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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95년 7월 1일 9면] 3040세대 만의 암호 '177155400'











































  “삐삐삐”.



왔다! 젊은 남자가 허리춤에서 작은 물체를 빠르게 꺼내든다. 숫자 ‘486’이 눈에 박힌다.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고?” 남자는 설렌 가슴을 안고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간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 후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든다.



1994년 당시 연인들은 ‘8282 1004(빨리빨리 천사)’란 여덟 자리 숫자가 뜨면 주변 공중전화 부스부터 찾았다. 무심코 확인한 숫자가 ‘1010235(열렬히 사모·발음 그대로를 표현)’나 ‘17171771(I LOVE U. 숫자를 거꾸로 보면 알파벳 I LOVE U처럼 보인다)’, ‘177155400(I miss you. 숫자의 생김을 알파벳으로 표현. 1은 I, 77은 m, 5는 s)’일 때 느끼는 설렘과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30~40대라면 누구나 이런 가슴 떨리는 추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선호출기 ‘삐삐’ 이야기다.



삐삐는 1982년 12월 15일 국내에 처음 등장했다. 초창기 삐삐는 특정 직종의 상징이었다.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비즈니스맨, 정보기관 종사자 등 주로 촌각을 다투는 업무에 종사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삐삐를 사용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허리춤에 채워진 삐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삐삐가 대중화된 것은 90년대부터였다. 1984년 1만 명에 불과했던 삐삐 가입자는 1995년에 100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삐삐의 전성기로 꼽히는 1997년 가입자수는 무려 1500만 명에 달했다. 직장인은 물론 대학생들까지 삐삐는 필수 통신수단이었다. 여기저기서 '삐삐' 소리가 들렸고 공중전화 부스 앞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강남역 인근 커피숍에는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있을 정도였다. 삐삐를 둘러싼 유언비어도 돌았다. 삐삐를 허리에 차면 ‘전자파 때문에 딸만 낳게 된다’는 헛소문이다. 이 때문에 한때 삐삐를 등 뒤에 차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있다.



삐삐가 유행하며 기발한 숫자들도 인기를 얻었다. ‘8255(빨리오오)’, ‘1200(지금 바빠요, 일이빵빵)’ ‘0179(영원한 친구)’ 등이 대표적이다. ‘0024’로 영원한 사랑을 전했고, ‘38317’(사랑, 숫자를 거꾸로 보면 독일어로 사랑을 뜻하는 글자 LIEBE와 비슷하다)로 속마음을 표현했다. 현재 스마트폰으로는 느낄 수 없는 둘만의 은밀하고 짜릿한 아날로그식 교감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승승장구하던 삐삐도 사양길을 피할 순 없었다. 1997년에 나온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개인휴대통신)가 화근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착발신이 가능한 PCS의 매력에 흠뻑 빠진 소비자들은 휴대폰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결국 삐삐는 병원과 군대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그렇게 추억 저편으로 사라질 뻔한 삐삐가 다시금 부활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삐삐번호 012를 ‘사물인터넷’으로 확대해서 활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택시의 무선결제시스템’이나 ‘버스 위치정보’와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사용하는 ‘진동기’도 삐삐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사물에 삐삐번호를 부여해 사물끼리 통신을 주고받는 사물인터넷은 이외에도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삐삐의 재탄생이 반가운 만큼, 새로 펼쳐질 미래시장에서는 삐삐가 또 어떤 추억을 담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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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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