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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연 7조원 웨딩 지하경제


결혼을 일러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했습니다. 인생에서 결혼보다 더 큰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즘 2030세대의 결혼을 보면 ‘인륜지대사’ 대신 ‘현금지대사(現金之大事)’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결혼업체들이 신용카드를 안 받는 탓에 현금이 뭉텅이째 들어가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춘세대의 ‘신(新)결혼준비서약’은 이런 것입니다. 신랑·신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금 결제만을 약속할 것이며….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가 올 3월 발표한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혼부부 한 쌍의 평균 결혼비용은 6968만원(주택 비용 제외)이었습니다. 연평균 32만 쌍이 결혼식을 올리는 걸 감안하면 한국 웨딩 시장 규모는 약 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결혼 업계에선 이 가운데 30%가량이 현금으로만 거래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해 평균 약 7조원이 ‘웨딩 지하경제’로 스며들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청춘리포트는 결혼을 앞둔 2030 여섯 커플로부터 현금만 요구하는 웨딩 시장의 검은손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불이익을 피하려면 결혼비용 수천만원을 현금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이 여섯 커플의 험난한 결혼 준비 이야기를 ‘예비 신부의 다이어리’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위의 ‘돈다발’ 사진은 사례자 가운데 한 커플이 결혼 준비용으로 마련해놓은 실제 현금(1910만원)을 촬영한 것입니다.

카드 긁으시면 20% 더 내는 거 아시죠?

웨딩플래너에게 ‘스·드·메(앨범 촬영용 스튜디오·웨딩드레스·메이크업 업체를 뜻하는 약자)’ 계약 대행을 맡기기로 했다. 100만원대도 있지만 300만원은 넘어야 깔끔하게 나온다며 고액의 드레스숍과 스튜디오를 추천한다. 앨범용 사진 촬영·드레스 대여·신랑신부 메이크업 포함 가격이 무려 360만원! 당연히 현금 계산이 원칙이라고 했다. 신랑이 “카드 결제도 되긴 하죠?”라고 묻자 플래너가 코웃음을 쳤다. 카드 도 되긴 하지만 부가가치세(VAT) 20%를 추가로 지불해야 가능하단다. 다시 “현금영수증 발행은 당연히 되겠죠?”라고 묻자 이번엔 플래너가 미간을 찌푸렸다. 현금영수증 발행은 부가가치세 15%가 더 붙는다고 했다. 플래너는 계좌번호를 부르며 말했다. "신랑·신부님, 결혼 준비는 대부분 현금으로 하셔야 합리적인 가격으로 된답니다.”


싸다 싶은 여행사는 무조건 현금 결제만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가기로 했다. 일정이 하필 여름 휴가철과 겹쳤다. 초특가 상품이 있는 여행사를 찾기 위해 국내외 여행 사이트를 몽땅 뒤졌다. 비행기 티켓은 가격이 저렴한 해외 여행 사이트에서 알아봤다. 그런 다음 호텔만 별도로 국내 여행사들을 비교해가며 일일이 e메일로 견적서를 요청했다. 가격이 좀 싸다 싶은 곳은 100% 현금 결제가 조건이었다. 카드 결제가 된다거나 현금영수증 발행이 가능하다는 곳들은 다른 데 비해 60만~70만원 더 비쌌다.

현금영수증 발행이 가능한 지를 묻자 “저희는 외화 예금으로도 송금이 가능하다. 환율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며 엉뚱한 답변만 늘어놨다. 결국 현금으로 내는 대신 하와이에서 오픈카 대여 서비스를 제공받기로 하고 520만원에 결제했다.

