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분수대] 세월호 석 달, 변화는 허튼 기대였나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 단원고 학생 43명은 광명시에서 서울로 걷고 있다. 석 달 전 바로 이맘때 반쯤 물에 잠긴 세월호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아들과 딸이다. 때마침 갑판 위에 있다가 얼떨결에 바다로 뛰어들거나, 다행히도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아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돌아온 아이들이다.

 사고 뒤 처음으로 함께 세상에 나온 학생들의 ‘1박2일’ 여정의 종착점은 국회였다. 47㎞를 맨다리로 걸었다.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세월호에 갇혀 먼저 저세상으로 간 친구들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학생들이 도보 행진 중 하룻밤을 머문 서울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에 찾아온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바라보는 시민은 목이 메었다. “아프고 고맙고 미안하다.”

 ‘포스트 세월호’ 석 달,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비극과 희극을 오간 두 차례의 소동 끝에 돌아온 ‘도루묵 총리’, 세월호 침몰 때 집권당 대표였던 사회부총리 지명자, 사회 안전 담당 차관 자리에 오른 군사 작전 전문가 …. 희생자 가족에게 대놓고 면박을 줬던 국회의원들은 오늘로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 통과 시한을 어겼다. 여당 의원들은 진상조사위원회가 수사권을 갖게 될까 봐, 그래서 혹여 청와대 압수수색이라도 벌어질까 봐 전전긍긍이다.

 지난 주말 전남 강진군에서 고금도로 가는 길목에서 차량 검문에 걸렸다. 도로 양쪽에 셋씩 여섯 명의 경찰관이 뙤약볕에 도열해 지나는 차들을 멈춰 세웠다. 차창을 열라고 하지도, 트렁크 속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낀 운전자를 힐끗 보고는 경광봉을 흔들어 ‘통과’를 지시했다. 정차 시간은 2초도 안 걸렸다. 앞에 있던 다른 차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찰관 130만 명(연인원)이 동원됐다는 ‘유병언 검거 작전’의 실상은 그랬다. 배 주변을 맴돌며 서성거린 구조요원, 형식적으로 시간만 때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 직원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지난달에 끝난 TV 드라마 ‘정도전’에서 권문세족 이인임은 새 세상을 꿈꾸는 정도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 또한 잠시나마 허튼 기대에 부풀었겠지만 앞으로 이것만은 기억하면서 사시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이, 아니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시민들이 노란 띠에 새긴 국가 개조와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은 어느덧 자괴감 속에서 허무하게 사그라지고 있다.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 [분수대] 더 보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