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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니의 전설'이 말하길 "영화 속 007의 대사는…"








 
믹싱 글라스에 바 스푼이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스터링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 시선이 한곳에 모이고 믹싱 글라스 속 얼음 세 조각이 한 덩이처럼 회전한다. 스터링을 마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글라스 속 얼음은 거의 녹지 않았다. 진의 향이 부드럽게 퍼지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볼트82 바에서 바텐더 다카오 모리(毛利隆雄·67)씨의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모리씨는 ‘마티니의 전설’이라 불리는 스터(믹싱 글라스에 얼음과 재료를 넣고 가볍게 휘저어 재료를 섞는)기법의 대가다. 바텐더 경력만 45년. 1984,1985년 일본 바텐더 대회에서 1위, 1987년 IBA 세계 칵테일 챔피언을 수상했다. 현재는 긴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모리 바’를 운영하고 있다.

마티니는 ‘칵테일의 왕’이라 불린다. 만들기는 쉽다. 진에 베르무트라는 리큐어를 적당한 비율로 섞으면 된다. 하지만 재료나 방법이 단순할수록 꼼수의 여지가 없어서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바텐더들 사이에선 ‘완벽한 마티니는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마티니가 바텐더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진과 베르무트를 어떤 비율로 얼마 동안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완성되는 마티니의 맛은 천차만별.

모리씨가 만드는 ‘모리 마티니’는 기술적으로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 이번 마스터 클래스를 참관한 김재형(39) 바텐더는 “모리씨의 스터는 손목 회전 없이 손가락만으로 바 스푼을 100회 이상 젓는 수준이다. 웬만한 바텐더들은 따라 하기 힘든 동작”이라며 “모리씨의 경험과 고집이 잘 녹아 있는 ‘모리 마티니’는 재료 배합의 균형감이 뛰어나고 특히 온도 조절 면에서 돋보인다”고 말했다.

흔히 칵테일에 얼음을 넣는 이유를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티니를 만들 때 넣는 얼음은 진의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바텐더들이 진과 리큐어를 차갑게 보관하는데 모리씨의 경우 자주 사용하는 진 ‘부들스’를 영하 20도 냉동고에 보관한다. 이것을 잔에 따라 100회 정도 저어주면 진의 온도를 영하 2도까지 올릴 수 있다. 진은 온도를 올리면 맛과 향이 풍부해진다. 충분히 차가우면서 기름진 질감은 머금고 있다. 진은 스터 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횟수가 많아지면 싱겁고 달콤한 맛이 난다. 어떤 진을 사용하는지, 진의 성격에 맞춰 스터링 수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마스터 클래스가 끝난 후 다카오 모리 바텐더를 만났다.

-한국은 처음이다. 한국 바에 가 봤나.
“일정이 바빠 몇 군데 안 들려봤지만 한국 바는 일본 바와 더불어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 같다. 유럽과 북미의 칵테일은 점점 달콤해지고 있다. 양도 예전보다 많아졌다. 하지만 한국의 바텐더들은 기본에 충실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실제 주량이 궁금하다.
“바텐더 일을 시작한 후 마흔 살까지 술을 전혀 못 마셨다. 술을 처음 마신 건 1987년 세계 칵테일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다. 바 사장님이 취해도 좋으니 마음껏 마셔보라며 축하주를 권하는 바람에 술을 마시게 됐는데 그날 이후로 술을 입에 달고 산다.”(웃음)

-‘까다로운 칵테일’ 마티니에 집착하는 이유.
“마티니는 가장 대중적인 칵테일이다. ‘칵테일의 왕’이라 하지 않는가. 그만큼 손님들이 마티니를 가장 많이 주문하기 때문이다.”



-마티니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의 특성에 맞는 온도다. 진은 종류에 따라 가장 맛있는 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손님이 좋아하는 칵테일을 만드는 것이다.”

-바텐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다. 직업 특성상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바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면 모두가 평등해진다. 내가 만든 칵테일에 대해 손님들의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모리씨가 처음 근무했던 곳은 ‘도쿄회관’이라는 바다. 일본의 바텐더들 사이에선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하는 곳’으로 통한다. 전쟁 후 미군 연합사령부 안에 문을 연 고급 바로 맥아더 연합사령관이 자주 방문했었다.

-언제까지 바텐더를 할 계획인가.
“두 다리로 바에 설 수 있는 날까지 일을 계속 할 거다. 모든 바텐더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일한다.”

-낯선 바에 가서 그곳의 수준을 알려면 무엇을 주문할까.
“예전에는 진피즈(드라이진에 레몬주스를 넣고 소다수를 부어 만든 칵테일)를 주문했는데 요즘은 진 토닉을 시켜본다. 최근 진토닉이 가장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유행하는 칵테일을 마셔보면 바텐더의 실력을 알 수 있다”

-맛있는 마티니를 먹고 싶다면 어떻게 주문해야 하나.
“본인의 스타일이 있다면 바텐더에게 말해주는 게 좋다. 베르무트의 스타일, 진의 종류, 비터를 넣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분명 바텐더가 실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티니를 마실 때 추천하는 안주는.
“올리브를 따로 주문해서 먹는 것이 좋다. 마티니의 쓴맛을 올리브가 중화시켜준다.”

-영화 007의 대사 중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Martini shaken, not stirred)”라는 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 007 덕분에 보드카 마티니를 흔들어(셰이킹) 마시는 게 유행하게 됐다. 만약 그 대사가 없었다면 셰이킹 마티니는 탄생하지 않았을 거다.”

“젓지 말고 흔들어서(shaken not stirred)”는 007 영화의 원작을 쓴 영국 작가 이언 프레밍이 보드카와 리큐어를 섞어 먹는 방법으로 책 속에 종종 등장했던 대사다. 007시리즈에선 ‘골드핑거(1964)’에서 숀 코넬리가 처음으로 이 대사를 사용했다.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15년 전 런던에서다. 젊은 바텐더가 만들어 준 ‘블러디 메리(보드카와 토마토 주스를 섞은 칵테일)’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잔 연속으로 주문했고 그 바의 블러디 메리보다 더 맛있게 만들 수 있게 됐다.”

-도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모리 바’는 필수 코스다.
“한국 바텐더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대부분 마티니를 주문한 후 나와 사진 찍기를 원한다. 물론 모리 바의 모든 마티니는 내가 만든다.”

-‘마티니에는 마티니만의 얼굴이 있다(만화 바텐더 7권의 주제)’고 한다. 당신의 마티니는 어떤 모습인가.
“나만의 색깔같은 건 없다. 내 마티니는 손님의 주문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다카오 모리 바텐더는 ‘칵테일 위크’ 기간 중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를 위해 방한했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칵테일 위크는 17일 개막해 전국 101개 바에서 26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동안 칵테일 위크에 참가하는 바를 방문하면 5가지 이상의 '칵테일 위크 스페셜 칵테일'을 20%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칵테일 위크 홈페이지 (www.cocktailweek.co.kr)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영상=최효정 기자 misirlou@joongang.co.kr
도움말 김재형(몰트바 오프 바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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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