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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 양산하는 규제 … 안전 관련 없는 건 확 줄여라

4월 15일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발했을 때 배에 실린 차량은 185대였다. 기준 적재량(97대)보다 88대 더 많았다. 배가 과적을 하면 운항 중 균형이 흔들렸을 때 다시 중심을 잡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이를 감독하는 운항관리자는 출항 허가를 내줬다. 세월호 운영사인 청해진해운은 올해 1~4월 이 같은 적재 위반을 무려 56차례 범했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세월호 운항관리자는 한국해운조합 소속 직원이었다. 해운사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이 선박 안전성을 감독하도록 제도화돼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가 감독 규제 업무를 해운조합에 위탁한 것이다. 그런데 해운조합 이사장은 대대로 해수부 퇴직 관료가 맡아왔다. 해수부가 해운조합의 부실 운항관리를 적발했다 하더라도 애초부터 엄한 처벌이 어려운 구조였던 셈이다. 1972년부터 ‘해피아’(해수부 관료+마피아)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규제 위임을 통한 민·관의 부적절한 공생관계는 해수부-해운조합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 인증이나 환경영향평가, 대부업 지도·감독, 기반시설 관리 분야에서도 협회는 규제 권한을 위임받고 관료는 퇴직 후 일자리를 받는 ‘주고받기 식’ 관행이 뿌리 깊게 박혀왔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가 관피아를 양산하는 온상”이라며 “규제 권한을 악용한 관피아와 협회의 공생관계가 지속되는 한 2~3년의 취업제한만으로는 관피아 폐해를 뿌리 뽑을 수 없다”고 했다. 관피아를 매개로 한 민·관의 공생관계는 사후 감독을 마비시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가 수없이 과적 행위를 했어도 처벌받지 않은 까닭이다.

정부 지원이나 혜택도 받는 민간단체 입장에선 규제나 마찬가지다. 정부 말을 듣지 않으면 그 혜택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관피아가 자란다. 한국감정평가협회는 감정평가사들의 이익단체지만 국토교통부 출신 관료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 평가사들의 회비로 관피아에게 급여를 주는 셈이다. 이 같은 관계는 평가협회가 정부 위탁 업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이익을 얻는 데서 유지된다.

한 감정평가사는 “정부는 공무원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몇몇 업무를 협회에 맡긴다고 하지만, 실제론 보직이 없어 발령 대기 상태에 있는 공무원이 수두룩한 걸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차라리 협회가 공개적이고 공정한 입찰 과정을 거쳐야만 정부 업무를 수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평가사의 경쟁력도 올라가고 관피아도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마저도 이 같은 공생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매년 6조원에 이르는 지원금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부 출신 ‘교피아’를 앉혀 공생하려 한다. 경남 지역 A대학 기획처장은 “교육부 출신을 고용하는 데 드는 돈은 2억~3억원”이라며 “그래도 재정지원사업 하나 따오면 20억~30억원이 들어오니 효율적인 투자”라고 했다. 김태윤 교수는 “정부가 특정 일을 하기 위해 재정을 지원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지원과 관련 없는 분야까지 규제하는 일이 빈번하다”며 “대학에 대한 정부 지원 절차와 기준만 투명하게 만들어도 상당수 관피아를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공직 유관기관은 1018곳에 이른다. 정부로부터 규제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협회만 113곳에 이른다. 비공식적으로 정부 입김이 미치는 민간단체는 이보다 훨씬 많지만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이 안 된다. 관피아의 뿌리를 뽑자면 규제를 악용한 이 같은 민·관의 부적절한 공생관계부터 깨야 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민의 안전이나 시장의 건전성과 관계없는 불필요한 규제만 없애도 관피아가 발붙일 곳이 확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전이나 건전성 때문에 필요한 규제는 예산이 들더라도 정부가 직접 수행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불가피하게 위임이 필요한 업무는 사후 감독을 철저히 해 관피아의 입김이 끼어들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료 취업제한보다 행위제한을

선진국처럼 하지 말아야 할 일 자세하게 규정
어기면 개인은 물론 기관까지 연대책임 지워야


‘관피아(관료 마피아)’ 대책의 핵심은 전·현직 공직자와 민간의 부적절한 유착 고리 근절이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사전 취업제한 방식만으로는 이를 개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조건 취업을 제한하는 건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데다 산업이 계속 발전하는 상황에선 사전 규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도 이런 이유 때문에 공직에 있을 때의 직무와 연관된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행위 제한’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직자윤리위원(2008~2010년)을 지낸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을 통해 민간 취업을 3년간 제한한다고 하는데 공무원 입장에선 기본권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선진국이 되려면 법으로 취업을 제한하기보다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미국은 일단 퇴직하면 과거 업무와 관련해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이나 조직과 연락도 못 하게 금지하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지난달 관피아 대책의 일환으로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고쳐 취업제한 대상인 사기업체의 수를 3960개에서 1만3466개로 늘렸다. 규모가 작은 기업까지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숫자 늘리기 식으론 한계가 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직자들이 갈 수 없는 곳을 늘린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이를 우회하는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다. 그보다는 전·현직 관료에게 현직에 있을 때나 퇴직을 했을 때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세부적으로 규정하는 게 효율적이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금 논의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을 너무 급하게 처리하기보다는 학계나 시민단체, 일반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서 우리 사회에서 금지해야 할 행위가 무엇인가 공감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대통령 직속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태범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재산등록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공직자 재산등록은 본인과 가족 소유의 재산을 제대로 등록했는지만 점검할 뿐 재산의 종류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는다. 1급 이상 공무원만 재산이 공개되기 때문에 언론이 검증을 하는 정도다.

윤 교수는 “지금은 특정 지역에 땅을 가진 공무원이 해당 지역 개발사업에 개입하거나, 정보기술(IT)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관련 기업 주식을 갖고 있어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며 “중요한 의사 결정권을 갖고 있는 현직 공무원의 재산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현직에서의 이해상충 여부도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영란법 등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취업제한을 폐지하고 행위제한으로 갈 수는 없다. 공직자 재취업 제도가 오랫동안 취업제한 방식으로 운영돼온 점을 감안하면 행위제한 방식이 정착될 때까지 과도기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무직, 고위직, 일반직 공무원으로 구분해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민간에서의 영향력이 큰 장·차관의 경우 취업제한과 행위제한을 동시에 하고 다른 고위직 공무원은 엄격한 행위제한만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업제한 대신 행위제한으로 간다면 지금보다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핵심은 민간기업이나 기관이 자신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을 공무원 출신의 힘을 빌려 성사시키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것이 적발되면 해당 기업이나 기관엔 이익의 10, 20배를 징벌적으로 배상하도록 하고, 문제가 된 관피아도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안행부 산하인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거성 한국투명성기구 회장은 “현재 퇴직한 공직자의 취업심사를 담당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통과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반부패기구를 설치하고 이곳에 공직자윤리위를 통합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별취재팀=장세정·김원배·박현영·강병철·유지혜·이태경·최선욱·윤석만·허진·김기환 기자, 뉴욕·런던·도쿄=이상렬·고정애·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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