으면 스즈키 선사는 “그는 ‘큰 스즈키’, 저는 ‘작은 스즈키’입니다”라고 답했다. 중의법이다. 스즈키 선사는 키가 150이었다.

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작은 거인’이 아니라 ‘그냥 거인’이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울먹이며 “세상에는 왜 이토록 많은 고통이 있는가”라고 묻자 “이유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이 한 마디로 스즈키 선사는 기독교와 불교의 수 천년 숙제를 단 ‘한 방’에 풀어버렸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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