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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의 1인자 김옥랑씨, 경산서 상여 보고 놀란 사연

김옥랑 관장이 경산 국학 연구소가 보존하고 있는 꼭두를 들고 있다.
‘꼭두 에미’는 울컥 눈물부터 훔쳤다. 강사 소개가 끝나고 특강을 기다리는 국학연구소 회원들 앞에서였다. 서울에서 꼭두박물관을 운영하는 김옥랑(62·사진) 관장이 12일 경북 경산의 무학산 국학연구소에 들렀다가 주변에 서 있는 상엿집 3채와 그 안에 있는 상여 10개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김 관장은 “늦게 와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타가 인정하는 꼭두의 1인자가 상여가 원형 그대로 모여 있는 곳을 여태 몰랐던 것이다. 꼭두는 전통 상례에서 상여를 장식하던 목각 인형이다.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망자와 동행하면서 그를 지켜주고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모습에 따라 꼭두 시종도 있고 꼭두 호위무사도 있다.

 그는 회원들에게 꼭두 수집과 살리기에 매달린 연유를 설명했다. 김 관장은 고2 때 사업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삶이 요동쳤다. 방황하던 그는 대학 시절 31년 나이 차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시댁과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그때 고물상을 지나다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꼭두를 처음 만났다. 상여에서 나온 물건이라며 터부시한 것이다. 김 관장은 “꼭두와 내가 처지가 같은 걸 깨달았다. 둘 다 버려지고 소외됐다”며 “그 길로 꼭두를 수집하는 한편 꼭두를 살리는 인형극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잡지도 냈다. 사업가 남편을 졸라 동숭아트센터도 지었다. 꼭두는 2004년 세계박물관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2007년에는 뉴욕 초청을 받아 미국 6개 도시를 순회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과 지난해 독일 등 유럽 4개국 전시 등을 거치며 꼭두는 삶과 죽음을 잇는 ‘한국의 천사’로 자리매김했다. 꼭두에 매달려 그는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인이 된 것이다.

 그는 이날 특강에서 40년에 걸쳐 수집한 꼭두 2만2000여 점을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산 무학산은 “꼭두의 고향”으로 이름 붙였다. 그러고는 상여 등 전통 상례의 하드웨어가 잘 마련된 국학연구소 대구경북지부(지부장 황영례)와 양해각서(MOU) 체결을 약속했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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