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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등 피고인 8명에 대한 대통령시해사건 공소장 전문

피고인 김재규는 본적지에서 김형철의 장남으로 출생, 안동농림증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국 특별 간부후보생으로 일본군에 종군하다가 8·15해방으로 귀국, 선산국민학교등 교사직을 거쳐 육군사관학교2기생으로 졸업과 동시 소위로 임관된 이래 제6사단장·제6관구사령관·제3군단장등을 순차 역임한후 1973년3월 육군중장 예편과 동시 유정회국회의원·중앙정보부차장·건설부장관을 차례로 지낸후 1976년12월4일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어 근무중 l979년10월26일 면직된자.
피고인 김계원은 본적지에서 김길준의 장남으로 출생, 연희전문학교2년을 수료, 학도병으로 일본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 소위에 임관, 종군타가 8·15해방으로 귀국,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육군소위로 임관된 이래 제27사단장·육군대학총장·제5군단장·제6군단장·제1군사령관·육군참무종장등을 순차 역임하고 1969년11윌 육군대장 예편과 동시 중앙정보부장·중국대사를 거쳐 1978년12월22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어 근무중 1979년10월30일 면직된자.
피고인 박선호는 본적지에서 망부 박종형의 장남으로 출생,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간부후보 제16기생으로 졸업, 해병소위에 임관된 이래 해병제3여단 제3대대장·해병대병감실 헌무과장을 지내고 1973년10월 해병대령 예편후 중앙정보부 총무과장·현대건설「사우디」안전과장·중앙상사대표로 있다가 1978년8월11일 중앙정보부 비서실의전과장으로 임명근무중 1979년10월27일 면직된자.
피고인 박흥주는 원적지인 평남 평원군 평원면 장림리에서 박천순의 2남으로 출생, 서울고등학교및 육군사관학교 18기로 각졸업, 소위로 임관된이래 1964년8월 제6사단장 김재규의 전속부관·제12사단 65포병대 대장등을 차례로 거쳐 1978년4월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로 임명되어 근무중 1979년10월27일 면직된자.
피고인 이기주는 본적지에서 망부 이정진의 2남으로 출생, 부천 시온고등학교 2년을 중퇴하고 해병에 입대, 1972년11월30일 하사로 제대한 다음 중앙정보부 겅비원으로 채용된 후l975년11월4일 중앙정보부 궁정동 식당경비원 조장으로 근무 중 1979년10월27일 면직된자. 피고인 유성옥은 본적지에서 망부 유점용의 4남으로 출생, 고양중학교2년을 중퇴하고 육군에 입대, 중사로 제대한 다음 l971년12윌 중앙정보부 운전사로 채용된 후 1978년8월3l일 위 식당 행정차량 운전사로 근무중 1979년10월27일 면직된자.
피고인 김태원은 본적지에서 망부 김만대의 5남으로 출생, 장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 병장으로 제대한 다음 1974년11월 중앙정보부 경비원으로 채용된 후 1976년10월14일 위 식당 경비원으로 근무중 1979년10월27일 면직된자.
피고인 유석술은 본적지에서 유태준의 2남으로 출생,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에 입대, 하사로 제대한 다음 1973년11월8일 중앙정보부 경비원으로 채용된 후 1977년8월4일 위식당경비원으로 전보되어 근무중 1979년11월6일 면직된 자 등인바,
▲1, 피고인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자신의 정국 수습책이 거듭 실패하여 그 무능함이 노출되어 박정희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인책해임설이 나돌아 그 지위에 불안을 느끼는 한편 군 후배이고 연하인 전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의 오만방자한 태도와 월권적 업무간섭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위 차지철만을 편애하는데 불만을 품고 1979년4월 일자 불상경부터 대통령등을 살해한 후 정권을 잡을 것을 기도하고 보안유지를 위하여 단독으로 그 구체적인 거사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장소는 피고인이 관리하는 서울종로구 궁정동 50번지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으로 하고 시기는 적절한때를 선택하며 대통령과 위 차지철은 자신이 직접 살해하고 수행한 경호관은 현장에서 심복인 피고인 박선호, 동 박흥주 등을 시켜 처치키로 하며 대통령시해 후 국가 안전과 질서 교란을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고 중앙정보부의 권한과 동부의 조직력을 이용, 계엄군을 장악하여 무력으로 사태를 제압하고 입법·사법·행정권을 총괄하는 혁명위원회를 구성, 자신이 위원장에 취임하여 집권기반을 확보한 후 대통령에 출마할 것을 계획하고 부산·마산 소요사태를 거사의 계기로 역이용하여 기회를 엿보아오던 중.
