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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박근혜, 강대국에만 매달리면 실패한다

이하경
논설주간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올라가면서 한국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미국과 중국의 러브콜에 표정관리가 힘들 지경이다. 한국이 과거사 문제로 거리를 두고 있는 일본은 북·일 교섭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북한에 식민지배 배상금으로 수백억 달러의 돈다발을 안겨줄 것이라고도 한다. 한국을 끔찍이 좋아하는 동맹국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네 번이나 다녀갔다. 유럽 어느 나라 원수보다도 많은 횟수다. 한·중 관계도 시진핑 주석이 다녀가면서 ‘성숙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생존이 걸린 북핵 문제에 대해선 두 강대국이 실질적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게 한·미, 한·중 관계의 실체다.

 중국이 북에 식량과 원유를 대주고 있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 미국은 그런 중국이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과의 대치전선에서 완충역할을 해줄 북한의 안정이 먼저다. ‘내정간섭’을 할 수 없다면서 팔짱을 끼고 있다. 미국은 어떤가. 핵 위협을 하는 불량국가 북한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재무장화,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을 통한 중국 견제가 가능하다. 이게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의 실상이라고 중국은 신랄하게 비판한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결코 강대국을 움직일 수 없고,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미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최선의 방법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체제경쟁에서 앞선 우리가 먼저 포용적인 접근 자세를 보여야 한다. 비용은 들겠지만 북핵 해결에서 강대국 의존도를 낮추고, 외교적 입지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긴장이 완화되고, 국제사회에서 목소리가 커지면 결과적으로 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이익이 돌아온다. 강대국이 북핵 해결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조건도 만들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어제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발시켰다. 대화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이젠 국면을 바꿀 한 수가 나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악의 조건에서 남북관계의 이정표를 세운 아버지의 통 큰 결단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함께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해결,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 도모라는 통일의 3원칙이 제시됐다. 기존의 대결 패러다임을 해체한 것이다.

 미국·중국·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까지 치른 남북이 휴전상태에서 만들어낸 극적인 전환이었다. 개인사로 보면 더 드라마틱하다. 불과 4년 전 자신을 죽이기 위해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 31명을 청와대 부근까지 침투시켰던 바로 그 북한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서로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는 준전시상태였다.

 오점(汚點)도 있다. 같은 해 박정희는 10월유신을 선포했고, 김일성은 중앙집권적 국가주석제를 도입하는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그렇다고 7·4 성명의 역사적 가치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7·4 성명이 있었기에 노태우 대통령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남북기본합의서, 소련·중국과의 수교가 가능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 10·4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던 것도 마찬가지다. 6·15 공동선언의 모태(母胎)는 7·4 성명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도 크게 후퇴했다. 경제력·군사력이 강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서 미국과 중국에 북핵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기 어렵다. 이미 시진핑 주석도 남북관계의 개선을 주문했다. 일본의 우경화도, 한국을 배제한 북·일 교섭도 이대로는 견제할 길이 없다.

 요즘 북한의 대화 제의에는 7·4 성명과 정상회담이라는 뚜렷한 코드가 담겨 있다. 6월 30일 국방위원회 특별제안은 “7·4 성명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으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열자”고 했다. 7월 7일 ‘정부 성명’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 하루 전인 1994년 7월 7일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종 서명했다는 ‘력사적 문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통일준비위를 출범시키려는 즈음에 북에서 정상회담을 거론한 흐름은 의미심장하다.

 42년 전 어렵게 탄생한 7·4 성명의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러면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강대국에 당당해질 수 있고, 누구도 우리를 무시하지 않는다. 남북관계는 리스크가 아닌 기회라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언제까지 강대국에 우리 운명을 해결해 달라고 매달릴 것인가. 지금까지처럼 하면 북핵의 해결도, 통일도 실패한다.

이하경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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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