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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치기 소년, 탄자니아 고아들의 천사가 되다

아직도 소년원 출신이라면 일자리 얻기조차 쉽지 않은 세상. 그래서 소년원 출신들은 다시 범죄의 수렁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소년원 출신도 있다. 이들에겐 인생의 스승, 그리고 수렁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아프리카 보육원 세운 박관일씨

초등 5학년 보육원 도망쳐 범죄
"간질 친구 닦아주던 봉사자 보며 나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죠"


박관일씨는 탄자니아에 제빵학교를 만들어 고아들을 가르친다. 소년원 출신인 그는 선교사가 됐다. [사진 법무부], [프리랜서 김성태]

#1 8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의 한 고물상.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박관일(43)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수거해온 쇠붙이와 전선 등을 트럭에서 내려 고물상으로 옮겼다. 박씨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보육원과 제빵기술학교를 운영하는 선교사다. 어쩌다 한 번씩 한국에 와 고물을 수집해 팔아서는 현지 활동비에 보탠다.

 그는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81년 보육원에서 뛰쳐나왔다. 신당동에서 몇 년 동안 구두를 닦던 그는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꾐에 빠져 소매치기단에 들어갔다. 범죄의 수렁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박씨는 85년 남대문시장에서 소매치기를 하다 잡혀 보호시설에 입소했지만 하루 만에 도망쳤다.

 이듬해 친구와 취객을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는 이른바 퍽치기를 하다 잡혀 1년6개월을 소년원에 있어야 했다.

 “거기서 생면부지인 저를 매주 찾아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먹여주는 기독교단체 그루터기어머니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간질로 쓰러졌어요. 어머니회원이 손수건으로 입가의 거품을 닦아주면서 친자식이 그런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데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소년원에서 나온 뒤 어머니회원과 관련된 선교회가 운영하는 국제기능선교학교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쉽게 돈을 버는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옛 친구들과 어울리다 두 차례 더 교도소에 갔다. “90년대 중반 목포교도소에서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탓하며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그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스스로 다른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뒤 옛 친구들과의 연락을 아예 끊고 선교회가 운영하는 청소년 보호시설 등에서 묵묵히 일했다. 선교사를 꿈꾸는 부인을 만났고, 2006년 9월 탄자니아로 갔다. 처음엔 보육시설 ‘겨자씨 마을’을 만들고, 2011년엔 원생들 자립을 위해 제빵기술학교를 세웠다. “이역만리 타국이지만 이곳에서 나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보육원을 만들었다고 했다. 간호사였던 부인은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다.

 활동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에 머물고 있는 요즘, 그는 가끔씩 소년보호시설에 들러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이렇게 얘기한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 스스로를 아껴라.”

가구수입업체 사장 된 장영철씨

동네 형들 어울리다 폭력의 길로
“3년간 선배와 연락 끊고 독한 각오 … 거울 앞 웃는 연습하며 일 배웠죠”


가구업체 사장 장영철씨는 소년원에서 나온 뒤 자신을 엇나가게 했던 선배들과 어울리지 않겠다며 3년간 연락을 끊었다. [사진 법무부], [프리랜서 김성태]

#2 “독하게 마음먹었습니다. 소년원에서 나온 뒤 3년간 알고 지내던 선배들과 연락을 끊고, 혹시 마주칠까 시내(충북 청주)에도 나가지 않았으니까요.”

 8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원IC 인근 가구물류센터에서 만난 가구업체 ㈜인비토디자인의 장영철(40) 대표. 그는 20여 년 전의 일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힘이 좋은 그는 중학교에 들어간 뒤 폭력조직에 관계된 동네 형들을 알게 됐다. 그 때문에 중 3 때 폭력을 휘두르다 2년간 소년원에 가게 됐다. 거기서 지금도 스승으로 모시는 최양재(49) 교사를 만났다. 최 교사는 그에게 씨름을 권했다.

 얼마 안 가 전국 소년원 체육대회에서 우승했다. 돌아오는 길에 최 교사가 밥을 사주며 말했다. “거 봐,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참 잘했다.”

 사춘기가 된 뒤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그때가 최 교사를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 순간이 됐다. 소년원에서 공부해 고교 과정을 마쳤다.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는 자신과 약속을 했다. “3년간 연락을 않는다. 오후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다. 시내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옛 선배를 만나 함께 술 마시다 보면 어찌될지 모른다”는 최 교사와 주변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다.

 약속을 지키며 가구점에서 일했다. 소년원에 가끔 면회 오던 아버지 친구 가게였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고, 제일 먼저 나와 제일 늦게 들어갔습니다. 지금 아니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각오로 일했던 때였지요.”

 10년간 그렇게 일해 10여 명 직원을 지휘하는 책임자가 됐다. 가구점 사장 조카와 결혼도 했다. 그만큼 신임을 얻었다. 2006년에 독립해 충북 청원가구단지에 가구 도매점을 차렸다. 지금은 가구 수입업체와 도매점 2곳을 운영하는 작은 사업가가 됐다. 2010년부터는 최 교사의 말에 따라 청주대안교육센터에서 소년보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과 상담하는 역할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한두 번 실수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지금도 결코 늦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소년범 보호시설 직원 된 정성욱씨

중2 때 부모 이혼 겪으며 방황
“나를 바로잡아 준 그곳 돌아와 … 아이들이 친형처럼 따를 때 보람”


#3 소년은 중2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겪으며 방황했다. 싸움을 벌였다가 청소년 보호시설에 가게 됐다. 답답한 생활이 참기 힘들어 시설에서 빠져나와서는 다시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럴 때면 용케도 담당 계장이 그를 찾아냈다. 그러곤 말했다. “지금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책상 앞이다.”

 처음엔 듣기 싫은 잔소리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애틋한 정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게 소년을 바꿔놓았다. 지금 그는 자신이 지냈던 바로 그 시설에서 취업상담사로 일한다. 전남 의 청소년보호시설에서 일하는 정성욱(25·가명)씨 얘기다.

 정씨가 시설에 있을 때 뒤를 쫓아다니며 계도한 담당계장은 서병용(48) 소장이다. 그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 정씨는 2년만 있으면 되는 시설에 4년을 머물렀다. “검정고시와 대학 진학 준비를 하는데 밖에 나가면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방사립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군대까지 마친 뒤 지난해 1월 시설에 취업상담사로 다시 돌아왔다. “여기서 지내고 사회에 나온 내가 여기 아이들을 돌보고, 함께 얘기하기에 적절한 인물 아닐까” 생각해서였다고 했다. 정씨는 “사실 사회복지학을 전공으로 선택할 때부터 나를 바로잡아준 시설에서 일하리라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설에서 지내는 22명 중 서 소장의 정성에도 일탈을 거듭하던 아이들이 정씨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때론 호통을 치지만 “몇 년 전 여기서 너희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던 내가 이젠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을 갖게 됐다. 너희들에게도 얼마든지 기회와 희망이 있다”고 하는 정씨를 친형처럼 여기게 됐다고 한다.

 “후배들이 나를 믿고 따를 때 보람을 느낀다”는 정씨. 하지만 아직 그조차 보호시설 출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길은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여성이 있는데 상대 집안에 아직 내 옛일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지 못했다”며 “가명을 써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특별취재팀=이찬호·위성욱·신진호·최경호·최모란·윤호진·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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