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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롤모델 안드로포프처럼 … 국제 고립의 길 가나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 격추는 31년 전 소련 수호이 전투기에 피격된 1983년 대한항공 007편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 300명 가까운 민간인이 희생된 것도 그렇지만, 사고 후 책임 당사자로 지목된 소련과 러시아의 대응이 특히 닮았다. 역사의 ‘평행이론’은 국제 정세의 향방도 가늠케 한다. 포린폴리시 등 외신은 KAL기 격추가 초래한 정세 변화를 근거 삼아 이번 사태의 발전에 대해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KAL 007편은 269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전례 없는 참사에 비난이 쏟아졌지만 소련은 격추 자체를 부인했다. 약 1주일 후 사실을 인정했지만 “영공을 침범하고 경고를 무시했다”며 여객기에 책임을 전가했다.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도 “KAL기가 스파이 임무 중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뒤늦게 거짓임이 드러났고 “생명을 경시하고 대학살을 저지른 냉혈 소련”이란 비난이 거세졌다. 소련은 현장 조사 및 수습도 방해했다.

 포린폴리시는 모든 것이 이번 MH17편 피격과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개입하지 않았다”며 부인으로 일관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 땅(우크라이나)이 평화로웠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접근도 친러 반군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미국과 확고한 양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소련은 KAL기 격추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81년 계엄령 선포를 통한 폴란드 자유노조 탄압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던 터라 고립은 더욱 깊어졌다. 이런 상황이 끝내 소련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85년 서기장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국제 무대에서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개방을 내세우며 대외정책의 대변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KAL의 비극이 소비에트의 붕괴를 앞당겼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마침 안드로포프는 푸틴의 롤모델이다. 그는 국가보안위원회(KGB) 총책을 15년간 맡은 뒤 서기장이 됐다. 푸틴 대통령은 KGB 본부에 안드로포프의 명패를 다시 설치하는 등 그를 통해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곤 했다. 롤모델이 그랬던 것처럼 푸틴의 러시아는 비난 속 고립을 자초하는 모양새다. 크림반도 병합으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를 받은 것도 안드로포프가 처했던 상황과 판박이다.

이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든 러시아에는 불리하다는 게 세르게이 라드첸코 영국 애버리스트위스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허위정보와 기망으로 상황을 뒤죽박죽 만드는 게 푸틴의 희망이지만, 이것은 러시아 처지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푸틴의 러시아가 가진 선택지는 ‘고르바초프식’ 하나뿐이란 주장이다. “KAL 007편 때처럼 이번 비극을 변곡점 삼아 서방과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비극의 배경과 전개뿐 아니라 결과까지 31년의 시간차를 같은 역사가 반복되리라는 것이다.

 한편 MH17편 격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유탄을 맞고 있다. 시리아 등에서 직접 개입을 피한 것이 다시 거론되며 햄릿 같은 ‘우유부단 외교’라는 정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세계가 표류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무결단의 왕(King of indecision)’이 됐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미사일에 여객기가 격추된 상황에도 미국의 군사적 역할에 대해 “지금까지 해 온 것 이상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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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