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갈등 해결의 성공 사례들
복지부와 광진구청은 부랴부랴 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었다. 주민 대표, 복지부 간부, 구청 대표, 구의원, 갈등 조정 전문가 등으로 21명의 위원이 선정됐다. 2009년 2월부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재건축을 원하는 복지부와 다른 곳으로의 이전을 요구하는 주민 대표는 평행선을 달렸다. 반년 동안 확인한 것은 이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중 2009년 여름 제3의 대안을 찾는 회의에서 ‘바이오 벤처 유치’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위원회에 조정 전문가로 참여한 이강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갈등해소센터 소장에 따르면 참고용 연구 발표자로 회의에 참석했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한 연구원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를 제시했고, 위원들이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바이오 벤처 유치를 포함한 ‘종합의료복합단지’ 구성으로 초점이 모아졌다. 지역경제 발전을 원하는 주민들의 이해에도 맞아떨어지는 일이었다. 그해 말 주민 여론조사를 거쳐 이 안은 확정됐다. 정부와 주민의 ‘윈윈’ 협상이었다. 이 소장은 “공식회의 30차례, 실무회의 20여 차례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성실하게 대안을 모색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국립서울병원의 경우는 국내 갈등 조정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해외에서는 미국 워싱턴주 스노퀄미강 댐 건설이 표본으로 자주 거론된다.
1959년 시애틀 동부 지역에서 큰 홍수 피해가 나자 워싱턴 주정부는 스노퀄미강에 댐을 짓기로 했다. 저지대의 주민들은 환영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강변에서 좀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도 환경 훼손을 걱정하며 반대했다. 강 하류 지역의 과도한 개발 붐도 우려됐다. 그 결과 댐 건설사업은 15년 동안 표류했다. 1974년 워싱턴주립대의 제럴드 코믹 갈등조정연구소 소장이 나섰다. 그는 찬반 양측 대표 12명으로 위원회를 만들었다. 4개월간의 지속적 만남 끝에 이들은 대안을 마련했다. 당초 계획됐던 큰 댐을 짓지 않고 상류에 작은 댐 2개를 만드는 안이었다. 대신 하류 쪽에 제방을 쌓아 홍수 통제 기능을 보완하기로 했다. 개발 붐을 막기 위해 토지 이용 규제를 강화하는 법도 만들기로 했다. 이 일은 미국에서 조정 전문가의 중재에 의해 환경·개발 분쟁을 해결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강영진 성균관대 갈등해결센터장에 따르면 그 뒤 10년 동안 미국에서 160여 건의 환경 분쟁에 조정 전문가의 중재가 진행됐고, 그중 4분의 3 정도가 성공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