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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이름으로 … 세계 자동차 레이스 5000회 우승

페라리는 창사 이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F1에 참가했다. 그 결과 F1에서 검증한 신기술을 양산차에 담는 선순환을 완성했다. 페라리 F1 드라이버 페르난도 알론소가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페라리는 독보적이다. 역사와 철학, 고집과 상징성이 남다르다. 그래서 여느 자동차 브랜드와 뚜렷이 구별된다. 페라리는 동시에 꿈이다. ‘드림카’로 페라리를 꼽는데 주저하는 이는 드물다. 주목받고, 과시하며, 몰입하고, 압도하고 싶은 본능을 집요하게 자극한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성향이나 부를 암시할 수단으로 페라리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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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라리는 핵심가치로 레이싱과 디자인, 희소성을 꼽는다. 이들 요소는 각각 독립적이되 밀접히 맞물렸다. 나아가 서로 시너지를 내는 관계다. 이 가운데 주춧돌 격인 가치는 레이싱이다. 페라리의 뿌리는 1929년 창업자 엔초 페라리가 세운 레이싱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다. 오늘날까지 이 이름으로 F1에서 활약 중이다. 엔초는 47년 자신의 성을 딴 회사를 세웠다. 같은 해 5월엔 ‘125 스포트’를 내놨다. 페라리 브랜드를 붙인 첫 차였다.

 4년 후인 51년 페라리는 알파로메오 레이싱 팀을 꺾고 왕좌에 올랐다. 엔초가 독립하기 전 몸담았던 당대 최고의 팀이었다. 이후 페라리는 지금까지 F1을 비롯한 전 세계 각종 레이스에서 5000회 이상 우승했다. 또 50년 F1 월드챔피언십이 시작된 이래 지금껏 출전 중이다. F1 역사상 단 한 시즌도 빠지지 않은 팀은 ‘스쿠데리아 페라리’가 유일하다.

 과거 레이싱 팀은 경주차를 기초로 만든 차를 일반인에게 팔았다. 출전비용을 대기 위해서였다. 페라리 역시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 페라리는 어느 쪽이 먼저랄 것 없는 선순환을 완성했다. 페라리는 레이싱을 통해 검증된 기술을 판매용 차에 녹여 넣는다. 고객은 페라리의 명성을 믿고 차를 산다. 페라리는 이렇게 번 돈을 레이스용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선순환의 결실은 크고 달다. 경주차와 판매용 차를 모두 가진 업체는 많다. 그러나 페라리는 이 가운데 유독 경주차와 일반 판매용 차 사이의 간격이 좁다. 공기역학 디자인과 고성능 브레이크, 정교한 터보차저(과급기), 듀얼 클러치 변속기,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 등 페라리 차종의 수많은 기술이 경주차에서 곧장 건너왔다. 반대로 페라리 챌린지 레이스는 일반 판매용 페라리를 밑바탕 삼아 최소한의 개조와 보강만 거친 경주차로 치른다.

연산 7000대 안팎의 소규모 공장이지만 시설은 최첨단이다. 조립라인에서는 차를 기울여 직원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게 돕는다.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차만 다르게 만든 게 아니다. 회사 경영도 남달랐다.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회사를 이끌어 갔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주용 서킷에서 흘린 땀방울로 갈고 닦은 성능을 이해하지 못한 채 희소성과 비싼 값만 좇아 페라리를 사는 고객은 내심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그는 88년, 90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 레이싱 부문을 직접 지휘했다. 72년 내구 레이스와 스포츠카 챔피언십에서 동시에 손을 뗀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 F1에 전념하게 위해서였다. 페라리는 창업자를 기리기 위해 2002년 그의 이름과 성을 고스란히 딴 ‘엔초 페라리’를 한정 생산했다. 에이스만 모인 페라리 F1팀에서 개발했다. 660마력을 뿜는 V12 6.0L 엔진은 좌석과 뒷바퀴 축 사이에 얹었다. 이 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350㎞. ‘엔초 페라리’는 349대만 한정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요구가 빗발쳐 50대를 추가 생산했다.

 페라리의 매력으로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다. 52년 엔초는 자동차 디자인 전문기업 피닌파리나와 손을 잡았다. 페라리를 예술품이자 명품 브랜드로 격상시킨 계기였다. 세르지오 피닌파리나가 세운 이 회사는 페라리의 안팎 디자인뿐 아니라 테스타로사, 456GT 등 일부 차종의 생산까지 맡았다. 피닌파리나는 훗날 페라리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현재 페라리는 피아트 소속이다. 피아트는 69년 페라리 지분의 절반을 샀다. 2008년엔 지분을 85%까지 늘려 식구로 들였다. 하지만 페라리의 상징성과 기술력 때문에 별도 법인으로 운영한다. 현재 페라리는 승승장구 중이다. 2011년 7195대를 팔아 22억5100만 유로(3조337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엔 생산을 줄이고도 23억 유로를 벌었다. 사상최대다. 세계 어디에서나 살 수 있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차라는 모순적인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룬 결과다. 명성에 비하면 회사 규모는 크지않다. 직원은 3000여 명이다. 그럼에도 60여 년간 ‘수퍼카의 정상’, ‘F1의 제왕’이란 수식어를 놓치지 않고 있다. 본사와 공장은 이태리 모데나 마라넬로에 있고, 국내 공식 수입원은 FM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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