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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쉐량 사진 보고 침 삼킨 ‘마지막 황제’의 제수 탕스샤

완룽(뒷줄 왼쪽 두번째), 원슈(뒷줄 왼쪽 세번째), 탕스샤(오른쪽 첫번째)를 데리고 꽃구경 나온 근비(瑾妃). 1921년 무렵. 자금성 어화원(御花園)으로 추정. [사진 김명호]
탕스샤(唐石霞·당석하, 1904~?). 중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1949년 홍콩으로 이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홍콩 생활이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가명으로 서화전을 연 것 외에는 언제 죽었는지도 불분명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탕스샤의 산수화와 글씨들이 돌아다녔다. 그래도 주목은 받지 못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83>

푸제(왼쪽)의 젊은 시절.
91년 장쉐량(張學良·장학량)의 입에서 탕스샤로 추정되는 여인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젊은 시절 푸제(溥杰·부걸)와 친했다. 어쩌다 보니 그의 부인과 가까워졌다. 한때 은밀한 사이였기에 누구라고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서장대신(西藏大臣, 티벳의 행정장관)의 딸이었던 그 여인은 한때 푸이(溥儀·부의)의 부인이 될뻔한 적도 있었다. 평소 아버지는 ‘음탕한 여자가 매력은 있지만, 잠시라면 몰라도 오래 만날 건 못 된다’는 말을 자주했다. 내게 아버지의 말이 맞다는 걸 일깨워 준 여자였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교양만 가득차 있었다. 지혜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총명이 극에 달했지만 몸가짐은 형편없었다. 몰래 만나는 남자가 나 말고도 많았다. 나를 갖고 놀려고 했다.”

장쉐량의 말이 입소문을 타자 싱거운 호사가들이 분주해졌다. “탕스샤가 분명하다.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생겼기에, 민국 4공자 중 두 사람인 장쉐량과 루샤오자(卢筱嘉·노수가)의 정부(情婦)였는지, 한번 봤으면 원이 없겠다. 장쉐량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 황제 푸이와 동생 푸제의 여인들이 화제의 인물로 등장했다. 세 살 때 황위에 오른 푸이는 광서제(光緖帝)의 황후 융유태후(隆裕太后)와 태비(太妃)들 틈에서 성장했다. 자식이 없던 태후는 푸이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 항상 혼자서 끼고 돌았다. 태비들은 융유의 기세에 눌렸다. 젖먹이 황제에게 장난감 쥐어줄 때도 태후의 눈치를 봤다.

태후가 세상을 떠나자 4명의 태비들이 푸이를 놓고 각축전을 벌였다. 근비(瑾妃)가 나이도 많고 친정이 든든했다. 근비는 친정 조카들을 궁궐로 끌어들였다. 조카들 중에는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다. 탕스샤가 돋보이자 다른 애들은 출입을 금지시켰다. 탕스샤는 시(詩)·서(書)·화(畵)에 능했다. 요리 솜씨도 뛰어났다. 근비는 소문난 미식가였다.

궁중에서 자란 탕스샤는 어릴 때부터 푸이와 친했다. 푸이도 두 살 위인 탕스샤를 누나라 부르며 잘 따랐다. 푸이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태비들은 긴장했다. 근비가 건재하는 한, 황후감은 탕스샤가 가장 유력했다.

“탕스샤가 황후가 되면 자금성(紫禁城)은 근비의 손에 들어간다”며 3명의 태비가 힘을 합쳤다. 근비는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완룽(婉容·완용)을 황후에 추천했다. 태비들은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푸이는 같은 날 완룽과 원슈(文繡), 두 명의 여인과 결혼했다.

근비는 황후를 꿈꾸던 탕스샤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너는 방탕한 게 흠이다. 황후감은 아니다. 너보다 세 살 정도 어린 남편감을 구해주마.” 약속도 지켰다. 탕스샤가 20세가 되자 푸제에게 출가시켰다. 당시 푸제는 열 일곱살이었다.

탕스샤는 동서들(푸이는 같은 날 완룽과 원슈 두 명의 여인과 결혼했다)끼리 원만하게 지냈다. 남편과는 결혼 첫날부터 삐걱거렸다. “황실은 망해 싸다. 무슨 남자들이 쓸데없는 교양으로만 가득차 있다. 게을러 터진 것들이, 먹고 마시고 치장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골동품 들고 황제에 복귀할 꿈만 꾸는 한심한 사람들”이라며 투덜거렸다. 난세에는 총 가진 사람이 제일이었다. 신문에서 청년 원수 장쉐량의 사진을 볼 때마다 침을 꼴깍 삼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결혼 2년 후인 1926년 봄, 푸제와 함께 베이징 반점에 춤추러 갔다가 28살짜리 장쉐량이 들어오는 것을 먼발치에서 봤다. 동북군들의 경호가 어마어마했다. 살벌할 정도였다. 다가갈 엄두도 못냈다. 장쉐량이 제 발로 인사하러 오자 당황했다. 남편이 장쉐량과 친구 사이인 줄을 비로소 알았다.

탕스샤가 장쉐량을 집으로 초청했다. 장쉐량은 이 날의 일을 구술로 남겼다. 푸제도 이 날을 잊지 못했다. 훗날 회고록에서 상세히 기술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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