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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박찬호 18일 지각 이별식 … 스타도 '은퇴 설계' 필요해

박찬호가 2012년 10월 3일 대전 KIA전에서 마운드를 내려오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 등판을 마지막으로 한화 유니폼을 벗었다. 프로야구 선수들과 한국야구위원회는 18일 올스타전에서 박찬호 은퇴식을 열기로 했다. [중앙포토]

“합!” “합!” 2010년 10월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선라이프 스타디움. 박찬호(41)는 태권도 선수처럼 기합을 지르며 공을 던졌다. 그의 상대는 타자가 아니라 노모 히데오(46·일본)였다.

 박찬호(당시 피츠버그)는 이날 3-1이던 5회 구원등판했다. 3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은 그는 승리투수가 됐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박찬호는 노모가 갖고 있던 아시아인 빅리그 최다승(123승) 기록을 경신했다. 1994년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17년 만에 세운 기록이었다.

 훗날 박찬호는 “2007년부터 은퇴를 준비했다”고 고백했다. 목표를 이루자마자 미련없이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이듬해 오릭스에서 일본 야구를 경험했고, 2012년 고향팀 한화에 입단했다. “나이 들어 돌아온 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수사(修辭)와 함께였다.

 계약금과 연봉(6억2400만원)을 모두 기부한 그는 1년만 뛰고 은퇴했다. 박찬호는 대한민국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한국인이 강하다는 걸 보여줬다. 우리는 1990년대 말을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보냈다. 야구 팬들은 프로야구에서 그의 피칭을 보며 꿈 같은 2012년을 보냈다.

 18일 프로야구 올스타전(광주) 식전행사로 ‘박찬호 은퇴식’이 열린다. 팬투표로 뽑힌 올스타들이 주인공인 날이지만 선수들은 “박찬호 선배의 은퇴식을 열어 주자”고 건의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흔쾌히 허락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데릭 지터(40·뉴욕 양키스)는 ‘은퇴 투어’ 중이다. 원정경기를 갈 때마다 상대 팀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치퍼 존스·마리아노 리베라 등도 은퇴 시즌을 축제처럼 즐기고 떠났다. 지터와는 달라도 박찬호는 나름대로 멋진 은퇴설계를 했고, 실행에 옮겼다.

 최근 잠실야구장에는 팬들이 김동주(38·두산)의 1군 복귀를 바라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지난 2년간 전력에서 제외됐던 그는 FA(자유계약선수) 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1군 복귀를 원하고 있다. 재계약이나 이적을 하기 위해선 성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동주는 “자리가 없다면 다른 팀에 보내달라”고 인터뷰하며 구단을 압박하고 있다. 두산도 속사정이 있다. 지난해까지 두산 2군 감독을 지냈던 송일수(64) 감독이 김동주를 원하는 것 같지 않다. “동주 형이 필요하다”는 선수도 없다. 두산에서 17년을 뛰며 누적 연봉 100억원 이상을 받은 그이지만 말년은 서글프다. 구단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수많은 스타들이 감독·구단과 대립하다가 유니폼을 벗었다. 노장은 자신을 실제보다 젊게 생각하고, 구단은 노장을 나이보다 더 늙게 본다. 9구단 NC, 10구단 kt가 생기면서 노장의 ‘재취업’ 기회는 더 늘었다. 그렇다고 구단에서 빠져나오긴 쉽지 않다. 복잡한 계약이 얽혀 있어서다.

 롯데 조성환(38)은 지난달 갑자기 은퇴를 결심했다. 더 버텼다면 올해 말이나 내년까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터 줬다. 전력분석원으로 전직한 그는 구단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코치나 해설위원 등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잘 살고 있는 이들도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젠간 겪을 일이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은퇴는 불가능하지 않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깔끔한 마무리는 누구나 계획할 수 있다. 선수 은퇴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 마흔 살에 은퇴해도 삶의 반환점을 겨우 돌았을 뿐이니까.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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