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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욕심 다이어트

지인에게서 이사 준비로 분주하다는 소식이 왔다. 웬 살림이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며 짐 정리가 며칠이나 계속되다 보니 지친다는 푸념과 함께였다. ‘그 마음 내가 십분 이해하고도 남지.’ 누가 뭐래도 ‘이사’ 하면 바람 같은 우리 아닌가. 스님들은 공부, 즉 안거(安居)할 장소를 찾아 철마다 옮기기도 하고, 1년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씩은 머물 곳을 찾아 옮겨다니니 말이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행자 생활이 시작된 곳은 부산과 통영이었다. 기도하던 곳은 대구였으며, 경전 공부를 하던 곳은 청도였다. 참선 공부는 양산에서 했고, 길었던 율학 연구는 일본과 중국에서 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전을 거쳐 서울이다. 여기서 6년째다. 그새 네 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어떤가. 20년새 이 정도면 속된 표현으로 역마살이 들었어도 보통 든 게 아닐 테다.

하지만 제 아무리 많이 옮겨 다녔다 해도 이삿짐 도사는 되지 못했다. 이사의 달인이 되려면 이삿짐을 적게 만드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데,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사방으로 둘러싸인 책들이 자꾸만 나를 붙잡아 앉혔다. “버리면 안 돼~.” 달콤하게 속삭이면서 말이다. 남 일이 아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시라. 집안을 둘러보고 사무실 책상 위를 살펴보면 자신의 소유물이 얼마나 많은지 금세 알게 될 것이다. 한 인간이 일생 동안 살다 가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소유물을 가졌다가 버리고 가는 것일까.

소유물이 많으면 우리는 평소에도 번잡한 생활 영역을 벗어날 수가 없다. 특히 여름철엔 눈 앞에 펼쳐진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추장스럽고 짜증까지 밀려든다. 덥고 습해서 그런가 보다. 채우는 만큼 소모해야 하는데 잘 그러질 못한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눠준다고 하는데도 뭔가 불어만 가는 느낌이다. 원인은 하나다. 비우지 못해서다. 비우고 정리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게 영 신통찮다.

무소유로 대표되는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뭔가를 가진다는 것은 다른 한편 뭔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돼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돼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지당하신 말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인다. 솔직히 현대 사회에서 법정 스님처럼 소유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소유와 자유’의 연관성에 관한 이런 말씀에는 백 번 공감한다. 불교에서는 ‘버리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욕심도 버리고 성냄도 버리고 집착도 버리고…. 버려야 할 게 참 많다. 세상에 흘러넘치는 유한한 물건으로는 채울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기에 그렇다. 끝도 없는 무한한 욕망을 유한한 그 무언가로 채우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진정한 ‘채움’을 이루려면 우선 욕심부터 비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출가자인 나도 쉽지 않은 이 일을 모두에게 주문하긴 어렵다. 다만 그런 비움의 노력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는 점과, 당장 욕심을 내려놓기 어렵다면 지금 눈 앞에 어질러진 것들만이라도 제자리에 두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주변도 깨끗해지고 기분도 좋아질 것이며, 볼썽사납게 불어난 우리 사회도 조금은 다이어트가 될 테니 말이다.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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