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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경 사퇴의 변 '검찰을 떠나면서'

최재경(52) 인천지검장이 24일 오전 검찰내부통신망에 ‘검찰을 떠나면서’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최 지검장은 이 글에서 27년간 머물렀던 검찰을 떠나게 된 소감을 밝히고, 세월호 수사팀과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최 지검장은 유병언(73) 청해진해운 회장 검거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수사에 착수한 지 95일 만이다. 다음은 최 지검장의 글 전문이다.



'검찰을 떠나면서'



이제 검찰을 떠나려 합니다.



젊음을 다 바쳐 사랑했고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입었던, 몸에 익은 둥지를 떠나면서 어찌 아쉬움이 없겠습니까마는 언젠가는 떠나야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홀가분하게 짐을 챙겼습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소문 검찰청사에 첫 출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국가와 검찰에 기여한 바도 없이 청춘만 헛되이 보낸 것 같습니다.



그때의 검은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빛바랜 백발만 가득해 구태여 감추려고 염색한 얼굴을 쳐다보면서 스스로 웃을 뿐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복받은 검사였습니다.



인생은 고해라는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희로애락의 추억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니까요.



모두 검찰가족 여러분 덕분입니다.



27년간 많은 분들과 함께 근무했습니다.



엄격하게 잘못을 꾸짖고 꼼꼼하게 지도하면서 검찰의 기백과 정신을 보여주신 상사들!



힘들 때 찾아가면 바쁜 와중에도 시간 쪼개 다정하게 위로하고 조언해주던 선배들!



패기로 함께 뭉쳐 철야를 밥 먹듯 하며 범죄와 싸우던 동료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잠시도 한눈팔지못하게 선배를 감시하던 후배들!



주야장천 조사실에서 무수한 날밤을 함께 새며 동고동락하던 수사관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도와준 여직원들!



한 분 한 분 그리운 얼굴들이 엊그제인양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여러분들이 성심껏 도와주셨기에 몸은 비록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검사생활을 해왔습니다.



덕분에 큰 후회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힘든 일도 겪었고 억울하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심중의 '정정당당' 네 글자로 스스로를 돌이켜봐도 큰 부끄러움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쉬움은 있습니다.



항상 국민의 편에 서서 거악을 척결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쯤은 씩 웃으며 감수하는 당당한 검사!



수사과정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끝내 인간의 향기를 잃지않는 따뜻한 검사!



좌고우면, 정치권이나 실세에 빌붙지않고 나름대로의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는 꼿꼿한 검사!



이런 검사를 되기를 그토록 소망하고 노력했지만 타고난 자질이 못나고 수양도 부족해서 결국 '화호성구(畵虎成狗)에 그쳤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배·동료의 빼어난 성취를 부러워하면서 후배 검사 여러분의 계속적인 용맹정진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할 뿐입니다.



세월호 수사팀 검사·수사관들과 그분들의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김회종 팀장 이하 윤재필·정순신·주영환 부자아과 12명의 검사, 많은 수사관들이 5·18부터 두달넘게 사무실 야전침대에서 생활하거나 범죄자를 찾아 전국 곳곳을 전전하며 고생했습니다.그동안 가족들의 노심초사 염려는 오죽했겠습니까?



수사과정에서 잘못된 일이 있다면 오로지 지휘관인 제 책임이고,그간의 적지않은 성과는 오로지 이들의 땀과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저의 업과 부덕이 여러분과 검찰에 부담을 더한 것 같아 미안하고 가슴 아픈 데 힘든 시기에 저 혼자 피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검찰은 저력이 있는 조직이고, 여러분의 의지와 능력은 어떤 위기라도 극복하기에 충분합니다. 심기일전해서 도망간 범죄자들을 조속히 검거하고 책임재산을 최대한 확보해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매진해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상에 끝나지않는 잔치는 없고 아쉬운 일은 생각할수록 미련만 더한 법.



특수검사로 거악과 싸운다는 자부심 하나 갖고 검찰의 전장을 돌고 돌다 보니 어느덧 젊은 검사의 꿈과 열정은 스러지고 상처뿐인 몸에 칼날마저 무뎌진 지금이 바로 떠날 때임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을 기억하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검찰을 떠나겠습니다.



긴 세월 베풀어주신 큰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고 혹여 저의못남과 잘못때문에 마음 상하셨을 분들에게 엎드려 용서를 구하면서, 검찰가족 여러분의 건승과 행복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4.7

최재경 배상





온라인 중앙일보



남록지 인턴기자 rokji12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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