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열린 민족주의가 월드컵 우승 이끌었다

채인택
논설위원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우연이 아니다. 10년 넘게 준비해 얻은 결실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게 피부색과 출신을 따지지 않고 선수를 기용하는 개방성이다.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에선 2명의 이민자 후손, 2명의 혼혈인, 그리고 2명의 ‘귀국자’가 함께 뛰었다. 부모가 터키 출신인 메주트 외칠과 옛 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의 알바니아계 출신인 슈코드란 무스타피는 이민자의 후손이다. 독일은 터키와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노동이민을 받았으며 난민도 상당히 수용했는데 이들은 그런 열린 정책이 독일에 안겨준 ‘인재 선물’일 것이다. 제롬 보아텡과 사미 케디라는 아버지가 각각 가나와 튀니지 출신이지만 어머니가 독일인이다.

 눈에 띄는 게 귀국자다. 루카스 포돌스키는 폴란드인 부모 밑에서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나 조부모가 과거 독일 국적이어서 2살 때 부모와 함께 합법적으로 서독으로 이주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독일계 폴란드인이었지만 8살 때 부모를 따라 서독으로 옮겼다. 당시 그는 독일어라곤 두 마디밖에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고향인 슐레지엔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영토였으나 전후 폴란드에 넘어갔다. 슐레지엔 외에도 동프로이센 등이 이런 운명을 겪었다. 그곳의 독일인은 대부분 고향을 떠나 실향민이 됐고 극소수만 남았다. 게다가 러시아·헝가리·루마니아 등 동유럽 각지에는 중세 때 이주한 독일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독일 농부들은 중세 때부터 농사를 잘 짓기로 유명했는데 빚에 쪼들린 못난 영주가 백성을 마을 단위로 외국 빚쟁이에게 넘기는 일이 잦았다. 그들의 후손은 현지에 잘 정착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뒤 상당수가 쫓겨났다.

 독일은 서독 시절부터 이런 해외 잔류자 후손이 나중에라도 원하면 ‘돌아올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했다. 일종의 열린 민족주의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해 국가와 희생자들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것은 물론 독일계 디아스포라(이산 또는 이산 주민)의 책임도 잊지 않은 것이다. 클로제와 포돌스키는 그 덕분에 독일로 ‘귀국’해 축구선수가 될 수 있었고 그들은 이번에 은혜를 단단히 갚았다.

 하지만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희생자와 그 후손들은 역사의 희생자이긴 마찬가지인데도 ‘돌아올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자손이 증명돼야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서울 동대문에 가면 한국말이 서툰 고려인(옛 소련에 살던 한국계)들이 러시아 음식점을 차려놓고 샤슬릭(꼬치구이)을 비롯한 러시아·중앙아시아 음식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시아’라는 중앙아시아 음식점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출신의 고려인 3세인 시누이·올케가 운영한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데다 외국인으로 살자니 힘들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고려인들이 밥을 물에 말아 당근채와 함께 먹는 모습을 목격했다. 말아 먹는 것은 한민족의 식습관이 아닌가. 게다가 그들이 먹는 당근채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있다. 당근을 길게 썰어 약한 소금 간을 하고 약간 발효해 먹는 카레이스키 살라트(한국인 샐러드)라는 음식인데 1937년 10월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에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이 김치 대용으로 개발했다. 이제는 옛 소련 지역 전역에서 인기인 영국 런던의 러시아 수퍼마켓에도 있을 정도다. 역사가 만든 ‘한식의 세계화’다.

 이처럼 고려인들은 고국을 기억하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정작 독립한 대한민국은 그들은 잊은 게 아닌가 싶다. 중국의 조선족 동포도 말할 것이 없다. 역사의 질곡으로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한민족을 우리 정부가 아니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들이 조상의 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한국 사회도 외국인 신부와 노동자를 데려와 함께 살아야 하는 다문화 시대를 맞고 있다. 다문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디아스포라의 희생자들의 ‘귀국 권리’를 보장할 방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귀국을 원하는 동포에겐 국적이 아니면 영주권이라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열린 민족주의로 전 세계 한민족을 보듬어야 대한민국이 세계 한민족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