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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못난 나, 멍청한 나 … 바닥난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Q 해외에서 박사를 마치고 포닥(post-doc·박사 후 거치는 임시직)을 하는 30대 남성입니다. 지도교수와 관계가 안 좋아 남들보다 박사과정을 오래 했습니다. 간신히 학위를 받고는 힘들었던 박사과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트라우마가 계속 괴롭힙니다. 멍청하기 때문에 뭘 해도 잘 안될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불행한 일이 닥칠 것 같은 불안 때문에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부정적 감정 탓에 자존감은 바닥입니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은데 뿌리 깊게 박힌 공포와 불안이 저를 옭아맵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A 한 60대 후반 여성이 남편·딸과 함께 클리닉에 왔습니다. 앉자마자 쉴새 없이 30분 동안 속상한 일을 털어놓습니다. 가족들이 ‘이제 그만 하자’고 하는데도 이미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합니다. 언제 이 일을 겪었느냐 물으니 40년도 더 됐답니다.

 과거의 상처, 즉 트라우마에 갇히면 몸은 현재에 있어도 마음은 과거의 괴로운 기억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추억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과거가 내 현재를 먹어 치워버리는 겁니다. 이런 사람의 상당수는 타임머신이 고장나 과거로 가 버린 후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현재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과거에 그대로 묶여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나이들수록 살아갈 시간이 줄다보니 내 삶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고, 그러다보니 소중한 인생을 망친 과거에 더 빠져버리게 되는 겁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로 말년을 보내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동시에 서글픕니다. 즐기기에도 아까운 일분일초를 통증만 느끼며 버리고 있는 것이니까요.

 오늘 사연으로 돌아가죠. 트라우마란 단어를 직접 썼네요. 그 만큼 과거 경험이 고통스러웠다는 거겠죠. 트라우마는 신체적 외상을 일컫는 말인 동시에 정신적 외상, 또는 충격적 경험을 뜻하기도 합니다. 신체적 외상은 외부 충격의 정도와 손상의 정도가 대체로 비례합니다. 충격이 클수록 신체 손상도 많이 일어난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정신적 외상은 심리적 충격 정도와 어느 정도의 연관은 있지만 꼭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남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사건도 본인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사연 속 트라우마는 과거 박사 학위 할 때의 부정적 경험입니다. 그게 현재까지 영향을 끼쳐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여기며 공포와 불안 속에 갇힌 것입니다. 객관적 시각으로만 보면 사실 별로 공감이 안 갈 수 있습니다. 해외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자신을 멍청하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고, 트라우마라고 지칭한 교수와의 갈등도 일상적인 삶의 내용입니다. 지도교수 사랑을 담뿍 받으며 학위를 따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이런 경험이 현재를 망치는 트라우마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신체적 외상보다 심리적 외상이 더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두개골 골절로 피가 흐르는 외상이 아니라 심리적 외상도 실제로 뇌에 기능적 상처를 입힌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심리적 외상은 뇌의 사고 체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만들고 현실 적응 능력을 떨어뜨려 어디론가 도망가려는 회피 반응을 만듭니다. 그렇게 도망이라도 가 뇌가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 안식을 얻고 다시 에너지를 보충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합니다. 과거의 충격적 사건이 현재의 일처럼 느껴지기에 도망을 가도 뇌의 생존 시스템이 꺼지지 않고 계속 작동하기 때문이죠. 스위치가 고장 난 상태와 같습니다. 뇌 에너지가 다 타버리게 되고, 이렇게 소진된 뇌는 삶을 더 부정적으로 보게 해 도망가고픈 마음을 더 강하게 합니다.

 트라우마에 갇힌 사람에게 기억은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처럼 생생합니다. 그런 불편한 기억의 재생이 반복되면서 트라우마는 뇌의 전체 영역으로 퍼집니다. 반복되는 부정적인 과거 기억은 문신처럼 우리 뇌 기억 시스템에 새겨집니다. 결국 과거 전체가 부정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내 과거 전체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갖게 되니 트라우마가 내 현재까지 망치는 것이죠. 나쁜 과거 기억은 부정적인 과거 시간조망(時間眺望·time perspective)을 갖게 하고, 현재에 대한 회피와 두려움의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이런 현재의 부정적 감정이 다시 미래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만들어 현재를 비관적으로 보게 합니다.

 어떤가요. 오늘 사연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나요. 유학 시절 부정적 경험이 과거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그게 현재에 작용해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공포와 불안을 만들어 현재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또 밝은 미래가 없는 부정적 운명을 타고난 사람처럼 오늘을 체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작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내 뇌에 작용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실패할 운명으로 결정된 것처럼 왜곡해서 인식하게 하는 겁니다.

 과거 트라우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마 오늘 사연주신 분도 과거 기억 때문에 떨어진 자존감을 올리고 불안과 공포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건 부수적인 것일 뿐입니다. 첫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과거의 부정적 기억이 내 과거 전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끊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설명하죠. 사연 속 주인공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훌륭하게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입니다. ‘힘든 기억은 있지만 공부를 잘 마무리 했다’가 유학 생활에 대한 평가여야 합니다. 과거를 이렇게 긍정적 시간조망으로 바꾸면 자동으로 긍정적 미래상을 갖게 하고 결국 현재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현재에 대해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면 ‘그러지 말자’라는 식의 말로 이런 생각을 억누르려고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상징적 내용으로 시각화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예컨대 먼저 한 발은 부정적 과거라는 모래에 빠져 있고 다른 한 발은 체념해버린 현재라는 늪에 빠져 있다고 상상합니다. 그리고 모래에 빠진 과거의 발을 단단한 미래의 땅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늪에 빠진 발은 단단한 현재의 기쁨이라는 땅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두 발로 조금씩 걸어가는 상상을 하는 겁니다. 감성은 논리적 언어보다 상징이 담긴 이미지에 더 쉽게 반응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위축된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회피 반응은 사람을 홀로 있게 해 결과적으로 부정적 생각에 더 빠지게 합니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도 좋은 추억이 있는 친구를 만나다보면 긍정적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현재 내 삶이 긍정적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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