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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남북정상회담, 아쉬움과 바람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20년 전, 1994년 7월 25일부터 2박3일의 일정으로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은 7월 8일 급작스러운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이루지 못한 분단사의 한 장(章)이 되어버렸다.

 역사에서 ‘만약 이랬었다면’이란 가정을 전제로 전개되는 추론은 부질없는 노력일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좀 더 살아서 7·25 평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더라면 남북관계는 과연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라는 가상의 역사를 생각해보는 것은 회담 무산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20년 전 7·25 정상회담 합의를 가능케 한 상황의 논리, 남북 양측의 입장과 전략은 통일 추진의 먼 여정에선 반드시 되짚고 넘어야 할 귀중한 전례이며 교훈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일성 생전의 마지막 10년, 즉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전반의 세계사는 냉전의 막이 내려가면서 크게 요동치는 전환기를 겪게 된다. 소련의 해체와 독일 통일이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87년 민주화를 이루면서 한반도에서 남북 두 국가체제의 공존현실을 수용하고 평화적 협력을 증대시켜 하나의 민족사회를 복원하며 단계적으로 통일국가를 지향하자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여야 4당 합의로 채택하였다. 한편 90년에는 고르바초프의 러시아와, 92년엔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이 전개되던 중국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북한도 이러한 화해협력의 대세에 동승하여 91년 유엔에 남북이 동시 가입함은 물론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 더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이르는 ‘한반도의 봄’을 맞는 듯싶었다.

 그러나 93년 북한의 핵무기 개발 비밀작업이 미국에 탐지됨으로써 한반도는 이른바 1차 핵 위기를 맞게 된다. 미국의 페리 국방장관은 북한 핵 작업의 제거를 위해서는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이 고려될 수 있다는 강경자세를 취함으로써 한반도엔 전운이 감도는 긴장이 고조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군사적 대응에는 신중할 것을 촉구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책 모색에 무게를 실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김일성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의하였다. 6월 18일 평양에 도착한 카터는 미국 정부의 공식대표는 아니나 민주당 출신인 클린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김일성도 인정한 결과였다.

 김일성·카터 회담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판단한 김 주석이 내린 두 가지 중대한 결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세계는 미국의 유일초강대국 시대로 진입하였으므로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고립정책은 더 이상 북한의 장기적 존속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둘째, 따라서 비핵화를 수용하는 대가로 미국과의 수교를 포함한 교차승인을 달성하고 한반도의 남북 두 체제 공존과 상당한 수준의 경제원조를 보장받는 길을 선택한다. 7·4 공동성명 이후 계속 강조하여 온 민족의 자주원칙에 입각하여 남북 간 직접교섭, 특히 정상회담은 북의 새 정책을 집행하는 첫걸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의 남쪽 정부와 지도자는 대화와 협력의 상대가 되기에 적절한 명분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남과 북의 내부 사정, 미국을 비롯한 관계국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김영삼·김일성 두 정상의 입장과 성품을 고려할 때, 만약 그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더라면 남북관계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만들어졌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과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남북 간에 경색국면이 오래가다 보니 막힌 벽에 물꼬를 트는 데는 역시 정상회담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에 상황도 많이 달라졌고 주역들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미국의 유일초강대국 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부상이 돋보이는 다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북한이 처한 어려움, 특히 ‘예외화의 대가’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이 이중적인 것은 그러한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측도 설득과 압박이란 이중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년 전 그의 조부가 맞았던 결단과 선택의 순간이 김정은에게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6월 30일 북한 국방위원회 제안에 이어 7월 7일 나온 북한 정부성명에서 20년 전 세상을 떠나기 전날 김일성이 내린 결정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재삼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유지, 공동번영, 통일로의 단계적 전진을 위해서 남북 두 체제의 공존과 상호협력을, 그리고 20여 년 전에 함께 이룩하였던 한반도의 봄을 밑받침한 모든 남북합의를 예외 없이 존중하겠다는 자세로 함께 돌아가자는 것이 북한 새 지도자의 결심이기를 기대해보게 된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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