(가) 1979년10월26일 하오4시경 서울중구필동소재 중앙정보부 남산본청 부장사무실에서 차지철로부터 이날 하오6시경 식당에서 대통령주재 만찬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당일 대통령과 차지철및 경호원일행을 살해하여 범행할것을 결심하고 대통령시해 후 이용할 목적으로 육군참모총장 육군대장 정승화및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 김정섭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식사하자는 구실로 하오6시30분까지 식당에서 약50m 상거한 피고인의 본관집무실에 오도록 유인하여 놓고 하오4시30분경 집무실2층 침실금고에 보관중이던 독일제32구경 권총(총번159270) 1정에 실탄7발을 장전하여 고장유무를 확인한후 서가 책뒤에 숨겨두고,
(나) 이날 하오 5시50분경 대통령영접차 도착한 피고인 김계원과 식당현관앞 정원의 경계석에 앉아 대화도중 김계원이 차지철의 강경한 태도와 월권에 불만을 토로하자 피고인의 범행에 동조할 것으로 판단하고 오늘 해치울테니 뒷일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제의를 하여 김계원의 승낙을 받고,
(다) 이날 하오6시5분경 식당에 대통령과 차지철등이 도착, 만찬이 시작되고 있던 중 이날 하오 7시 만찬석에서 나와 집무실에 가서 동소에 와있던 육군참모총장과 재2차장보를 만나『만찬이 끝나는대로 다시 오겠다』고 한후 2층 침실로 올라가 미리 준비하여 두었던 권총1정을 하의 시계주머니에 넣고 식당으로 돌아가다가 이날 하오7시10분경 식당에 인접한 중앙정보부 구관정원에서 피고인 박선호·박흥주에게 「오늘저넉 해치우겠으니 각오하라. 각하등은 내가 직접 해치울테니 총성과 동시에 너희들은 똑똑한 놈 3명을 골라서 경호원들을 처치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육군참무총장과 제2차장보가 집무실에 와있다고 고지, 범행가담의사를 확고히 하도륵 촉구하여 30분내 준비완료하겠다는 승낙을 받고,
(라) 피고인 박선호는 김재규의 지시를 받은 직후 하오7시15분경 식당서편 정원에서 피고인 유성옥 이기주에게 『부장님 지시인데 오늘일이 잘 되면 한몫 볼 것이다. 부장님이 안에서 총을 쏘는데 맞추어 너희들은 주방내의 경호원들을 사살하라』고 지시하여 승낙을 받고,
(마) 피고인 김태원은 하오7시40분경 식당 건너편 경비원 대기실에서 대통령이 참석한 식당에서 총성이 들려 심상치않은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직감하고 M-16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던중 동박선호로부터 청와대에서 경호원들이 오면 사살하라는 지시와 아울러 하오8시5분경 이기주로부터 식당안에 아직 완전히 절명되지 않은 사람을 확인사살하라는 지시를 받고 식당안 경호원 대기실에 들어가 경호원들이 피격된 것을 보고 국가변란사태인 점을 알면서 지시에 따라 가담하기로 응낙함으로써 각 국현문란 목적의 폭동·살상에 가담할 것을 순차로 상호 공모하고,
▲ 2, 피고인 김재규·김계원·박선호·박흥주·이기주·유성옥·김태원은 전기공모내옹에 따라
(가) 피고인 김재규는 하오7시38분경 식사중이던 식당 만찬석을 나와 인접 부속실에서 박선호로부터 범행준비완료보고를 받고 하오7시40분경 만찬석으로 들어와 앉으면서 우측 옆자리에 앉아있던 김계원을 우측 손으로 툭치면서『각하 잘 모시시오』라는 말과 동시에 하의시계주머니에 감춰둔 권총을 꺼내 피고인의 좌측 옆자리에 앉아있는 차지철을 향하여 1발을 발사, 우측팔목에 관통상을 입히고 바로 일어서면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대통령의 흉부를 향하여 1발을 발사, 관통상을 입힌 다음 계속 발사하려다가 권총의 격발장치 고장으로 발사되지 않자 식당 밖으로 나가 박선호로부터 미제38구경「리벌버」권총(총번J-60l68) 1정을 받아 다시 만찬석으로 들어와 그곳에 있던 문갑을 잡고 방어하는 차지철의 목부를 향하여, 이어서 머리를 숙이고 신음중이던 대통령에게 접근, 후두부를 향하여 순차로 각1발씩 발사하고,
