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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식당 줄 서는 교황 … 다들 불편할까봐 벽 보고 식사

유흥식 주교(오른쪽)는 지난 4월 24일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담할 때 한복을 입은 성모상을 선물했다. 교황은 “아름답다”며 그 자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집무실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사진 천주교 대전교구]

꼭 한 달 남았다. 다음 달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순교자 124위에 대한 시복식도 거행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한 지 불과 1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 가장 개혁적인 지도자, 가장 사심 없는 지도자로 꼽힌다. 교황이 방한 중 어떤 파격적 행보와 울림의 메시지를 던져줄지 세계가 주목한다. 교황이기 전에 수도자이고, 사제이기 전에 영성가인 그를 잘 아는 이들을 수소문했다. 그들의 눈과 귀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미리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아시아청년대회’다. 이 대회 총책임자인 유흥식(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가 지난 4월 24일 바티칸에서 교황을 만났다. 40분간의 단독 면담이었다.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 때문에 전 세계에서 1000명이 넘는 추기경과 주교가 로마에 왔을 때다. 교황 단독 면담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 와중에도 유 주교는 교황을 독대했다. 한국 방문을 앞둔 교황의 각별한 배려이기도 했다. 지난달 말 대전 주교관에서 유 주교를 인터뷰했다. 귀국 후에도 오랫동안 말을 아꼈던 그는 ‘내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이란 큼직한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 교황 독대가 어떻게 가능했나.

 “당시 로마에는 전 세계 추기경의 3분의 2(150명)가 와 있었다. 주교까지 합하면 1000명이 넘었다. 교황님과 약속 시간을 잡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 교황님께 보고했더니 ‘메테레 인 프로그라마’라고 하셨다고 한다. 일정에 틈을 만들어 집어넣으라는 뜻이다.”

 - 직접 만났더니 어떤가.

 “한복 입은 성모상을 한국에서 가져가 선물로 드렸다. 보시더니 ‘아, 마돈나 코리아나!’라고 하셨다. ‘아, 한국 성모님!’이란 뜻이다. 비행기 탈 때 부서질까봐 꽁꽁 싸매서 가져갔다. 그 자리에서 포장을 다 풀더니 예쁜 쟁반 위에 올린 뒤 교황 집무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탁자 위에 놓으셨다. 그렇게 보시더니 ‘벨리시마’라고 했다. 이탈리아어로 ‘가장 아름답다’는 최상급의 표현이다.”

 유 주교는 자신을 소개하며 “대전에서 왔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애전”이라고 발음했다. 유 주교는 “다애전이 아니라 대전”이라며 몇 차례나 발음을 고쳐줬다. “사흘 뒤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 때 주교들이 차례대로 교황님께 인사를 드렸어요. 제가 교황님 앞에 섰을 때 보자마자 웃으면서 ‘대전!’이라고 정확하게 발음하시더라고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단독 면담은 시종일관 편하고 자유로웠다. 유 주교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트위터 등에서 위로 메시지를 주신 것에 감사 드린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때 처음으로 교황의 얼굴이 아주 심각해졌다.

 - 세월호에 대한 교황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드셨다. 그건 이탈리아 사람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취하는 행동이다. 그렇게 고개를 흔드는 교황에게 제가 물음을 던졌다.”

 - 뭐라고 물었나.

 “교황님은 한국에 젊은이들을 만나러 오십니다. 그런데 젊은이들 약 300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것도 저희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부활절 성주간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됩니까. 저는 그걸 하느님께 따지고 있습니다. 제가 교황님께 그렇게 물었습니다.”

 예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러분, 주교를 하려면 따져야 합니다. 하느님한테 따지고 대들어야 합니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될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은 기도를 통해 신을 만난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눈다. “대들고 따지라”는 교황의 주문은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하게 기도하라”는 우회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 교황은 뭐라고 대답했나.

 “주교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 이런저런 안 좋은 것들을 허락하십니다. 그럼 우리는 또 그걸 통해 더 좋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안 좋은 것들을 더 좋게. 세월호를 계기로 대한민국 국민이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답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에서 사목 중인 문한림 보좌주교 이야기도 꺼냈다. 문 주교는 1976년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 84년에 사제품을 받았고, 올해 보좌주교가 됐다. 교황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으로 있을 때 본당 주임신부를 맡았다. 해외 한인교포 출신 사제가 주교가 된 건 그가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주교를 통해 나름 ‘한국’을 경험했다.

 - 문 주교에 대해 교황은 뭐라고 말했나.

