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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시설 ‘중이온가속기’ 연구개발도 파행 불가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가속력을 지닌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강입자가속기(LHC). 지난해 이를 이용해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를 발견했다. [사진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
총 5조원이 투입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사업 완료 시점이 당초 계획(2017년)보다 4년 연기됐다. 과학벨트의 핵심 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사업단의 수장은 모두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떠났다. 중이온가속기 설립을 둘러싼 연구자들의 내분이 원인이 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10년 안에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겠다’며 시작한 과학벨트 사업의 현주소는 암울하다.
[10년 안에 노벨상 수상자 배출 난망]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과학벨트 기본계획’ 사업 기간을 ‘2012~2017년’에서 ‘2012~2021년’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과학벨트가 들어설 거점 기능지구 사업계획이 꼬이면서 핵심 시설인 ‘기초과학연구원(IBS)·중이온가속기 건립 기본계획’도 덩달아 미뤄졌다.
 과학벨트 조성 사업은 이명박(MB)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 핵심 공약이었다. 과학특구인 대전시를 거점으로 청원군·세종시를 아우르는 ‘기초과학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2011년엔 5년간 5조1700억원이 투입되는 기초계획이 세워졌다. 핵심 시설로는 기초과학 관련 50개 사업단으로 꾸려질 기초과학연구원, 그리고 중이온가속기가 꼽혔다.
 하지만 그 후 2년간 과학벨트 사업은 답보상태였다. 기초계획 수립 당시 부지 매입 주체가 명시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정부는 부지 비용을 대전시가 일부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대전시는 전액 국고 부담 방침을 고수했다. 5조원에 달하는 국가 프로젝트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셈이다.
 결국 지난해 8월에야 거점지구의 중이온가속기 부지(신동지구 약 31만 평)를 3600억원에 정부가 매입하되, 기초과학연구원 부지(도룡지구 약 8만 평)는 대전시에서 엑스포과학공원을 20년간 무상 임대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갈등의 상처는 크다. 실시설계가 미뤄지면서 지난해 사업예산 중 70% 이상이 반납됐다. 그 여파로 과학벨트 사업은 당초 계획보다 4년가량 늦어졌다. 오세정 전 원장이 지난 2월 서울대 총장 출마를 이유로 사퇴한 뒤 원장 자리는 5개월째 공석이다.
‘중이온가속기’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심장이다. 건물과 기초장비 구축에 약 1조4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인 ‘라온(RAON)’은 크게 안정화된 이온을 분리하는 이온발생장치와 이를 가속하는 초전도가속기로 구성된다. 가속관의 전기장을 조절하면 1초에 지구를 네 번 이상 도는 속도(200~320MeV/u)로 중이온을 가속시킬 수 있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충돌 시 파편이 튀듯, 중이온과 표적이 충돌하면서 최고 1만여 종의 희귀 동위원소가 튀어나온다. 중이온가속기는 주기율표에 있는 모든 원자의 이온을 가속할 수 있어 생성할 수 있는 희귀 동위원소의 수도 그만큼 많아 활용 범위가 넓다.

[희귀 동위원소로 암 치료 연구]
우주나 별의 진화와 같은 기초연구부터 미세 원소를 통한 염색체의 선택적 절단이 가능해 분자 수준의 암 치료나 생명공학 연구도 가능하다. 특히 라온의 경우 세계 최초로 ISOL과 IF 생성 방식을 모두 채택해 새로운 희귀 동위원소를 발견할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역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5명 중 1명은 가속기를 통한 발견을 통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때문에 중이온가속기는 “10년 안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기초과학연구원의 목표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한 해법이란 평가가 나왔다. 한국의 기초과학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킬 수 있는 핵심 시설이 될 것이란 낙관도 있었다.
 그러나 설립 초기부터 중이온가속기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속기 설계를 놓고 표절 의혹이 이는가 하면, 김선기 전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단장이 부임한 뒤에는 가속 방식을 놓고 입자물리학계와 핵물리학계의 의견이 엇갈렸다. 가속 방식은 중이온가속기 연구 초기 단계인 우리나라로서는 해외 공조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한 과학계 인사는 “초기 설계 단계부터 정해진 입자 가속 방식을 변경할 때 깊은 논의가 없었고, 결국 연구자들 사이의 이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4월 비공개로 진행된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 중간평가 결과 보고’가 외부로 알려지는 일이 빚어졌다. 결국 김 전 단장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사퇴했다.
 중이온가속기에 대해선 아직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라온은 시설 구축부터 실험 과정 전체가 모두 연구개발(R&D)이다. 독창적인 설계에 따른 특수성을 갖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성과가 언제 나올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2021년 시설이 완공된 후에도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서울 소재 A대학의 한 물리학과 교수는 “기초과학의 10년을 내다보고 시작했던 사업인 만큼 조기에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믿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연구동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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