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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공자가 ‘백수’ 아니었다면 세상을 흔들 수 있었을까

일러스트 강일구
바야흐로 디지털 문명의 시대다. 디지털이란 무엇인가? 0과 1, 두 가지 부호만으로 천지만물, 세상만사를 다 창조해내는 정보 시스템이다. 그 점에서 ‘음’과 ‘양’, 두 개의 부호로 천지인(天地人)을 하나로 꿰뚫는 『주역(周易)』의 세계와 상통한다. 역설적이게도 첨단의 ‘문명지(文明知)’와 시원(始原)의 ‘자연지(自然知)’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있는 것이다.

하여, 디지털 시대의 정보는 아날로그 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즉, 머무르고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면서 접속하고 변이한다. 한 마디로 고도의 유동성이 지배하는 시대인 것. 그에 따라 성(性)과 세대, 국가와 인종, 민족과 계급, 가족과 공동체 등 기존의 모든 표상들이 심각하게 동요한다. 산업혁명이 중세문명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고정된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노동과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거의 모든 일을 기계가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되기란 불가능하다. 솔직히 더 늘어나도 문제다. 그건 결국 감정을 과잉으로 소비하는 서비스업이거나 자연을 난개발하는 대형공사가 되기 십상인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앞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는 백수들로 넘쳐날 전망이다. 대졸자는 말할 나위도 없고, 중견간부에 오른 이후에도, 최고경영자(CEO)가 된 다음에도 언제든 백수가 될 수 있다. 청년백수, 중년백수, 정년백수, 거기에 더해 노년백수까지.

누구나 여차하면 백수되는 시대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정규직을 갈망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가는 이유, 스펙을 쌓는 이유, 성형을 하는 이유, 식스팩을 만드는 이유, 다 정규직이다!

하지만 이 언표(言表)에는 심각한 어폐가 있다. 어떤 종류의 직업이나 활동이 아니라 정규직 그 자체라니, 세상에 이런 욕망도 있는가. 뭘 해도 좋으니 그냥 규칙적으로 돈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뜻이리라.

그럼 정규직을 얻으면 만사형통인가. 그렇지 않다. 정규직의 꿈은 어이없게도 ‘백수’다. 실제로 꿈의 직장이라는 대기업의 이직율도 엄청나다. 그렇게 정규직을 향해 달려가고선 왜 거기에 머무르지 못하는가. 그토록 ‘정규직, 정규직’을 외쳐대면서 막상 거기에 도달한 다음엔 왜 그토록 정처없이 방황하는가. 그게 바로 디지털 시대의 ‘마음의 행로’다. 디지털과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도 끊임없이 흐른다. 여기에서 저기로! 이 직업에서 저 직업으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정규직에서 다시 알바생으로! 그렇다면 이제 백수는 더 이상 열등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삶의 자연스런 조건이 된 셈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백수의 존재론’이다.

그럼 백수는 시대의 불가피한 산물 혹은 난세의 상징인가. 그렇게 본다는 건 인간은 본래적으로 노동과 직업을 열망한다는 걸 전제하는 셈인데, 과연 그런가. 결코 그렇지 않다. 백수의 계보학 혹은 인류학적 탐사가 필요한 지점이 여기다.

백수의 원조는 공자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수많은 나라에서 취업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그를 채용해주지 않았다. 결국 고향인 노나라로 돌아가 백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논어』가 바로 그 산물이다. 공자가 시대가 낳은 백수라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스승인 붓다나 노자는 자발적 백수에 속한다. 붓다는 왕자로 태어나 후계자가 되었지만, 다시 말해 최고의 정규직을 완벽하게 보장받았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나와선 탁발을 하는 수행자가 되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보자면, 백수를 넘어 노숙자가 된 것이다.

노자는 또 어떤가. 애초부터 취업의지는 고사하고 인생 행로 자체가 불투명하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이들의 후배인 맹자와 장자, 달마대사 등도 다 마찬가지다. 또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유불도(儒佛道) ‘삼교회통’의 이치를 연마했던 동아시아의 지식인들 역시 비슷한 코스를 밟았다.

평생 책을 보면서 우정과 진리를 연마하는 자발적 백수, 그것이 ‘사농공상’ 중에서 ‘사(士)’가 추구한 삶의 지향점이었다. 조선의 경우, 농암 김창협과 성호 이익이 대표적인 인물이고, 그들의 후배격인 ‘연암그룹’은 그야말로 ‘백수지성의 향연’이었다. 18세기가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릴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들로 인해서다.

그리스·로마 주역은 직업 없는 집단
그런가 하면 서구 지성사의 원천에 속하는 그리스-로마 시대의 주역인 자유인은 직업이 없는 집단이었다(평생 하나의 직업에 종사하는 건 노예였다. 우리 시대의 언어로 말하면 노예야말로 최고의 정규직이다. 평생이 보장될 뿐더러 세습까지 되니 말이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에피쿠로스 등 그리스 로마 시대의 현자들은 다 이 자유인 출신이다.

