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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골든타임은 또 유실되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빨리빨리 하기로 세계적으로 소문난 한국인이 유독 사태 수습에는 암울할 만큼 느림보 걸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납기일에 맞춰 주문 상품을 제조하거나 대형 아파트 단지를 순식간에 건설하도록 독려하는 이 ‘빨리빨리’ 유전자는 그러나 대형 참사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는 그 유별난 끼를 발휘하지 않는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98일째, 실종자 10명은 아직 어두운 바닷속에 잠겨 있고 300여 명의 어린 생명이 수장된 원인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언론 방송이 제각각 건져 올린 크고 작은 요인들을 서로 잇대 붙이는 방식으로 궁금증을 풀어 왔을 뿐이다.



 JTBC 9뉴스가 지난 두 달에 걸쳐 지속적으로 제기한 ‘왜?’라는 질문과 심층취재는 해운 관리와 해상구조의 난맥상을 비춰 준 내시경이었다. 속은 부정과 비리로 썩어 있었다. 국가의 공적 책무가 작동해야 할 영역에 이익결사체가 번식하는 추악한 모습은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거나 재난안전 업무를 이리저리 떼어 옮긴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려 줬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가 진상 규명을 향해 첫걸음이라도 떼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방선거와 월드컵에 잠시 한눈을 팔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단호하게 발령한 국가혁신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은 아니었다. 첨단 장비를 총동원해도 잡히지 않는 유병언이 설령 제 발로 걸어 나온들 참사의 1%도 해명되지 않을 것임을 다 알고 있는 마당에 특별법 제정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국회와 ‘국가혁신 특별내각’에 함량 미달 인물들을 앉힌 정부의 경박한 행태가 결국 긴 한숨을 뱉게 만든다.



 오죽했으면 애들이 나섰을까. 저렇게 나서는 것 외에 자신을 달랠 길이 없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도보 행진은 무능정치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질타이자 무책임사회에 던지는 미래 세대의 비난이었다. 학생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거듭되는 악몽 속에서 보고 싶은 친구들과 거듭 작별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죄의식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며 겨우 들고 선 피켓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 주세요’라고. 객관적 설명을 갈구하는 상처받은 영혼의 절규가 아닌가.



 이 정도 소망을 못 들어주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어린 학생들의 외상 후유증이 어떻게 그들의 꿈과 일상을 갉아먹는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회는 후진사회다. 학생 외에도 일반인 희생자들이 있다. 세월호 화물칸에 선적한 배송품을 한꺼번에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업자들, 트럭과 장비가 수장되고 빚쟁이로 전락한 소기업 사장들의 재기를 돕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한국이고 그게 지난 석 달 만천하에 드러난 우리들의 자화상임을 인정해야 한다.



 최장집 교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를 낳은 메커니즘을 세 가지로 지적했다(중앙일보 7월 9일자). 첫째는 국가 업무의 외주화와 역으로 확산되는 공적 책임의 희석화다. 예컨대 언딘이나 한국선주협회로 재난구조와 관리 업무가 외주화될수록 이윤 추구의 연쇄 고리가 승해지고 책임 소재는 오히려 약화되는 것. 둘째, 위험사회의 ‘위험’이 불특정다수에 적용되는 선진사회와는 달리 재난 위험이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는 한국의 현실. 셋째, 도덕적 의무감의 내면화와 실행의지를 소멸시키는 비정규직의 양산. 이 세 가지 바탕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뼈를 깎는 대오각성’ 내지 ‘안전선진국’에 부응하는 국가혁신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유별난 효율성, 이윤, 시장경쟁에 매몰된 사회를 형평성, 상호호혜, 공동체정신이 살아나는 공간으로 이전시키는 범국민적 자각이어야 한다.



 ‘저는 법을 몰라요, 이렇게라도 나서야 했습니다’. 국회를 향해 걷는 생존 학생이 조심스레 내뱉은 말의 의미가 이것이다. 이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가 어디 있을까. 법, 사회, 역사를 알고 있는 어른들이 좀 어떻게 해 달라는 호소다. 친구들이 왜 주검으로 돌아왔는지, 살아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이런 일이 다시 안 일어나게 단단한 대비책을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이런 호소를 듣지 못하는 정권은 정권이 아니다. 마치 세월호 침몰 직후 ‘구조(救助) 골든타임’을 놓친 그 치명적 실수처럼 진상 규명과 구조 개혁에 머리를 맞대야 할 ‘혁신 골든타임’에 청문회, 내각 구성, 기타 소소한 정치일정에 넋이 나간 정권이 우려스러워 하는 말이다. 그러던 지난주 수색 지원을 나섰던 소방헬기가 도심에 추락했다. 베테랑 기장은 땅에 충돌하는 그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다. 시민은 이러한데 정권은 조종간을 놓고 있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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