(나) 피고인 김계원은 만찬석상에서 김재규가 석상을 수회 이석할뿐 아니라 특히 15분간이나 외부에 나가 있다가 들어온 것으로 보아 결행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면서도 이를 용인하고 있던 중 하오7시40분경 김재규가『각하 잘 모시시오』라는 말과 함께 우촉손으로 툭 치는 것을 신호로 차지철및 대통령에게 권총을 발사하자 김재규의 범행을 순조릅게 하기 위하여 동소를 빠져나와 만찬석 입구에 서서 수행경호관들의 처치등 범행진행 상황을 예의 감시하고,
(다) 피고인 박선호는 식당현관앞 대기실에 있으면서 동일하오7시40분경 김재규의 권총발사를 신호로 이미 소지하고 있던 미제 38구경「리벌버」권총으로. 동소에 앉아있던 경호부처장 안재송및 경호처장 정인형에게 순차로 각1발썩 발사하고,
(라) 피고인 박흥주·이기주·유성옥은 주방옆에 주차한「제미니」서울1다2578호 승용차에 대기하고 있다가 동일 하오7시40분경 김재규의 총성을 신호로 주방쪽으로 달려나와 박흥주·유성옥은 주방 후문에서, 이기주는 주방창문밖「블륵」담에 올라가서, 박흥주는 독일제「웰슨」38구경 9연발 권총(총번 J-21974), 이기주·유성옥은 38구경 5연발 「리벌버」 권총 (총번 J-59962)(총번 J-58274)을 각 사용하여 주방에 있던 대통령운전사 김용태·경호원김용섭·박상범·식당종업원 이정오·식당운전사 김용남을 향하여 박흥주는 7발, 이기주·유성옥은 각 4발씩을 집중 사격하고,
(마) 피고인 김태원은 동일 하오8시5분경 M-16소총(총번 J-776874)을 소지하고 식당 대기실에 들어가 쓰러져 있는 안재송에게 1발, 정인형에게 2발, 식당만찬석내에서 신음하고 있는 차지철에게 2발, 주방에 쓰러져 있는 김용섭에게 1발을 각 발사하여,
(바) 대통령은 동일 하오7시50분쯤 두부총창등, 차지철은 복부총창등, 정인형은 경부총창등, 안재송·김용태·김용섭은 각 흉부총창등으로 위일시경 이곳에서 사망케하고 ,박상범에게는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우둔부 관통상을 가함으로써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샅해하고,
▲ 3, 피고인 김재규·김계원·박선호·박흥주·이기주·유성옥·금태원등은 전기 공모내용에 따라 계속하여,
(가) 피고인 김재규는 동일 하오7시43분경 식당현관에서 김계원에게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보안유지를 철저히 하십시오』라고 말해 김계원으로부터 『알았소』라는 대답을 들은후 본관집무실로 가서 육군참모총장과 제2차장보에게 큰일났으니 빨리 차에 타라고 하여 동승시킨후 차안에서 육군참모총장의 『무슨일이냐』는 질문을 받자 피고인인 자신이 범인임을 숨기고 대통령이 저격당하여 사망하였다고 하면서 보안유지와 북괴남침 위협만을 장조하며 중앙정보부로 가려고 하다가 육군참모총장의 제의에 따라 동일 하오8시5분경 육군본부「벙커」에도착, 각군참모중장에게는 적이 알면 큰일이라는 구실로 3일간대통령서거 사실의 보안유지를 강조하고 육군참모총장등 군 주요장성과 국무위원들의 동향을 감시함과 아울러 비상계엄을 선포하도륵 유도하고,
(나) 피고인 김계원은 하오 7시43분경 김재규로부터 전기 보안유지 강조의 말을 들은후 이기주가 소지하고 있던「리벌버」권총 1정을 교부받아 휴대하고 범행에 대한 보안유지와 사태가 불리해지면 피고인 자신이 대통령을 살리려고 했다는 구실로 삼기위해 하오 7시55분경 대통령의 숭용차로 대통령의 유해를 국군서울지구벙원에 후송하여 당직 군의관 소령 송계용에게 진단케한 바 『이미 5분전에 사망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소령 송계용및 대위 정규형에게 환자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숨긴후 『이 사람을 꼭 살려달라』고 하고 이곳을 경비중인 유성옥에게 의부와 연락을 금지시키라고 지시한 후 병원을 나와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 사무실로 가서 하오 8시40분경 비상소집된 최광수등 대통령 수석비서관 7명과 전 대통령 경호실차장 육군중장 이재전에게 『대통령각하께서 큰일을 당하였으니 대기하라. 각하께서는 무슨 일이 나서 병원에 계시고 차실장은 지금 부대를 지휘할 수 없으니 부대를 장악해서 경계를 강화하고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단속을 잘 하시오. 