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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최고 오락책임자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지지고 볶고 엎치락뒤치락…. 제 눈에 안경 아니겠니….”

 지난달 12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혼인미사에서 하객이 함께 부른 축가다. 소탈한 일상 언어가 담긴 가사는 박용만(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두산그룹 회장이 지었다. 미사는 그의 둘째 아들 결혼식이었다. 다른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에 비해 박 회장은 유쾌한 파격을 즐긴다. 그런데 그가 심각했다. 23일부터 제주도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상의 포럼에서다. 수백 명의 기업인이 휴가를 겸해 온 자리다. 실무진이 만든 개회사를 그가 다 뜯어고쳤다고 했다. 그래서 기대했다. 뻔한 회장님 말씀이 아니길. CEO로서 그의 장점은, 일은 매섭게 해도 최고오락책임자(Chief Entertainment Officer) 역할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빗나갔다. “우리가 직면한 대내외 현실이 지금 저희에게 쉬게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잠시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 시기입니다만….” 물론 머리 식히고 가라고 했고, 야외 활동도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맘 놓고 쉬긴 어려울 것 같았다. 개회사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자리에 모인 CEO들의 이심전심이기에 그렇다.

 기업인에게 맘 편한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 근원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안팎의 경기다. 특수 상황이 그 위에 더해진다. 닦달이다. “투자해라” “돈 풀어라” 하는 얘기 말이다. 말은 쉬운데 ‘그래 결심했어’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투자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팀, 결심을 닦달하는 듯하다. 뭐든 해 보겠다는 의욕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기업이 세금 다 내고 필요에 의해 저축한 자금(사내유보금)을 꺼내 놓으라는 발상은 동의하기 어렵다. 핵심은 그 돈에 세금을 물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열쇠는 “취지는 공감하지만…”이란 기업 반응 안에 있다. 이 정책의 취지는 돈을 풀어 내수를 살리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서가 틀렸다. 금리 낮추는 게 먼저다. 수출로 번 돈 국내에 풀라는 취지도 있다. 그렇다면, 시각이 낡았다. 과거 투자는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 간 팀워크의 결과였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 투자는 한국 정부와 외국 정부 간 경쟁의 결과다. 이런 상황에선 채근만 하면 나올 돈도 숨는다. 투자 못 해 가장 답답한 곳은 앞으로 먹고살 걱정이 그만큼 커지는 기업이란 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경제팀에 필요한 것은 회초리나 양보 요청보다 최고오락책임자 같은 역할이다. 지친 기업의 기를 살리고, 웃게 하고, 그래서 더 과감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정부가 경쟁 상대로 삼은 ‘아베 노믹스’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마음이 풀려야 비로소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다. 정부가 하려는 게 경제 경직화가 아니라 활성화 아니던가.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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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