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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비명이 일상이 된 시절 … 뭉크의 ‘절규’도 카톡 속으로

1년 전 칼럼에 SNS와 모바일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남발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며 이모티콘이 미묘하고 복합적인 감정 표현을 단순하게 도식화할 우려가 있다고 썼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여전히 이모티콘을 즐겨 쓰고 있다. 요즘 내가 쓴 이모티콘을 돌아보니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명화에서 따온 ‘절규’ 이모티콘을 특히 많이 썼다. (그림 오른쪽)

사회적으로 잇따른 국내외 사고와 테러와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여러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또 개인적으로 각종 일과 스트레스가 동반 축적되는 상황에서, 모바일 메신저를 쓰다 보면 ‘절규’ 이모티콘으로 저절로 손가락이 움직이곤 한다.

뭉크의 ‘절규’ 석판화 버전(부분)과 카카오톡의 ‘절규’ 이모티콘.
공교롭게도 ‘절규’의 석판화 버전(그림 왼쪽)을 지금 서울에서 볼 수 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뭉크의 한국 첫 회고전 ‘뭉크 영혼의 시’에서다.

아마도 ‘절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만큼 대중에게 인기 많은 그림일 것이다. 뭉크 자신도 이 주제를 좋아해 여러 번 그렸다. 판화 외에 그림 버전은 4점이 있는데, 그 중 뭉크가 최초에 그린 가장 유명한 1893년 버전은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국립미술관에 있다. 또 하나의 1893년 버전과 도난 당했다가 되찾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1910년 버전은 오슬로의 뭉크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나머지 한 점인 1895년 파스텔 버전은 개인 소장품으로서, 2012년 뉴욕에서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인 약 1356억원에 팔려 화제가 됐었다.

이 섬뜩한 그림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일까. 뭉크가 이 그림에 대해 쓴 글을 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우울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멈춰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 극도로 피곤해져서. 나는 불타는 구름이 피와 칼과 같은 형태로 짙푸른 피오르(노르웨이 특유의 지형인 협만)와 도시 위에 걸린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다. 나는 불안으로 몸을 떨며 그대로 서있었다. 그 순간 거대한, 무한한 절규(노르웨이어로 ‘skrik’. 사실 ‘비명’으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다)가 자연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이 글을 보면 그림의 주인공이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복합적인 이유로 일상적인 ‘우울’과 ‘피곤’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느 한 순간 임계 수위를 넘어서면서 그의 눈에 비치는 세계를 왜곡한다. 저녁놀에 물든 구름이 ‘피와 칼과 같은 형태로’ 자신과 세계를 위협하듯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친구들은 무심히 계속 걷는다. 주인공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을 포기하고 철저히 소외된 채 그대로 멈춰선다.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무서운 비명을 입을 벌려 토해내면서, 동시에 그 비명이 ‘자연을 꿰뚫는 거대한, 무한한 절규’로 확장되어 메아리쳐 돌아오는 것을 견디지 못해 귀를 막으면서 말이다.

‘절규’를 비롯한 뭉크의 음울한 그림들에 대해서는 그의 개인사가 많이 거론된다. 그는 아직 어렸을 때 어머니와 누나를 폐결핵으로 잃었다. 또 아버지 쪽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때문에 뭉크는 가족의 육체적·정신적 병력이 자신에게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뭉크전을 위해 내한했던 뭉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욘 우베 스테이하우에 따르면, 뭉크의 작품 스펙트럼은 넓은 편이고, 개인적인 것에 천착하기보다 당대의 현대적(modern) 급변이 가져온 사회적 집단의식과 기술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절규’가 드러내는 내재적이고 상존하는 우울과 피로와 불안, 의사소통의 부재와 소외감은 그야말로 현대인이 보편적으로 겪는 고통이 아닌가. 이 그림이 20세기 들어 점점 더 인기를 얻다가 이제는 모바일 메신저 이모티콘으로 일상에 정착한 것은 지금 우리의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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