마음에 드는 사진 고르려면 20만원 내세요

웨딩 촬영 날이다. 드레스숍에서 고용된 ‘헬퍼 이모님’이 드레스를 들고 미용실에 도착했다. 헬퍼 이모님은 촬영 4시간 동안 드레스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촬영이 끝나면 빌렸던 드레스를 다시 업체에 반납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이모님의 일당은 15만원. 4시간에 15만원이라니! 시급이 3만원도 넘는 셈이다. 결혼식에도 이 분이 있어야만 드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모님은 당연히 현금을 요구한다. 현금으로 총 30만원이 헬퍼 이모님에게 건네졌다.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업체에서 처음 말한 대로 되는 게 없다. 온통 추가 비용투성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계약금보다 100만원은 더 나올 거라고 얘길 해주든가. 웨딩 촬영이 끝나자 원본 CD를 받으려면 현금 2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단다. 돈을 안 내면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을 고를 수도 없다. 자기들이 마음대로 골라서 앨범을 구성한단다. 원본 CD 말고 보정 처리한 수정본 CD를 받을 때도 추가 비용을 받는다고 했다. 앨범에 들어가는 기본 사진은 20장인데 원본 사진은 800장. 800장 가운데 어떻게 20장만 고르나? 그런데 앨범에 사진을 더 넣고 싶으면 1장 추가할 때마다 3만원씩 내야 한다고 했다. 액자까지 추가로 맞추고 나니 웨딩 촬영하며 추가로 들어간 현금만 140만원이 됐다.

145만원짜리 커플링, 현금 내면 90만원에

현금 타령만 하는 이 업계 사람들도 이젠 익숙해졌다. 예물·예단 시장에선 ‘현금영수증’을 말하는 순간 진상 고객이 된다. 카드 결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45만원짜리 커플링이 현금으로 결제하면 118만원이라고 했다. 좀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하자 “지금 바로 현금을 주면 90만원”이라며 손목을 잡아끌었다.

신랑·신부와 양가 어머니 한복은 현금으로 하면 160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금영수증 이야기를 꺼내자 곧바로 200만원이라며 40만원 더 비싸게 불렀다. 현금을 주면 도매가로 해줄 수 있어서라고 했다. 예단 3총사라는 이불·은수저·반상기(240만원)도 당연히 현금 요구.

결혼 때 1캐럿 다이아반지를 한 친구는 견적이 1300만원인데 계약금 300만원은 카드로 하게 해줄 테니 1000만원은 현금으로 결제하라며 으름장을 놓더라고 했다. 현금영수증이 왜 안 되느냐고 따지자 보석상 주인은 “다른 웨딩 업체에 가봐라. 다 똑같이 현금 결제 하는데 우리 같이 약한 사람만 괴롭히지 말라”고 했단다.

나는 오늘 통장을 탈탈 털어서 현금 850만원을 예물·예단 업체에 건네고 돌아왔다. 현금 마련하느라 신랑과 다투기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약한 사람인지….

얼떨결에 예도·예포 … 추가 계산 하셔야죠

드디어 결혼식이다. 예식장은 카드 결제와 현금영수증 모두 가능한 곳으로 계약했다. 이제 더는 현금 때문에 씨름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현금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던 기억들이 스쳐갔다. 신랑도 나도 힘겨운 관문을 통과해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런데 예식 시작 직전에 예식장 직원이 숨을 헐떡이며 신랑에게 달려왔다. 직원이 신랑에게 귓속말로 무언가 속삭였다. 뭐지? 나 몰래 이벤트를 준비했나? “신부 입장!” 결혼행진곡이 울려퍼지고 식장으로 사뿐사뿐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요란한 브라스 밴드가 연주를 시작하더니 팡파르가 터졌다. 아, 이게 신랑이 준비한 이벤트구나. 이제 정말 우리가 부부가 되는구나.

 결혼식이 끝나고 정산하려고 사무실로 갔다. 그런데 뜻밖의 청구서를 받았다. 예도 20만원, 예포 20만원. 예식장 직원은 당일 추가 계약한 40만원은 당연히 현금 결제라고 했다. 신랑한테 물어보니 예식 직전에 직원이 다급하게 달려와 묻더란다. “신랑님, 신부님은 허락하셨는데 입장 전 축포 쏠까요? 결제는 당연히 현금이고요.” 허락했다고? 현금 결제를? 언제? 내가 언제!!

글=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이지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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