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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 캡틴은 '여왕의 남자'

태극기가 새겨진 모자를 쓴 박인비(오른쪽)가 약혼자 남기협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퍼팅 훈련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9월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뉴시스]
24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케이브스 밸리 골프장 프레스 센터. 박인비(26·KB금융)는 세계여자골프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 개막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센터 구석엔 구리빛 피부의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박인비의 기자회견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올 가을 박인비와 결혼할 ‘여왕의 남자’ 남기협(33)씨였다.

 박인비의 약혼자이자 스윙 코치인 남씨는 약혼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에도 항상 이렇게 꼭꼭 숨어 있다. 박인비는 “한국팀엔 공식 캡틴이 없는데 팀의 리더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는 “리더는 없다. 4명 모두 나이가 비슷해서 중학교 때 국제대회에 나갈 때처럼 즐겁게 경기할 것”이라고 했다.

 ‘여왕의 남자’ 남씨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거북해한다. 지난해 박인비가 그랜드슬램 도전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자 사진에 찍히기 싫다고 카메라에서 도망 다니기도 하던 그다. 노출 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남씨는 “선수가 주인공이다. 나는 인비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다. 아직도 자신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뭔가를 물어보면 항상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인비가 다 했다”고 하다가 “박인비가 오빠의 도움을 받았다고 하던데”라고 취조(?)를 당하고 나서야 “아, 그건 내가 조금 고쳐줬다”고 수긍하는 정도다.

 세계여자골프의 월드컵 격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도 그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 대표인 유소연(24·하나금융)은 기자회견에서 “누가 한국 팀의 리더인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한국의 캡틴은 나도 아니고, 최나연·김인경·박인비 언니도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인비 언니의 약혼자가 우리의 캡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여왕의 남자’가 한국팀의 감독이라는 말도 나왔다. 유소연은 “한국 팀의 전략을 그가 짜줬다. 누가 파 5홀에서 강한지, 우리의 상대가 누구인지 그가 다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대표 선수들은 남씨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른다.

우승컵 앞에 선 유소연·최나연·박인비·김인경.
 박인비가 프로암 경기를 하는 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던 남씨는 ‘캡틴’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으레 그런 것처럼 몇 차례 추궁성 질문이 이어지고 나서야 캡틴 역할을 실토했다. 남씨는 “한국 선수들의 연습 라운드를 봤더니 모두 샷이 좋더라. 선수들의 샷과 코스 등 종합적인 상황을 보면 결국 퍼트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이번 주 퍼트 감이 좋은 김인경과 유소연을 다른 조로 나누는 게 어떻겠느냐고 (인비에게) 제의했다. 퍼트가 좋은 두 선수가 다른 조에 있어야 양쪽 조 모두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LPGA 투어 정세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브레인으로 박인비의 그랜드슬램 도전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박인비는 물론 다른 LPGA 투어 정상급 선수들의 컨디션과 샷 감각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인터내셔널 크라운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에 대해서도 잘 아는 건 물론이다.

 남씨는 국내 남자투어에서 활약했던 프로 골퍼 출신이다. 그래서 걸음걸이나 샷 하나만 봐도 선수들의 몸상태와 심리 상태 등을 손쉽게 파악한다. 2008년 국내 메이저인 KPGA 선수권에선 8위에 오르기도 했다. 남씨는 “남부럽지 않은 장타를 날리면서도 퍼트를 잘못해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골프를 그만뒀다”고 털어놓았다. 남씨는 은퇴 이후엔 골프장에서 코스 관리 등의 일을 하기도 했다. 박인비가 골프가 안 돼 포기하고 싶다고 할 때 “골프 선수는 꿈의 직업”이라고 만류했던 것도 그였다.

 퍼트 때문에 선수의 꿈을 포기한 남씨가 천부적인 퍼트감을 가진 박인비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박인비를 통해 꽃피우려 하는지도 모른다. 남씨는 바늘과 실처럼 박인비와 항상 붙어다닌다. 퍼트 훈련을 할 때는 양산을 씌워주기도 하고, 연습 라운드 도중 언덕길을 만나면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박인비는 그걸 즐기는 듯한 표정이다. 박인비는 “중요한 경기 때도 오빠(남기협 씨)의 모습은 항상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두 사람은 9월26일 경기도 파주의 서원밸리 골프장에서 야외 결혼식을 올린다. 박인비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도 중요하지만 여자골프 최초의 국가 대항전 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갈 수만 있다면 최고의 결혼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J골프가 26일 오전 0시30분에는 스웨덴과의 2차전, 27일 오전 4시에는 일본과의 3차전을 생중계한다.

볼티모어=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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