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트북을 열며] 세월호의 망각 곡선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전교 1등의 비법이 ‘철저한 복습’이라 하면 뻔한 것 같지만 일리가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이 그 근거다. 이론에 따르면 기억하려는 시도가 없다는 전제하에 인간은 평균적으로 1시간만 지나면 기억의 절반을 잊어버리고, 하루가 지나면 70%를, 한 달이 지나면 80%를 잊어버린단다. 중요한 건 이 ‘ㄴ’자 곡선이 그나마 완만해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반복적인 학습이라는 사실이다.



 새삼 이 기억과 복습의 연관성을 떠올린 건 지난주 한 전시를 찾아가서다. 서울 효자동 서촌갤러리에서 마련한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 전시회’. 세월호 참사가 난 지 85일째로 접어들면서 이제 대다수가 일상으로 돌아가 사고를 조금씩 잊어가는 즈음, 이 전시가 사람들의 관심과 추모 열기를 다시 이끌고 있다.



 예슬이는 사망자 293명 중 하나였다. 그림에 재능이 많았던 딸을 눈여겨본 아버지는 예슬이가 어린 시절부터 그린 그림들을 모아 왔다. 사고 뒤 한 인터뷰에서 전시회를 열어 주고 싶다는 사연을 듣고 서촌갤러리 장영승 대표가 행사를 제안했다. “잊지 않겠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왜 잊지 말아야 하는지 말하고 싶었어요. 사고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예슬이의 꿈, 아이들의 꿈이 멈췄다는 사실이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던 아이는 굽이 독특한 하이힐을, 남자친구와 맞춰 입고 싶다던 커플룩을, 언젠가 살고 싶은 거실이 넓은 집을 그렸다. 현업 디자이너들은 이를 바탕으로 실물도 제작했다.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하나같이 숙연했다. 눈시울이 하나둘씩 붉어졌고, 누군가는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중엔 기말고사를 마치자마자 인천에서 달려온 고3 여학생과 여고 동창 모임에서 함께 온 엄마들도 있었다. 이런 소식이 언론과 SNS로 퍼지면서 주말엔 하루 평균 1000명이 다녀갔다. 땡볕 골목길에 줄이 이어졌고, 갤러리 내부엔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메모장이 나붙었다.



 사고 이후 우리가 약속한 건 ‘잊지 않겠다’였다. 8일 내한 강연한 『위험사회』의 저자이자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의 발언 역시 망각을 경계한다. “세월호 사고는 특별한 재앙이었고,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회는 저절로 ‘탈바꿈’하지 않는다. 기자를 비롯한 여러 집단, 특히 시민들이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하나다. 꾸준한 복기요, 복습뿐이다. 그래서 ‘국민 안전의 날’이 지정되고 번듯한 추모 공원이 설립되기 전이라도 이번 전시처럼 그들을 떠올릴 수 있는 자리가 지속적으로 마련됐으면 싶다. 반갑게도 예슬이의 전시는 무기한 열린다. 갤러리 측은 다른 아이들의 그림을 더하고, 뜻을 같이하는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진행하며 전시를 계속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세월호의 망각 곡선이 그만큼 다르게 그려지고 있을 터다.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