그뿐 아니라 인류의 위대한 멘토들은 직업적으로 보면 거의 다 백수였다. 직업에 종사했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를 꾸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대하소설 『임꺽정』의 도인이자 조광조의 정신적 지주였던 갖바치가 혜화문 근처에서 가죽신을 다듬고, 서구 철학사의 이단자 스피노자가 안경렌즈를 닦았던 것처럼.

그럼 왜 이들은 직업이나 지위를 거부했던가. 시대가 알아주지 않아서? 시대와의 불화로? 그렇지 않다. 그렇게 사는 것이 곧 ‘인간의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즉,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된 것이 아니라 백수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고귀한 삶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고로, 백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자본주의는 바로 이 자연스런 본능을 억압하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화폐의 증식을 목표로 하는 사회구성체다. 화폐를 증식하기 위해선 모든 사람이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노동의 신성함’이라는 근대적 표상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본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의 최종심급은 화폐다. 증식하는 화폐, 곧 자본의 욕구가 노동의 신성함을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을 얻어도 만족감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그때부터 삶의 소외가 극심해진다. 자본의 유일무이한 테제-끊임없이 증식하라!-를 내면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스트레스가 거의 동의어가 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걸 보완해주는 것이 다름아닌 쾌락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식욕과 성욕의 향연’이 그것이다. 화폐를 대책없이 쏟아붓는 것도 이 영역이다. 그래야만 간신히 정규직을 버틸 수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쾌락의 강도가 높을수록 스트레스 지수 또한 상승한다. 그래서 결국은 또 다시 백수를 꿈꾸게 된다.

자, 그럼 이 지점에서 다시 물어보자. 왜 이런 악순환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정규직을 갈망하는가? 성공이니, 꿈의 구현이니 하는 거품을 걷어내고 보면, 결론은 ‘짝짓기’다. 다시 말해, 연애와 결혼, 그리고 ‘스위트홈’을 꾸려가기 위해서다. 직업과 화폐를 확보해야 짝짓기를 할 수 있고, 그래야 간신히(!)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고 생각한다. 그 다음엔? 다시 아이를 낳아 그렇게 키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과 화폐, 쾌락의 수레바퀴를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 이것이 전부다.

노동·돈·쾌락에서 활동·자유·충전으로
하지만 이 여정에서 삶의 구원-그것이 행복이건 자유건 간에-은 불가능하다. 왜? 그것은 ‘동일성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반복은 권태를 낳고 권태는 우울증으로, 다시 죽음 충동으로 이어진다. 고로, 가장 ‘반생명적’ 행위다. 당연히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에 반한다.

따라서 이제 인류의 비전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노동에서 활동으로! 화폐에서 자유로! 쾌락에서 충전으로!

그렇다면 백수가 특별히 더 박탈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백수는 존재 자체만으로 이 ‘순환의 장’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수는 사회를 위해, 인류를 위해 특별히 더 좋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오직 자신을 배려하는 기술을 갈고 닦으면 된다. 이름하여, 자기배려의 윤리(혹은 양생술)가 그것이다. 너무 막연하다고? 아주 간단한 실천적 전략이 하나 있다.

그동안의 물질적 풍요로 우리 사회는 공공자산이 넘쳐난다. 백수는 이 공공자산에 접속하기만 하면 된다. 공공자산의 핵심은 지성이다. 가장 좋은 것이 집 가까이에 있는 공공도서관이다. 지금 당신이 백수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싼 다음, 걸어서 그곳으로 가라! 도서관에는 사람과 책과 강의가 있다(거의 다 공짜다!). 걷고 읽고 배우고 만나고…. 담백한 식사, 도보의 권리, 진리의 탐구, 이보다 더 좋은 양생술은 없다.

그 다음엔 성과 세대, 계층을 넘어서 사람들과 접속하라. 인생의 모든 과정을 배움으로 바꾸는 지성의 네트워크, 거기에 접속하는 순간 백수는 ‘자유인’이 된다. 그렇게 우정과 지성의 향연을 누리다 보면 낯설고 새로운 윤리적 가치가 생성된다. 화폐로부터의 자유, 스위트홈의 망상에서 벗어나기, 자기배려의 양생술 등이 그 핵심이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익혀야 하는 윤리적 기초다. 이런 토대가 없다면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그 삶은 위태롭고 허망할 따름이다. 해서 우리 공동체(남산강학원&감이당)의 백수 프로그램은 ‘공자 프로젝트’다. 공자란 ‘공부하며 자립하기’의 준말이자 백수의 원조이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공자 되기’를 시도한다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다. 모든 사람이 공자처럼 주유천하를 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터득할 수 있는 시대,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문명론적 비전이 아닐까. 고로, 백수는 인류의 미래다!



고미숙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일기 3종세트』 『달인 3종세트』 『동의보감 3종세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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