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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차범근 백업' 떠돌이, 세계를 손에 쥐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하고도 ‘우승을 하기엔 약한 감독’이라는 평을 받았던 요아힘 뢰프 독일 감독. 브라질 월드컵 우승으로 진가를 입증했다. [리우 데 자네이루 AP=뉴시스]


“뢰프 감독은 제 백업 선수였죠.”

독일 우승 10년 준비한 뢰프 감독
선수·지도자로 19차례 전전
덕분에 적재적소 배치 능력 키워
2004년 독일팀 코치로 인생역전
우승 직후 2016년까지 계약 연장



 1979~89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61) SBS 해설위원은 독일을 브라질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요아힘 뢰프(54) 감독의 선수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차범근 위원의 기억처럼 뢰프의 선수 경력은 월드컵 우승팀 사령탑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그는 선수 시절의 대부분을 독일 츠바이테 리가(2부리그)와 드리테 리가(3부리그) 팀들을 전전하며 보냈다. 1995년 3부 리그 팀 프라우엔펠트에서 은퇴할 때까지 17년 동안 1~2년 주기로 10개 팀을 옮겨다녔다.



 은퇴 후 스위스의 빈터 투어에서 유소년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뢰프는 이후 코치와 감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도자가 돼서도 그의 ‘떠돌이’ 축구 인생은 바뀌지 않았다. 뢰프는 2004년 위르겐 클린스만(49) 감독이 이끄는 독일 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되기까지 11년 동안 무려 9개 팀을 맡으며 표류했다.



 뢰프의 인생이 달라진 건 2004년 클린스만 독일 대표팀 감독을 만난 뒤다. 클린스만은 감독과 코치의 업무를 나눠서 팀을 운영했다. 감독이 선수 선발과 대외 업무에 주력하고 수석코치는 전술과 작전을 담당했다. 여러 팀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경험했던 뢰프는 선수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재능이 있었다.



 뢰프의 선수 시절 동료이자 슈투트가르트(독일) 감독 당시 뢰프를 코치로 거느렸던 롤프 프링거(57)는 “그는 내 조용한 오른팔이었다.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미리 알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클린스만 감독-뢰프 코치 체제의 ‘분업’ 성과는 2년 후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독일이 3위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뢰프는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하면서 능력을 재인정 받게 됐다. 당시 독일 언론은 “다양한 수준의 리그에서 다양한 팀을 지도한 게 뢰프의 경쟁력”이라고 분석했다.



 2006년 월드컵이 끝난 뒤 그는 클린스만으로부터 대표팀 지휘봉을 넘겨 받았다. 그리고 뢰프는 더욱 치밀해졌다. 2008년 유럽축구선수권 당시 징계로 인해 8강 포르투갈전(3대2승)에서 벤치에 앉지 못하게 되자 미리 경기 상황에 따른 시나리오 7개를 만들어 코치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부터 그는 ‘전술의 천재’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브라질 월드컵은 뢰프 감독의 10년 내공이 빛난 무대였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전략으로 승승장구했다. 그가 최종 엔트리에 공격수로 미로슬라프 클로제(36·라치오) 한 명만 발탁하자 상대 팀들은 클로제 대비책만 세웠다. 하지만 클로제는 알제리와의 16강전까지 한 번도 선발 출전하지 않았다. 대신 미드필더인 토마스 뮐러(25·바이에른 뮌헨)가 전방에 투입돼 4골이나 터뜨렸다.



 그러다 프랑스와의 8강전에선 클로제를 깜짝 선발로 기용하며 프랑스 수비진을 혼란에 빠뜨렸다. 여기에 16강전까지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필립 람(30·바이에른 뮌헨)의 포지션을 8강전에선 오른쪽 수비수로 바꿔버렸다. 프랑스 측면 공격수들은 람의 철벽 수비 앞에 기를 펴지 못했다.



 뢰프는 자신이 발탁한 선수에겐 ‘무한 신뢰’를 보냈다. 14일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후반 종료 2분 전. 뢰프 감독은 ‘월드컵 최다골’의 베테랑 공격수 클로제를 빼고 조별리그 1경기만 뛴 마리오 괴체(22·바이에른 뮌헨)를 투입했다. 뢰프는 괴체가 그라운드를 밟기 직전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경기 후 “괴체에게 어떤 지시를 했냐”는 질문을 받은 뢰프는 “‘세상 사람들에게 네가 메시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괴체는 측면을 오가며 아르헨티나 수비진을 흔들어 놓더니 연장 후반 7분 결승골을 넣으며 감독의 선택에 보답했다.



 뢰프는 우직함 때문에 고집이 세다는 비난도 받았다. 특히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는 자국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당시 그의 재계약을 두고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가 설문조사를 한 결과, 75대25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매번 메이저대회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지면서도 분데스리가 득점왕 출신인 슈테판 키슬링(30·레버쿠젠) 등을 대표팀에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의 전술에 적합하지 않은 선수라는 이유에서였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뢰프를 두고 ‘별 4개(독일의 네 번째 우승)를 요리한 특급 요리사’라고 치켜세웠다. 경기가 끝난 뒤 독일축구협회는 “뢰프 감독과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피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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