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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남의 돈으로 북녘 인프라 깔자"

[일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세상 공짜 없다. 솔깃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통일 후 북한에 새로 깔 인프라 비용이 엄청날 거다. 그렇다면 막대한 통일 비용을 줄일 방법은 없을까. 이럴 때 요긴한 게 선현의 지혜다. 이미 1990년 고(故) 남덕우 전 총리가 묘책을 냈다. 남의 돈 쓰자는 거다. ‘동북아개발은행(NEADB)’이란 걸 만들어 외국 자본으로 북한 인프라를 놓자는 아이디어였다. 20여 년 뒤인 지난 3월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에서 밝힌 방안도 여기에서 나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추진하겠다며 한국의 동참을 요청, 찬반 논란이 뜨겁다. AIIB는 아시아의 인프라 투자 지원을 위해 중국이 내년에 출범시키겠다는 지역개발은행이다. 당초 500억 달러를 내놓겠다던 중국은 최근 1000억 달러를 출연하겠다며 판을 키웠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 은행의 청사진이 NEADB와 많이 닮았다는 점이다. 잘만 하면 남의 돈으로 북녘 땅을 개발하겠단 소망이 이뤄질지 모른다. 분명 박근혜 정부로서는 올라타고 싶을 게다. 하나 그러자니 한국의 AIIB 가입을 대놓고 막으려는 미국 입장이 큰 부담이다.

 세상엔 AIIB 같은 개발은행은 꽤 있다. 세계은행(IBRD)을 필두로 유럽개발은행(EBRD)·중남미개발은행(IDB)·아프리카개발은행(AfDB), 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세워져 있다. 그 탓에 “아시아엔 ADB가 있으니 이걸 확충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나 이는 실정을 모르는 소리다. 지금은 덜해졌지만 ADB는 일본이 자기 입맛에 맞게 꾸려온 기구다. 60년대 초 일본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아시아, 특히 동남아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게 ADB다.

 당초 미국은 ADB 설립을 반대했다. 미국 주도의 IBRD와 경쟁한다는 거였다. 그러다 베트남전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ADB 지지로 입장을 바꾼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남아에서의 경제개발이 절실해진 탓이었다. 이런 사연으로 ADB의 2대 지분국 미국은 일본의 독주를 묵인해 왔다. 66년 창설 이래 9명 총재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그것도 죄다 고위관료 출신 아니면 정부와 관련 깊은 인사다. 그러니 일본 정부와 관련이 없을 수 없었다. 2010년 한때 중국이 ADB 총재를 넘본 적이 있었다. 하나 일본이 끝내 막후 로비로 주저앉혔다. 기여금을 더 내겠다는 중국 측 요구도 계속 묵살당하고 있다. ADB 내 중국의 발언권이 커지는 걸 두려워한 일본의 견제 때문이다.

 ADB가 일본의 독무대가 되면서 생긴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ADB 자금이 특정국에 편중됐다. 67~72년 동안에는 전체 지원금의 78.5%가 한국·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5개국에 몰렸다. 하나같이 일본의 주요 투자국이었다. 공사 수주도 일본이 압도적이었다. 같은 기간 전체 사업비의 41.7%를 일본이 챙겼다. 이로 인해 “ADB가 일본 정부의 하부기관이냐”는 소리까지 나왔다. 실제로 연구 결과 일본의 해외 차관과 ADB의 지원 패턴이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더 중요한 건 아시아의 인프라 투자수요에 비해 지금의 ADB 자금 공급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아태지역 인프라 투자수요는 연간 7000억 달러 규모를 넘는다. 이에 비해 IBRD와 ADB가 지원할 수 있는 건 불과 5%도 안 된다. 그러니 AIIB 같은 제3의 개발은행이 몇 개 더 생겨도 모자랄 판이다.

 설사 AIIB가 중국 주도로 끌려간다 해도 이를 반대할 명분이 약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입에 발린 소릴지언정 나카오 다케히코(中尾武彦) ADB 총재가 “AIIB 설립을 환영한다”고 밝히는 배경이다. 미국이 뽑은 김용 IBRD 총재마저 AIIB 지지를 선언했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현 ADB로서는 북한 내 인프라 투자를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사실이다. ADB 지원을 받으려면 국제기준에 맞게 각종 경제통계를 공개해야 한다. ‘비밀의 왕국’ 북한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 1993년 이래 줄기차게 ADB 가입을 추진해 왔지만 번번이 문전박대당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이 전폭적으로 북한의 가입을 미는데도 요지부동이다. 그러니 AIIB가 생겨 까다로운 조건 없이 북한 내 인프라에 투자해 준다면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AIIB가 출범해 북한 내 인프라 투자가 가능해진다면 어느 나라보다 한국 기업체가 먼저 달려가야 한다. 통일 후 도로·통신·전력망 등의 호환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우리 업체가 맡는 게 백번 옳다.

 이런저런 면을 감안할 때 AIIB 참여에 따른 실익이 막대하다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도 이제 국익이 걸린 사안에서는 자주적으로 판단할 형편이 됐다. 미국의 반대가 AIIB 가입의 최대 변수가 돼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의 전횡이 걱정되는 터라 차라리 미국의 AIIB 참여를 유도하는 게 상책 아닐까.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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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