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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은 말…생존 학생들의 참사 순간 영상 증언

[앵커]

단원고 생존 학생들에게 우리는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받았을 상처가 얼마나 깊은 지, 또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짐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치료를 받는 과정을 학부모들이 촬영해 왔고, 이 영상을 저희들에게 제공해 주셨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생존학생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총 3회에 걸쳐 4시간 분량인데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본 참사의 순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생존 학생의 부모님들이 이 역시 저희 팀에 전해주셨습니다.

이지은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지난 6월초, 경기도 안산의 한 연수원.

세월호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 6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고 50여일 만에 모인 아이들.

그동안 누구도 먼저 말하지 못한 사고 당시의 기억을 하나씩 가슴 속에서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당일 8시 40분경,

학생들은 알려진 것보다 10분 먼저 배가 기울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생존 학생 : 8시 30분에서 40분에 아무 일도 없이 4층으로 올라갔고 그때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생존 학생 : 쿵 하면서 뭔가 쓰러져 애들 다 소리 지르고 식당에 있던 물건들 다 쓰러지고요.]

[생존 학생 : 제가 4층 창문 쪽에 있었는데 배가 기울어짐과 동시에 8시 50분쯤에 창문을 봤는데 컨테이너가 다 떨어지고 있었어요.]

위험을 직감한 아이들은 구명동의를 찾아 입고 탈출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생존 학생 : 처음에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조금 더 (배가) 기우니까 주변에 잡을 거 있으면 잡고 안전 조끼 입을 수 있으면 입으라고.]

[생존 학생 : 두 번 정도 가만히 있으라고 한 다음에 안전봉 잡고 10시 이후에 구명조끼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입으라고.]

하지만 대피하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생존 학생 :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계속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거래요. 그 다음엔 배가 침몰되기 직전에는 방송 안 하고 아이들에게 나가라고 자기 목소리로 말했어요.]

배 안의 상황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생존 학생 : 캐비넷 하나가 떨어져서 애들이 거기에 다 깔렸거든요. 저랑 한 명 빼고요. 깔린 상태에서 물이 차오르니까 캐비넷이 뜨고 다른 애들은 다 빠져 나왔어요. 그래서 물에 둥둥 떠있었는데 저만 혼자 반대 쪽에 있었는데 물이 차가우니까 빠지는 것보다는 그 캐비넷 위에 올라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복도에 있던 친구가 저 끌어 올려줬고 다른 애들은 못 나왔어요.]

창문이 깨지고, 바닷물이 차오르면서 빠져나갈 문은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생존 학생 : 나가는 문이 수압 때문에 잠겼어요. 배 안이 잠기고 물이 점점 차오를 때 (밖으로) 나간 아이들이 몇 명 있어요. 물이 밑에서 차오르잖아요. 물 따라 헤엄치고 빛 보이는 데로 나갔어요.]

휴대폰을 충전하러 가는 바람에 한 반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학생의 증언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생존 학생 : 다 같이 마피아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핸드폰 충전을 해야 되는데 콘센트가 없어서 식수대 쪽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거기서 앉아 있다가 그렇게 됐어요.]

3층에 있었던 한 학생은 위에서 내려준 소방호스를 잡고 올라가 구조되기도 했습니다.

[생존 학생 : '저기(물 밑)로 나가면 되겠구나' 했는데 안 되는 거예요. 왜냐면 구명조끼도 입고 있고 잠수도 못해서. 다시 올라와서 원래 있던 자리로 갔어요. 그 이후 난간을 잡고 사다리에 오르는 것처럼 올라갔어요. (그 다음에 어떻게 탈출했어요?) 그 다음엔 소방 호스가 연결돼 있어서 (나왔어요.)]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생존 학생 : 먼저 나온 아이들이 산다고 나간 게 아니라 아이들 끌어올려주고 먼저 나온 아이들이 밀어주고 질서 지키면서 나와서 누구 한명 나올 때까지 계속 이름 부르고 그랬어요.]

하지만 아이들 모두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밖으로 탈출하라고 말한 선원과 해경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원고 학생 325명 가운데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학생은 단 75명 뿐입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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