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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때문에 전쟁 져" … 빼앗겼던 대포 전시한 중국

청나라 군함 제원함에 장착됐다가 일본에 빼앗겼던 독일제 크루프 대포 2문이 북양함대 사령부 자리에 전시돼 있다. 중국은 뤼순 앞바다에 80여년간 수장된 제원함을 1988년 인양했다. [류궁다오=예영준 특파원]

청일전쟁에 종군했던 프랑스 기자 조르주 비고가 파리로 돌아가 1899년 찍은 그림 엽서. 청군의 변발을 잡은 일본군이 조선을 밟고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새벽닭이 울면 한반도에까지 울음 소리가 들린다는 산둥(山東)반도의 웨이하이(威海)시 앞바다에 류궁다오(劉公島)란 이름의 섬이 있다. 120년 전 중국인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긴 역사의 현장이다. 섬나라 일본에 맥없이 무릎을 꿇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넘겨준 청일전쟁의 마지막 전장이 바로 이 류궁다오였다.

육십갑자가 두 번 지난 지금 류궁다오에 세워진 갑오전쟁박물관에선 평소보다 많은 관객들이 와서 당시의 아픔을 되씹고 있었다. 갑오전쟁은 청일전쟁의 중국식 명칭이다. “연간 1백만명 이상이 오는데, 올 핸 예년보다 관람객이 훨씬 많다”고 왕지화(王計華)부관장은 설명했다.

 청의 주력 해군 북양함대 사령부 자리에 전시된 구경 210mm의 대포(유효사정거리 5㎞) 2문이 눈길을 끌었다. 북양함대는 독일 군수회사 크루프가 만든, 당시로선 최신예 무기인 이 대포를 순양함인 제원함(濟遠艦)에 장착했다. 이 대포를 제대로 쏴 보지도 못하고 황해 해전에서 패퇴한 제원함은 일본군에 의해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접수됐고, 10년 뒤엔 일본 해군의 일원으로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뤼순 앞바다에 침몰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끝에 80여년간 수장돼 있던 이 대포를 1988년 기어이 인양해 원래 자리인 류궁다오 박물관으로 옮겼다. 왕 부관장은 “우리 박물관에서 가장 의미 있는 유물”이라며 “이 기구한 운명의 대포 속에 중국의 굴곡진 역사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말했다.

 부끄러운 역사도 숨김없이 후세에 전해 거울로 삼기 위한 박물관의 설립 취지는 시모노세키(馬關) 조약 서명 장면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한 것에서도 느껴졌다. 패전국 청의 대신 이홍장은 일본 총리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인 시모노세키까지 건너가 랴오둥반도와 대만을 일본에 바치는 굴욕적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 밀랍 인형 속 승자와 패자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진열관 내부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분위기는 중국 곳곳에 있는 항일전쟁 기념관과는 사뭇 달랐다.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의 만행을 강조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전시물이나 고난을 딛고 선 중국의 부흥을 강조하는 선전물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쟁의 경과와 의미를 설명하는 전시물과 유물들이 많았다.

 당시의 함선 모형 앞에 선 단체 관람객에게 한 여행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아시아 최강의 철갑전함 정원함과 제원함을 보유해 그 전력이 일본에 뒤지지 않았는데 패전한 이유는 뭘까요? 당시 청나라 조정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실권자 서태후는 이화원 증축 공사에 예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멀쩡한 대포에 장착된 포탄은 제대로 된 게 없었습니다.”

 류궁다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포대에는 당시 북양함대를 지키던 대포가 복원되어 있었다. 관리인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왜 이런 훌륭한 대포를 놔두고도 패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부패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청일전쟁 120주년을 맞는 중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한 편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으로 치러졌던 지난 7일의 노구교 사건 기념일과 달리, 청일전쟁 120주년 기념일은 요란한 반일 행사보다는 조용하게 패전의 원인을 되새기고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각오를 다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중국군 기관지인 해방군보는 연초부터 시작한 연재 기사를 통해 화력이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던 중국이 왜 패전했는지를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파헤쳤다. 왕 부원장이 요약해 준 결론은 이랬다. “중국은 적을 너무 알지 못했다. 청 조정에서 이홍장만이 일본의 위협을 경고했지만, 혼자로선 역부족이었다. 청나라는 정치 부패로 있는 힘 조차 한 데 모을 수 없었다. 국가 총동원체제인 일본을 이길 수 없었던 건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고난의 역사를 망각하면 중국의 꿈도 없다.”

웨이하이=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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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