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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인디언 정복한 백인, 그 백인을 정복한 인디언 담배

인디언들이 유럽 정복자들에게 평화의 상징인 파이프 담배를 권하고 있다(1621년).
“흡연도 유전이 되는가?”라고 묻는 지인의 표정이 굳어있다. 골초로 유명한 영국의 처칠이나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도 91세, 83세까지 장수했다는 기록을 보물단지처럼 갖고 다니던 애연가(愛煙家)의 표정이 꽤나 심각하다. 고등학생 아들의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한 것이다. 본인은 일찍 담배를 배웠으면서도 아들은 흡연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해서 초등생 아들에게 나름 ‘충격요법’을 써서 성공했다고 믿던 그였다.

충격요법은 이랬다. 먼저 실험용 생쥐를 물속에서 헤엄치게 했다. 보통 쥐는 물에서 한참을 떠 있는 반면, 담배연기를 맡고 수영을 하던 놈은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더니 꼬르륵 꼬르륵 가라앉고 말았다. 그 생생한 광경에 놀란 초등생 아들은 ‘나는 절대 담배 안 피우겠다’ 고 스스로 맹세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보란 듯이 담배를 시작했으니 “애비가 담배를 피워서 그런가” 걱정이 돼 흡연의 유전 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담배 피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커서 흡연자가 될 확률이 비(非) 흡연 부모를 둔 아이보다 세 배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게다가 사람마다 니코틴의 맛을 느끼는 DNA(유전자)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이는 결국 아이가 골초가 되는 것이 부모 탓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아들 가방 속의 담배를 보고 실망하던 친구는 자책 대신 골초였던 할아버지를 원망해야 할 판이다. 국내 청소년들의 흡연율은 지난 10년간 줄지 않고 있다. 니코틴을 증기로 흡입하는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중·고교생이 무려 열배 가까이 늘었다. 이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흡연을 부추긴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건강의 최대 적(敵)인 담배, 이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킬 방법은 없는가.

‘인디언 담배가 건강에 이롭다’고 전한 1907년 광고.
전자담배에서 새 발암 물질 생성돼
마오쩌둥은 “담배를 피우면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집중돼 일에 몰두할 수 있고 또 내뿜는 담배연기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흡연의 시조인 인디언들은 감사의식 때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는 담배를 보는 순간 돈벌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과대 선전과 함께 담배를 퍼뜨렸다.

당시 신무기와 두창(천연두)을 앞세워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몰살시킨 유럽 문명에 대한 인디언들의 저주일까? 현재 지구촌 남성의 반이 피워대는 담배는 성인 사망원인 중 으뜸이다. 인디언들의 ‘감사의 담배연기’가 이제는 ‘죽음의 연기’가 돼 성인·청소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담배에 든 599종의 첨가제들이 타면서 벤젠·포름알데히드 등 69종의 발암물질이 나온다. 흡연은 인체의 모든 장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직격탄이다. 20대 젊은 남녀가 80세까지 건강하게 살 확률이 70%인데 담배를 무는 순간 그 장수확률이 35%로 준다.

흡연은 암 억제 DNA까지 망가뜨린다. 2013년 ‘미국 임상종양학지’에 실린 삼성서울병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폐암환자의 96%에서 유전자 변형이 확인됐다. 변형된 곳의 80%가 하필 암 발생억제 유전자(TP53)다. 생활하다가 ‘이상한 세포’가 한둘 생기더라도 암 발생억제 유전자가 없애줬는데 담배연기는 이곳을 집중적으로 망가뜨려 암을 발생시킨다. 유전자가 망가지면 치료해도 원래의 정상 DNA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만큼 치료가 힘들다.

전자담배는 청소년에게 담배를 쉽게 접하게 하고 금연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일러스트 박정주
폐암·심혈관 질환·고혈압 등 많은 병의 원인이 담배연기 속의 발암물질이다. 이런 이유에서 전자담배는 덜 위험하다고 선전·시판됐다. 즉 전지를 이용해 니코틴 용액을 증발시키면 니코틴만 폐로 갈뿐 발암물질이 담긴 연기는 생기지 않아 기존의 담배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했다.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을 준다는 광고도 등장했다. 이런 광고에 힘입어 전자담배는 출시 이후 시장이 급성장했다. 매출액이 4년 새 25배나 뛰어오른 2조원에 달했다. 10년 내에 일반 담배 전체보다 시장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광고와는 다른 연구결과들이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다. 2014년 ‘국제 청소년건강학회지’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 7만 명을 조사한 결과 전자담배가 흡연율을 낮추지 못했다. 대부분은 전자담배와 기존의 담배를 동시에 피웠다. 전자담배를 이용하기 시작한 학생이 9배나 늘었다.

금연 성공, 니코틴 수용체 복구에 달려
지금은 메이저 담배회사들까지 뛰어든 전자담배는 기존 담배와는 달리 무엇을 섞어도 관계기관이 규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조업체들은 청소년이 좋아하는 향료를 섞기도 하고 니코틴 액을 증발시키는 전기량을 늘려서 첨가제들이 더 잘 날아가도록 했다. 그 결과 ‘카보닐’ 계열의 새로운 발암물질이 생성됐다. 게다가 니코틴 액이 증발할 때 생기는 초(超)미세입자들은 기존 담배처럼 40% 이상 폐에 축적됐다. 전자담배 증기를 항생제에 잘 견디는 세균에 쬐였더니 세균들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耐性)이 더 강해졌다.

