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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2년 새 4배 컸지만 … 달러 자리 넘보기엔 역부족

“또 하나의 도전자.”

 마틴 펠드스타인 미 하버드대 교수가 올 3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도중 한 말이다. 그 도전자는 바로 중국 위안화다. 공식 이름은 런민비(人民幣)다. 중국 산업 생산력을 등에 업고 세를 얻어가고 있다. 지난해 국제 무역결제에서 달러 다음으로 많이 쓰였다. 유로화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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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월간 글로벌파이낸스는 최근 “금융위기 이후 중국 정부가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전략적 노력을 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러시아·남미·아프리카·동남아 등과 교역할 때 달러 배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위안화나 상대국 통화로 무역 대금을 직접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들 국가도 중국의 전략에 동조하는 편이다.

 로이터통신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주도해 브라질·러시아 등과 함께 브릭스 5개국 자체 구제금융 펀드와 장기개발은행을 설립하기로 한 것도 달러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도했다. 두 조직은 달러 패권의 핵심 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을 겨냥한 것이다. 마치 중국이 통화 패권을 넘겨받기 위한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 달러가 1944년 7월 22일 브레턴우즈협정을 통해 ‘통화계의 태양’이 된 지 70년 만에 위상이 흔들리는 것일까.

 영국 통화 전문가인 고(故) 글린 데이비스는 저서인 『화폐의 역사(A History of Money)』에서 “달러는 도전과 위기를 이겨내는 생명력을 과시하며 21세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달러 지위는 이미 두 차례 위협받았다. 첫 번째는 브레턴우즈 체제 27년 만이었다. 미국 경상적자 누적과 자본이탈, 유로머니 시장의 성장으로 71년 달러 금태환이 중단됐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말이었다. 그렇지만 달러 위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국제교역의 핵심 결제 수단이었다.

 두 번째 위협은 일본으로부터였다. 80년대 후반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와 자산가치 급등을 등에 업고 엔화 국제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요즘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노력은 일본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야심은 90년대 거품 붕괴와 장기 침체 탓에 물거품이 됐다.

 달러는 미 경제 부활에 힘입어 기축통화 지위를 여전히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강한 달러론자’인 펠드스타인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파운드화 등이 기축통화에서 밀려난 이유가 바로 폭발적인 국가 부채 누적이었다”며 “이유는 대규모 전쟁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레알화나 네덜란드 길더화, 프랑스 프랑화, 영국 파운드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기 직전에 어김없이 전쟁이 벌어졌다. 30년 전쟁과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나폴레옹 전쟁, 1·2차 세계대전 등이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산업 패권이 넘어간 뒤에도 통화패권은 상당 기간 유지되는 게 역사적 경험”이라며 “이런 현상유지를 통화시스템의 관성(Intertia of Money System)이라고 부르는 전문가도 있다”고 설명했다. 위안화·유로화 등의 도전이 거세지만 달러의 통화패권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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