 “아르헨티나의 한 성당에 문제가 많아서 골치가 아팠다고 했다. 문 신부를 보냈더니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궬라갓죠 몰토 브라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아주 괜찮다’는 뜻이다. ‘그 아이’라는 단어를 쓰더라. 그만큼 친근하다는 의미다. 또 아르헨티나의 요양병원에 한국 수녀님들이 와서 일을 하는데 매우 헌신적이라고 했다. 그들과 함께 자리를 할 때 한국 음식도 잘 잡수셨다고 한다.”

 교황과 면담할 때 유 주교의 숙소는 바티칸 교황청이었다. 머무는 동안 교황청 직원식당을 이용했다. 거기서 유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상을 직접 목격했다. 그 역시 그에게는 감동이었다.

 - 무엇이 그렇게 감동이었나.

 “한국에 있을 때도 나는 매일 아침 라디오로 바티칸 뉴스를 듣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로운 메시지를 매일 듣고 묵상한다. 늘 궁금했다. 교황님의 일상은 어떤 걸까. 이번에 궁금증이 풀렸다. 아, 식사는 이렇게 하시는구나. 집무는 저렇게 보시는구나. 그런 걸 알게 됐다. 직원식당에서 직접 교황님을 봤을 때는 놀라웠다.”

 - 어떤 점이 놀라웠나.

 “바티칸의 식당은 아주 넓다. 교황님은 식당의 맨 구석에서 벽을 향해 앉은 채 식사를 하셨다. 맞은편 자리에는 비서가 앉는다. 교황님은 식당 안의 사람들을 볼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교황님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종의 배려였다. 교황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면 다들 조심스럽고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예전 교황님들은 별도의 공간에서 따로 식사를 하셨다. 이렇게 하진 않았다.”

 - 그만큼 소박한 건가.

 “그렇다. 검소하고 소박한 거다. 저도 그 식당을 이용했다. 뷔페식이었다. 식사 중간에 접시를 들고 야채와 모차렐라 치즈를 가지러 갔다. 음식을 담다가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딱 마주쳤다. 교황님도 직접 접시를 든 채 야채를 담고 있었다. 접시를 들고 제 바로 뒤를 따라오셨다. 그걸 보며 또 생각하는 거다. 아, 저렇게 사시는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바티칸 은행에 개혁적 인사를 단행하고, 지난달에는 이탈리아 마피아를 향해서 ‘파문 선언’을 했다. 유 주교는 개혁에 대한 교황의 접근법이 아주 지혜롭다고 했다.

 - 왜 지혜로운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어느 교황보다 개혁적이다. 하지만 그는 ‘개혁’이란 말을 쓴 적이 없다. 이탈리아어로 개혁은 ‘리포르마’다. 그는 개혁 대신 ‘칸비아레’라는 단어를 쓴다. 그건 ‘변화’라는 뜻이다.”

 - 바티칸과 마피아를 향한 교황의 개혁 드라이브는 강렬하다. 왜 ‘변화’라는 말을 쓰나.

 “처음부터 ‘개혁’이란 기치를 내걸면 반발이 심할 수 있다. ‘변화’라고 표현하면 거부감이 줄어든다. 밖에서 볼 때는 개혁이겠지만, 교황님은 교회 내부를 향해서 늘 ‘변화’라는 말을 쓴다. ‘개혁’이란 말은 거부하는 사람이 있지만, ‘변화’라는 말은 모두가 받아들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되자마자 교황청을 바꾸기 위해 8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명칭을 ‘교황청 개혁 위원회’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교황청의 모든 기구를 다시 보는 기구’라고 정했다.

 - 왜 그렇게 정했나.

 “다시 보는 거다. 올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혹시 예수 그리스도의 길에서 어긋나 있진 않나. 그걸 보자는 거다. 만약 어긋나 있다면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그게 교황님이 말하는 변화이고, 밖에서 보는 개혁이다. 교황님은 이런 말도 했다. ‘이렇게 봤더니 교회 안에는 정말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도 꽤 많더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부탁한다.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많은 기도를 해달라고. 그가 교황에 선출된 뒤 베드로 광장의 발코니에서 처음 대중과 만났을 때도 “우선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유 주교를 만났을 때도 교황은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달라. 한국에 돌아가면 모든 신자들에게 축복을 전해달라. 그리고 저를 위한 기도를 부탁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변화를 위한 물꼬, 개혁을 위한 물꼬를 틀 때는 많은 힘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힘을 기도에서 찾는다. 

대전=백성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유흥식(라자로) 주교=1951년 충남 논산 출생. 김대건 신부의 삶에 매료돼 고교 1학년 때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됐다. 로마의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유학(교의신학 박사학위)했다. 79년에 사제 서품을 로마에서 받았다. 천주교 성지인 솔뫼 피정의 집 관장을 맡았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역임했다. 2003년 주교 서품을 받았고 2005년 천주교 대전교구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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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