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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박은선이 한국 땅을 탈출하는 이유

파주 NFC에서 몸을 풀고 있는 여자축구대표 박은선 선수. [중앙포토]

송지훈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지난해 발생한 여자축구 스타 박은선(28·서울시청) 관련 성희롱 논란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성을 재확인한 해프닝이었다. 국가로부터 여성임을 인정받았고, 각종 국제대회 출전을 통해 이를 입증했지만 박은선은 축구계 선배이기도 한 여자프로축구리그(WK리그) 감독들로부터 ‘가짜 여자’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1m80㎝·74㎏의 다부진 체격, 탄탄한 근육질 몸매 등 축구선수로서 박은선이 가진 장점들을 문제 삼았다. 이들의 입에서 ‘성별 검사’라는 민망한 단어가 등장하자 보다 못한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지난 2월 해당 지도자들의 발언이 ‘인권침해이자 성희롱’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대한축구협회에 처벌을 권고했다.

 가해자들이 합당한 벌을 받으며 끝날 줄 알았던 ‘박은선 해프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해당 지도자들이 여전히 건재한 가운데 박은선이 ‘탈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박은선은 러시아 여자프로축구 강호 WFC 로시얀카와 계약할 예정이다. 선수의 이적 의사가 확고한 가운데 소속팀 서울시청과 로시얀카가 마지막 협상을 진행 중이다. 가해자 대신 희생자가 떠나는 상황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유럽행 기회인 데다 여자축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연봉 1억원대의 특급 대우지만 박은선은 웃지 않고 있다. ‘진출’이 아니라 ‘탈출’에 가까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당초 박은선은 올 시즌 서울시청을 WK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뒤 유럽행을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마음을 바꿨다. 자신을 상대로 ‘마녀사냥’을 벌인 지도자들이 변함 없이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다. 성희롱 가해자들은 여자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의 ‘처벌 떠넘기기’ 과정에서 이렇다 할 징계를 받지 않았다.

 서정호 서울시청 감독은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뒤 (박)은선이가 해당 지도자들을 먼발치에서만 봐도 두려움에 떨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봐 온 사람들이라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걸출한 공격수를 시즌 중에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박은선의 심리 상태를 에둘러 설명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건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는 한편,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약자를 괴롭히는 몰상식한 행동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 불편한 환경과 따가운 시선을 피해 유럽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박은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송지훈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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