당초 전자담배가 금연(禁煙)을 도울 것으로 기대한 것은 니코틴만 몸에 공급하면 중독성이 다소 적을 것으로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한국·미국 청소년 모두 담배를 줄이거나 끊기는커녕 전자담배로 인해 오히려 담배와 친숙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말해 전자담배도 해롭다. 전자담배도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진 못한다. 담배에서 발암물질 이상으로 무서운 것은 바로 니코틴 중독이다.

“담배를 끊은 사람에겐 딸을 주지 마라”는 말은 딸을 주고 싶지 않을 만큼 심성이 독한 사람만이 담배를 끊는다는 얘기다. 그만큼 담배 끊기가 어렵다. 니코틴이 함유된 일반 담배·전자담배·담배 껌은 모두 니코틴 중독을 일으킨다. 니코틴 중독이 생기는 것은 마약인 코카인·아편에 중독되는 이유와 같다. 담배 연기와 함께 폐 속으로 전달된 니코틴은 폐(肺) 혈관에 흡수돼 두뇌 앞부분의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이어 니코틴은 신경세포의 니코틴 수용체(receptor)에 찰싹 달라붙어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든다. 도파민은 기쁨의 호르몬이다. 사랑할 때 나오는 이 호르몬은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니코틴이 작용하는 곳은 뇌의 ‘쾌락중추’다.

원숭이에게 같은 부위를 자극하는 전극의 스위치를 쥐어주면 죽어라고 스위치를 누르다 결국 죽고 만다. 원숭이의 뇌에 붙인 전극처럼 어떤 행동에 대한 보상, 즉 쾌락이 빨리 올수록 중독이 잘 된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한 화가의 뇌에선 도파민이 분비돼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보상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중독이 안 된다. 이와는 달리 담배는 피운 뒤 10초 만에 니코틴이 뇌에 도달해 도파민을 생성시킨다. 담배를 입에 물면 바로바로 쾌락을 얻는 것이 담배의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다. 담배가 ‘죽음의 쾌락 전극’인 셈이다.

흡연한 지 오래 된 사람의 니코틴 수용체는 비틀려 있다. 비틀린 수용체에 니코틴이 붙지 않으면 금단(禁斷)현상, 즉 마음이 불안해지고 심장이 쿵쿵거리고 머리가 아파 온다. 밤새 니코틴이 분해돼 혈중(血中) 니코틴 농도가 낮아지면 수용체에 니코틴이 붙지 않게 된다.

약효 강력한 금연약은 ‘자살’ 부작용
흡연 초짜인 경우는 수용체가 정상 모양이어서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골초들은 수용체가 비틀려 있어서 금단현상을 경험한다. 또 니코틴에 중독된 뇌에서 니코틴이 부족할 때 나오는 물질(CRF)도 금단현상을 유발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빈속이라도 담배를 물어야 하는 것은 밤새 떨어진 혈중 니코틴을 급히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방 안에 남은 담배가 없다면 재떨이라도 뒤져서 꽁초에 불을 붙인다.

니코틴 수용체는 여러 종류의 부속물로 구성돼 있다. 사람마다 부속물의 종류가 다르다. 담배를 끊으려면 니코틴 중독으로 비틀린 수용체를 원 상태로 복구시켜야 한다. 수용체가 원래의 정상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4~8주다. 새해의 금연결심이 대개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것은 금연 후 48시간이 금단증상의 피크이기 때문이다.

니코틴 중독은 단순히 수용체가 비틀린 것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담배를 피울 때의 분위기, 즉 머리에 꽂힌 ‘필(feel)’도 함께 저장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석양이 지는 울릉도 해변에서 소주 한잔과 함께 입에 물었던 필자의 첫 담배의 기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석양에 해변을 거닐거나 감탄사가 절로 나는 풍경 앞에 서거나 소주 한잔이 들어가면 수년간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만약 기억에 남는 흡연 장면의 ‘필’이 매일 반복된다면 중독이 더 심해진다. 기억까지 저장된 담배는 끊기 힘들다.

강력한 금연약인 ‘챔픽스’의 사용설명서에 표시된 부작용이 ‘자살’이다. 니코틴이 수용체에 달라붙어야 도파민이 생성된다. 이 금연 약은 니코틴보다 20배 강하게 수용체에 먼저 달라붙는다. 따라서 이 약을 복용하면 담배를 피워도 니코틴이 수용체에 붙지 않아 도파민이 생성되지 않는다. 당연히 담배를 피워도 맛이 없고 밋밋하다. 도파민이 생성되지 않으니 세상 살맛이 없어지고 우울해지며 심하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만든다. 끊고 싶지만 하루 만에 다시 피는 사람이 절반이고 금연성공률이 3%인 이유는 건물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이런 금단현상 탓이다.

한국은 니코틴 중독으로 인해 성인남자의 반이 담배를 피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흡연챔피언’이라는 불명예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담배 끊긴 아주 쉽다. 나는 무려 백번이나 끊었다”고 했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 다만 평생 참고 있다”고 할 만큼 니코틴 중독은 마약만큼 절연(切緣)이 힘들다.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통계에 따르면 많은 청소년들이 고교 시절에 흡연을 시작한다. 호기심·사춘기·입시가 맞물려 니코틴 중독의 길로 발을 디딘다. 부모가 흡연하면서 자녀들에게 금연을 강조할 순 없다. 초등학교부터 담배의 무서움을 교육해야 한다. 이제 담배연기는 더 이상 인디언들이 하늘에 기원하는 기도가 아니다. 신대륙 발견 과정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피의 대가는 그동안 폐암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으로 충분하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뇌를 누런 색 담배 니코틴으로 물들게 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이 나서야 할 때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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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