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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박근혜, 김무성, 의리코드

김진국
대기자
일본 속담에 ‘낙엽 한 잎 떨어지는 걸 보고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말이 있다. 낙엽은 작은 나뭇잎 한 장이지만 계절의 변화를 알리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조짐들은 곳곳에 있다. 최근 정부의 개각 파동에서도 그런 낙엽 냄새가 난다.



 저절로 떨어지는 낙엽도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데 사람이 하는 일에 의미가 없을 수 없다. 바둑의 포석(布石)에서 돌 하나의 무게는 말도 못하게 무겁다. 축구의 포진이 경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못지않다. 거기에 ‘의리’ 같은 다른 요소가 개입하면 승부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럼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의 의미는 뭔가. 박 대통령은 정성근 전 문체부 장관 후보자 문제를 언급하며 “경제를 살리고 적폐(積弊)를 없애려는 게 나라와 역사를 위해서지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경제를 살리고 적폐를 없애는 것’이 목표라는 말이다. 그러나 말이 아닌 ‘포석’에서 그런 의지를 읽어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번 개각의 시작은 세월호 참사였다. 문책 개각이었던 셈이다. ‘관피아’ 척결을 위해 총리실에 ‘국가 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했다. 국가안전처도 총리실 산하에 신설된다. 그러나 총리를 유임시키면서 그 의미는 빛을 잃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새누리당 대표까지 역임한 분이다. 부족하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는 아니다. 교육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벌일 포석은 아니다. 자진사퇴 직전까지 집착했던 정성근 전 문체부 장관 후보자는 어떤가. 자격 여부를 떠나 어떤 새로운 변화의 코드를 읽어낼 수가 없다. ‘의리’만 남으리다.



 야당이 정성근 후보자의 사생활 정보를 전달하기 전까지 청와대는 요지부동이었다. 새누리당에서 처음 청와대에 야당의 경고를 전했을 때만 해도 “확실하지도 않은 얘기”라며 일축했었다고 한다. 밤새 어떤 과정으로 판이 뒤집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청와대가 여론을 중시해서라거나 야당과 소통을 잘 해서 그런 결단을 한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여기서 우려되는 건 독선의 위험이다. “사심이 없다”는 말부터 그런 조짐을 보인다. 뒤집으면 다른 사람은 사심을 가져 내가 항상 옳다는 뜻이 아닌가. 어이없는 검증 실패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윗분’의 의지가 지나치게 강하면 내부 검증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의리’와 짝을 이루는 코드는 ‘친박(親朴)’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비박(非朴)’ 판이다. 이에 대비해 내각에는 친박들이 포진했다. 혹시라도 당이 협조하건 않건 내각 중심으로 국정을 끌고 가겠다는 포석이라면 걱정이다.



 사실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에 갔을 때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우선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30분 뒤에 발표할 인선 내용도 알려주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어제 뒤늦게 “알려줬었다”고 해명했지만 그날 기자들에게 한 얘기를 감안하면 수습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인사는 통치권”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각 인선은 청문회를 위해서라도 여당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사안이다. 사전 협의는커녕 청와대까지 찾아온 대표에게 30분 뒤에 있을 발표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이날 자리 배치도 묘했다. 직사각형 식탁이었지만 대통령의 맞은편에는 김태호 최고위원을 앉혔다.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오른쪽, 왼쪽엔 이완구 원내대표가 앉았다. 당 대표도 다른 최고위원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원탁에서 박영선 원내대표를 대통령 옆자리에 앉힌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의전에 가장 민감한 청와대 행사에서 특별한 지시가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풍우동주(風雨同舟)’라는 김 대표의 말도 자칫 오해의 여지가 있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처럼 서로 원수지간이란 뜻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같은 배를 탔으니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김 대표가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글도 아쉬운 점이 있다. 그는 ‘새누리당이 보수혁신의 아이콘이 되어 우파 정권 재창출의 기초를 구축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원내 제1당 대표의 일성이라면 국민 전체를 껴안는 좀 더 포용적인 내용일 순 없었을까.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의리가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죠”라고 했다. 하지만 의리는 대통령이 내세울 도덕률은 아니다. ‘할 말은 하겠다’는 집권당 대표마저 ‘우파 정권’을 강조하면 ‘국민’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지고, 통합은 공염불이 된다.



 며칠 전 본지 재·보선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세월호에 이어 개각까지 참사를 빚은 마당이다. 야당의 무능을 뼈아프게 보여주는 수치다. 덕분에 정부·여당이 착각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그것 봐, 내가 잘 하고 있다니까”라고.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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