경호실의 병력출동은 필요없다』고 말함으로써 범행목적 달성에 시간적 여유릍 얻고 하오 8시50분경 이곳에서 국무총리 최규하에게『오늘 만찬회장에서 김재규와 차지철이 싸움 끝에 각하가 김재규의 잘못쏜 총에 맞아 서거하셨습니다. 계엄을 선포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하여 김재규가 대통령을 살해한 사실을 허위보고 하고 하오9시경 김재규로부터 육군참모총장도 여기있고 국방장관도 이리 올것이니 국무총리등과 함께 육본「벙커」로 오라는 전화연락을 받고 김재규가 육군참모총장을 설득, 군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직감하는 한편 하오 9시5분경 이곳에서 내무부 장관 구자춘·법무부장관 김치열로부터 『각하가 어떻게 된 것이냐』는 물음에 간신배를 제거한다는것이 각하께서 다치셨다고만 대답하여 동 김재규가 대통령을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계속 은폐하고
하오 9시10분경 이곳에서 다시 김재규로부터『국무총리를 모시고 오라』는 전화연락을 받고 국무총리·내무·법무부장관과 같이 하오9시30분경「벙커」내 육군참모총장실로 가서 그곳에 김재규와 같이 국방부장관 노재현 및 군 중요직 장성들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김재규가 먼저와서 군을 장악하고 있는것으로 생각, 국방부장관등에게 『각하께서 유고가 생겼읍니다. 차실장이 너무 강경해서 일어난 사고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지금부터 총리를 모시고 사태를 수습해야 된다고 제의하여 계엄령선포를 유도하고
하오 10시25분경 육군참모총장실내에 있는 화장실에서 김재규로부터 『사태수습이 더 급선무이고 보안을 유지해야 하며 최단시일 내에 계엄사령부 간판을 혁명위원회로 바꾸어 달도륵 유도해야 된다』는등 앞으로의 범행 전개과정을 듣고 김재규가 군부까지 완전장악하여 내란이 성공되어가는 것으로 판단하고 다시 하오 10시40분경 국방부장관실에서 김재규가 국무총리릍 비롯한 정부 각부 장관들과 동석한 자리에서 보안유지를 장조하며 대통령 유고에 따른 국내치안 질서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함에 있어 그 사유를 대통령 서거로 하지 말고 국내치안문제로 하자고 제안하자 이에 호응하여 대통령 유고로 인하여 계엄령을 선포하자고 건의하고,
(다) 피고인 박선호는 하오 8시경 식당 건너편에 있는 경비원 대기실에 가서 전기와 같이 김태원에게 차지철등을 확인사살하게 하고 경비원대기실에서 경비원들을 통제하면서 중앙정보부 남산분청에서 본관 집무실로 전송되는 보고문을 통해 병력 이동상황을 확인한후 김재규의 내란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고 병원으로 대통령의 유해틀 모시고 간 유성옥등에게도 계속 보안을 지킬것을 지시하면서 김재규의 지시를 대기하고,
(라) 박여주는 동일 하오7시45분경 식당밖에서 대기하다가 김재규를 따라 본관 집무실로가서 김재규 및 육군참모총장·제2차장보등과 같이 승용차에 동승하여 동일하오8시5분경 「벙커」에 도착한 후 「벙커」내 총장부관실에 대기하면서 김재규와 청와대에 있던 김계원 간에 전화연락을 하여주는 동시 범행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한편 동일하오8시40분경 김재규의 경호차량을 육군본부로 오게하고 경호조장 대위 김인수에게 남대문과 서울역 근처에 직원 각 1명씩을 배치해 병력 이동 상황이 있을때는 즉각 무전연락토륵 지시한 후 계속 국방부장관실로 김재규를 수행하면서 김재규의 신변보호와 아울러 지시를 대기하고,
(마) 이기주는 동일 하오8시5분경 식당에서 전기와 같이 박선호의 지시에 따라 김태원에게 위 차지철등을 확인사살케 하고 그후 청와대경호실에서 총성의 원인을 확인하러 왔을때에도 총성을 듣지 못했다고 거짓말하여 그들을 돌려보내는 한편 병원으로 대통령유해를 후송하고 간 유성옥 등과 계속 상호연락을 취하고 범행은폐를 위하여 27상오7시경 유석술로 하여금 위범행에 사용된 권총등을 매몰시키는 한편 김재규의 지시를 대기하고,
