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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우크라이나 때문에 쓰라린 날 올 것"…68년, 93년 두 차례 예견

푸시킨 국립미술박물관에서 열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란 전시회를 방문하는 손님. [세르게이 사보스티야노브]


2014년 5월 러시스카야 가제타는 “‘붉은 바퀴‘의 저자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펼친 예언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붉은 바퀴’는 저명한 반체제 작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14~1917년 러시아에 대해 쓴 소설 형식의 장편 서사시다. 신문은 “저자가 반세기 전에 본 것이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 관한 솔제니친의 평가를 자주 인용한다. 솔제니친은 현재 러시아 안팎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을 수십년 전에 예언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는 평을 받는다.

‘수용소 군도’의 인용은 다음과 같다. 솔제니친은 1968년 “우크라이나 때문에 매우 쓰라린 날이 올 것이다. 그들 모두가 분노해 있다는 사실을 지금 이해해야 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해결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우리는 연방주의자건 분리주의자건 그들 스스로 서로 설득해 결정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양보하지 않으면 광기와 잔혹성만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가 온화함과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할수록 미래에 다시 통합할 수 있는 희망은 커진다”고 썼다.

솔제니친이 망명 때 일하는 모습, 1950년대. [빅터 바세닌]
신문은 “20년 전 솔제니친은 이미 정치적인 탐욕을 지닌, 오늘날의 갈등을 이미 봤다. 그 갈등은 민족적 정의를 은폐하고 있다”고 했다. 솔제니친은 당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서부 우크라이나에 있는 레닌의 동상이 파괴될 때 왜 서부의 우크라이나는 아주 이상하게도 레닌이 아버지세대에게 독립 박탈에 대한 ‘마음의 위로’로 준 국경에 계속 머무르기를 원하는가.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 땅이 아니었던 옛 노보로시아, 돈바스와 레보베레지아의 상당 부분이 우크라이나로 병합됐다. 흐루시초프는 크림 반도도 지체없이 선물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은 이 ‘거룩한 레닌의 국경’ 뒤에 서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이 내용은 1993년 12월 ‘즈베즈다(별)’지에 처음 소개됐다.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이자 기자인 파벨 바신스키는 “솔제니친이 매우 구체적인 사상가, 그것도 앞일을 예견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분석하고 조언을 하는 긍정적 성향의 사상가였다”고 말했다. 솔제니친 탄생 10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이 고전작가가 남긴 조언에 대해 생각해 볼 적기라는 말이 나온다. 신문뿐 아니다. 출판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솔제니친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온다.

솔제니친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가 가까워지면서 추모 분위기는 더욱 두드러진다. 정부는 기념 행사를 준비중이다. 올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유명한 러시아 작가이자 사회활동가 솔제니친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에 관한 법령에 서명했다. 그가 탄생한 1918년을 기준으로 기념일이 4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떠들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솔제니친이라는 인물과 그가 남긴 문화적·사회적 유산이 오늘날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90세에 사망한 솔제니친은 긴 생애 동안 문학에만 전념하진 않았다. 젊은 시절엔 2차 대전에 참전해 전방에서 싸웠고, 수용소 생활 중엔 공사장과 비밀 과학설계국에서 일했으며, 형이 끝난 후엔 수학 및 물리학 교사가 되었다. 중년에는 종교철학적 탐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가져다준 것은 작가와 사회평론가로서의 활동이다.

4명의 러시아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 중 한 명(1970년 수상)이라는 사실과 특히 전 세계 독자에게 처음으로 소련 강제노동수용소 수감자의 삶과 스탈린의 박해를 솔직하게 이야기한 ‘수용소 군도’라는 작품을 소개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줬다. 솔제니친은 1945년 스탈린 체제 비판이라는 반소련행위죄로 교정노동수용소 8년형과 영구추방을 선고받았다.

‘수용소 군도’는 1968년 탈고됐다. 당시 소련에서 이 작품이 출간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첫 출간지는 프랑스였다. 소련에서는 사미즈다트(지하 출판)을 통해서 작품을 접할 수 있었으나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KGB가 작품의 발행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추종자를 엄격히 감시했기 때문이다. ‘수용소 군도’를 읽거나 배포할 경우 실형이 선고되었다. ‘수용소 군도’에 대한 출판 금지는 1980년대 말 해제되었다.

1974년 정부는 ‘수용소 군도’의 외국 출간과 솔제니친의 반체제 활동에 대해 그의 국적을 박탈하고 해외로 추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솔제니친은 20년간 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 지내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소련 붕괴뒤 1994년 솔제니친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반공산주의자이자 소련 체제의 흠결을 들춰냈던 그가 러시아의 과거와 미래를 정교적-애국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확고한 보수주의자이자 국가주의자로 변하면서 비판이 나왔다.

일부 비평가들은 솔제니친과 그의 작품이 정부의 이익과 목표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한때 시대의 첨단을 달리며 지성과 가슴을 울렸던 그의 작품들은 젊은 세대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긴 해도 생생한 감정을 북돋우며 행동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딱딱한 시대의 기념비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는 혹평을 했다.

그럼에도 포스트 러시아에서 솔제니친의 창작에 대한 공식 평가는 완전히 긍정적인 것으로 됐다. 출판사들은 그의 작품을 대량으로 출판됐다. 소설 ‘수용소 군도’는 2009년 대부분 학교에서 필수 교육 과정에 포함되기까지 했다.뒤 이어 그는 정부 및 기타 훈장도 받았다. 러시아와 다른 나라에서 그는 현대 러시아 문화의 상징이 됐다. 솔제니친은 금지된 작가로부터 가장 ‘허락된’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마리아 오세트로바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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