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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거리에 웬 '드라이아이스 성벽'

지난 21일 오후 4시쯤 명동역 인근 한 화장품 매장 앞에 쌓여있는 벽돌형 드라이아이스에서 하얀 연기와 냉기가 길거리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 20일 오후 2시 명동예술극장 사거리 부근. 섭씨 33도 무더위속에서 지친 표정을 짓던 중국인 관광객이 한 화장품 매장에 이르러 발을 멈췄다. 매장 현관 앞 인도에는 벽돌 형태로 어른 무릎 높이까지 쌓아 올린 폭 2m가량의 드라이아이스 벽이 하얀 연기와 함께 냉기를 뿜고 있었다.

 멀리서 한 중국인 남자 어린이가 드라이아이스 미니 성벽을 보고 달려왔다. 연기를 쐬더니 뒤따라오던 가족들을 불렀다. 잠시 냉기를 쐬던 가족은 매장에 들어간 뒤 30분 정도 지나 양 손에 쇼핑백을 들고 나왔다. 역시 이 가게에서 화장품을 사 들고 나온 또다른 중국인 관광객 주하이리앤(周海<83B2>·23·여)은 “시원한 드라이아이스에 끌려 물건을 사게 됐다”고 말했다.

 쇼핑 1번지 서울 명동에 ‘드라이아이스 성벽’이 등장했다. 정부가 에너지 낭비를 막는 차원에서 2012년 점포 문을 연 채 에어컨을 트는 ‘개문냉방’을 단속한 지 2년만에 나타난 신풍경이다. 매장에서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나와야 손님들 발길을 잡을텐데, 그럴 수 없게 되자 드라이아이스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화장품 업체 N사의 민관홍 과장은 “더운 여름에는 마스크팩 같은 사은품을 주는 것보다 드라이아이스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이달 1일부터 명동의 7개 매장 등에 드라이아이스 산성을 설치했다.

 매장들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 드라이아이스에 끌려 들어온 고객들이 이른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를 일으켜서다. 북적이는 매장을 밖에서 본 고객들이 점포 안으로 끌려들어오는 효과다. 이화여대 박정은(경영학) 교수는 “그냥 지나치는 행인들이 아니라 드라이아이스 앞에 머무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매장을 보게됨으로써 드라이아이스 성벽이 밴드왜건 효과 자체를 극대화한다”고 말했다.

 일부 부작용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모(25·여)씨는 “아이들이 드라이아이스를 자꾸 만지려 해 다치지 않을까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용 또한 만만찮다. 한 점포주인은 “개문냉방을 할 때는 한 달 전기세가 400만원인데 드라이아이스는 한 달에 거의 10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명동에서 드라이아이스 성벽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의류매장 주인은 “원화가치가 오르면서 손님이 자꾸 줄고 있다”며 “드라이아이스로 손님을 끄는 건너편 매장이 부럽다”고 말했다. 명동에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다른 업체들은 곧 드라이아이스 산성을 설치할 계획이다. 익명을 원한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규모가 제한돼 한쪽 손님이 늘어나면 다른 쪽은 줄어드는 화장품 시장의 특성 상 손님을 가져가는 다른 업체의 판촉 수단을 두고보기 어렵다”며 “드라이아이스 물량이 많지 않아 수급이 해결되는대로 따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서울 중심가 매장들은 2012년 개문냉방을 단속하기 시작한 이래 손님을 끌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자동문 센서 앞에 아르바이트 판촉 요원을 세워 놓아 문이 계속 열려 있도록하는 게 대표적이었다. 올해도 개문냉방을 하는 곳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20일 취재진이 명동을 방문했을 때 자동문 전원을 끄고 문을 열어둔 채 영업을 하는 점포들이 있었다. 이유를 묻자 주인은 “잠시 환기 중”이라며 서둘러 문을 닫았다. “50만~300만원 과태료를 내는 게 낫다”며 그냥 개문냉방을 하는 곳도 있었다. 한 의류매장 주인은 “백화점같은 대형 매장에 적용되던 실내온도 26도 단속도 올해부터 없어졌는데 영세업자를 대상으로 한 개문냉방만 단속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구혜진 기자

글=윤소라(숙명여대 영어영문) 인턴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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