(바) 유성옥은 동일 하오7시45분쯤 위 식당주방에서 사살된 김용섭과 중상을 입은 박상범이 휴대한 38구경「리벌버」권총 각1정을 탈취하여 그중 1정은 위 식당「보일러」공 강무흥에게 보관시키고 다른 1정은 피고인의 허리춤에 휴대하고 동일 하오19시55분경 동 김계원과 같이 대통령을 병원으로 후송하여 대통령의 안면을 손으로 가리면서 환자가 대통령인 사실을 숨기고 병원장 공군준장 김병수에게도 외부와 전화를 걸지 못하게 제지 감시하며 경비원 대기실에 있는 이기주와 계속 전화연락을 취하는 한편 김재규의 지시를 대기하고,
(사) 김태원은 동일 하오10시쯤 서울종로구종로6가소재 이화여대부속병원에 입원 가료중이던 위 식당요리사 이정오에게 가서 동인에게 집에 전화하지 말고 부상이유를 단순한 오발사고라고 말하라고 보안지시를 하고 다시 위 경비원대기실로 돌아와서 동박선호로부터 육군븐부쪽에도 잘 해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계속 보안을 유지하며 식당부근 경계근무를 하는한편 김재규의 지시를 대기하던중,
(아) 동일 하오 11시30분경 국방부장관실에서 국무총리와 내무·법무장관등이 김재규의 주장에 반대하고 호응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김계원은 김재규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태도를 돌변하여 국방부장관부속실로 국방부장관과 위 육군참모총장을 불러내어 동인들에게 『김재규가 대통령을 살해한 범인이다』고 말하여 김재규가 군수사기관에 체포됨으로써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치고,
▲ 4, 피고인 유석술은 10월26일 하오7시40분경 경비원 대기실에서 휴식중 식당에서 요란한 총성과 함께 주방요리사 김일선으로부터 주방안의 경호원 요리사등이 생사불명의 총상을입었다는 말과 10월27일 상오5시쯤 대통령유고의「라디오·뉴스」를 들어 대통령과 차지철 일행이 샅해된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오7시경 위 대기실에서 이기주로부터 미제38구경「리벌버」6연발 권총(총번 36K-4491) 1정, 동 실탄5발, 동 탄피1개, 독일제32구경「웰타타」7연발 귄총(총번159270) 1정, 실탄4발, 망사「슬리퍼」1족 등을 매몰하라는 지시를 받고 동 물건들이 대통령등을 샅해하는데 사용된 증거물등이라는 점을 알면서 물건등을 은박지로 포장하여 대기실 정원 서쪽 분수대 뒤에 매몰함으로써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은닉한 것이다.
<사건일지>
▲ 10월26일=밤7시40분 첫발발사 ▲27일=상오4시 비상계엄선포 ▲28=전두환 계엄사합동수사본부장 수사중간 발표 ▲30일=전본부장,『김계원 전비서실장을 연행수사중』이라고 2차수사결과 발표 ▲11월3일=국장 ▲6일=합동수사본부.『군부·외세개입없다』고 수사전모 발표와 기자회견 ▲7일=현장검증 ▲13일=김재규등 8명을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 ▲26=김재규등 8명을 내란목척살인 및 내란미수·증거은닉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4일=육본 계엄보통군법회의(재판장 김영선 육군중장) 첫공판.
<변호인인 명단>
▲김재규(53)=이돈명 조준희 강신옥 홍성우 황인철 김정두 유택형 김제형 계창업 태윤기 나석호 염봉제 김교창 하경철 이세중 이돈희 민병훈 소중영 안명기 박두환 홍남순 ▲김계원(56)=김수용 이병용 ▲박선호(45)=강신옥 ▲박흥주(40)=태윤기 ▲이기주(31)·유성옥(36)=안동일·신호양·신선길·정상용(이상 4명은 국선변호인) ▲金泰元(32)=김홍수 ▲유석술(30)=김성엽
<재판부및 검찰판>
◇재판부 ▲재판장=김영선(육군중장) ▲심판관=유범상(육군소장) 이호봉(육군소장) 오철(육군소장) ▲법무사=신복현(육군준장)
◇검찰관 ▲검찰관=전창렬(육군중령) 이병옥(육군소령) 차거한성(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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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