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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기금 모금 행사를 맡았던 남자 머라이어 캐리에게 부산 회맛 알게 한 남자

머라이어 캐리와 패리스 힐튼이 단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일부러 주방까지 찾아와 “기막히게 훌륭한 음식”이라며 악수를 청한 셰프. 미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에 세계적 셰프 장 조지와 나란히 자기 이름을 건 레스토랑이 있는 한국계 아키라 백(40·한국명 백승욱) 얘기다. 쟁쟁한 셰프가 모두 모여있다는 미식(美食)의 천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더 인정받는 유명 셰프지만, 처음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10대 시절, 그가 누빈 주 무대는 뜨거운 주방이 아니라 차가운 설원이었다. 그는 촉망받는 스노보더였다. 하지만 발목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은 후 우연히 구인공고가 붙은 일식당을 마주한 게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8~9일 롯데호텔서울 일식당 모모야마에서 연 디너 행사차 2년 만에 다시 한국에 온 그는 “나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데”라며 유창한 한국말로 너스레부터 떨었다.

아키라 백은 평소 그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입는 편안한 복장으로 인터뷰를 했다. 상의는 셰프복을 갖춰 입지만 하의는 청바지를 고수한다. 하루 14~15시간을 서 있기 때문에 편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키라 백(백승욱·40)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과 캘리포니아 LA할리우드호텔의 ‘옐로테일’ 총주방장, 라스베이거스 만달라베이 쿠미레스토랑 총주방장, 인도 뉴델리 JW메리어트 호텔 아키라백 레스토랑 총주방장,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MD 플레이스 호텔 아키라백 레스토랑 오 총주방장

1974년서울 출생
1986년 서울 학동초 졸
1987년 미국 이민
1990년 스노보드 시작
1992년 콜로라도 로키마운틴스쿨(사립고) 졸업
1996년 세계스노보드대회 하프파이프부문 5위
2003년 AIC(Art Institute Colorado)요리학과 수료
2003년 콜로라도 아스펜 ‘마츠히사’(노부 운영)
총주방장(최연소·최초의 비일본계)
2008년 미 NBC ‘아이언셰프’ 출연
2008년~현재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옐로테일’ 총주방장






사는 곳: 라스베이거스
운동하는 곳: 조깅(집 근처)
장 보는 곳: 없음(아내가 봄)
자주 가는 식당: 없다. 다양한 곳에 간다.

가족

아버지(69·백석원), 어머니(67·강영희), 누나(42·승연)
아내 티나 임(37), 딸 엘라(2)


빌클린턴 전 미 대통령과 함께. 그는 아키라 백 요리를 극찬한 사람 중 하나다. 머라이어 캐리와 패리스 힐튼도 아키라 백의 단골이다.

-한국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더 유명하더라.

“나 별로 안 유명한데…. 하하. 유명한 사람이 즐겨 찾긴 한다. 머라이어 캐리와 패리스 힐튼이 자주 오는데 도미 요리를 좋아한다. 참기름과 오렌지소스에 담가 숙성시킨 날치알을 도미 회로 감싸 초장과 함께 낸다. 어릴 때 아버지 따라 부산에 놀러갔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만든 요리다.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는 아스펜의 ‘마츠히사’ 총주방장 시절 아스펜에 올 때마다 꼭 찾았다.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땐 기금 마련 행사를 맡기도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원래 고기와 패스트푸드를 즐겼지만 심장 수술 후 식단에 신경을 쓰길래 은대구 쌈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할까. 솔직히 이런 유명인사들은 내겐 VIP가 아니라 그냥 손님 중 한 명일 뿐이다. 중국 손님이 VIP다. 한 번에 쓰는 비용의 단위가 다르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유독 미슐랭 가이드 스타 레스토랑이 드물다. 당신 레스토랑도 못 받았고.

“조엘 로브숑이 2009년 받은 게 유일하다. 지역 특성 탓이라고 본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호텔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특정 호텔 레스토랑만 미슐랭 가이드를 받으면 균형에 금이 가는 문제가 생긴다. 앞으로도 라스베이거스 레스토랑들은 미슐랭 스타를 받긴 힘들거라고 본다.”

-원래 스노보드 선수였다고 들었다.

“아버지의 겨울의류 사업 때문에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콜로라도 아스펜으로 중학교 때 이민 왔다. 당시 아스펜엔 동양인도 드물었다. 난 아무 말도 못 알아 듣겠고. 어느 순간 귀가 좀 트이면서 친구들 대화가 들리는데, 주제가 보드였다. 순전히 대화에 낄 생각에 스케이트보드를 배웠다. 그리고 고교 때 스노보드팀이 있었는데 이때도 스노보드를 잘 타야 친구들이랑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에게 졸라 스노보드를 샀다. 실제로 기술이 늘면서 말 거는 친구도 늘었다. 교실에서 못 사귄 친구를 스키장에서 만든 셈이다. 대학 들어갈 무렵엔 내가 살던 콜로라도에서 내로라하는 스노보드 선수가 됐다. 한국 국가대표가 될 뻔 하기도 했다. 세계 스노보드 대회 입상 소식이 알려진 후 세계 일인자인 지미 스코트 등과 함께 초청 받아 한국에 왔다. 그때 한국스노보드협회 관계자가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달라는 거다. 우리 가족 모두 흥분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한국은 국제대회 입상 성적이 없어 출전자격이 없었다. 해프닝으로 끝났다.”

- 그런데 왜 그만뒀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준비 중 발목 골절 부상을 입어 선수생활을 더 할 수 없었다.”

-운동선수와 셰프,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다 우연이다. 선수생활을 그만둔 후 아버지는 사업을 물려받길 원했지만 난 자유로움을 더 원했다. 무작정 차를 몰고 가다 문 앞에 직원 공고가 붙어있는 일식당(‘켄이치’)에 들어간 거다. 사실 스노보드 선수 시절 아르바이트로 일식당에서 자주 일해서 전혀 낯설지 않았다. 프로 스노보더로 일하려면 대회 참가를 위한 항공료 등 돈이 많이 든다. 대회 참가차 어느 지역에 가든 그곳 일식당을 찾아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참가비를 벌었다. 요리 잘하는 어머니 둔 덕에 어릴 때부터 항상 맛있는 요리를 먹어보기도 했고.”

-돈벌이용 아르바이트와 그걸 평생 업으로 삼는 건 전혀 다른 일인데.

“사실 ‘켄이치’에 들어갔을 때 주인이 나를 거절했다. 당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있었는데 주인이 머리를 빡빡 밀고오면 받아주겠다는 거다. 규율과 구속을 싫어하는 스노보더한테 머리를 밀라니.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집 욕실에서 면도기 들고 내 머리를 직접 밀고 있는 거다. 그날로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순순히 허락하던가.

“그럴 리가. 사업도 사업이지만 한국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 교육을 염두에 두고 이민을 온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번듯한 직장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스노보더에 이어 셰프라니. 1년 동안 나와 말을 섞지 않을 만큼 반대가 심했다. 고집을 못 꺾는다는 걸 알고 결국 스스로 풀어지셨지만.”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내 인생의 멘토다. 이민 후 학교 다니던 나와 누나보다도 더 먼저 자유롭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더라. 늦은 나이에 영어 배우겠다고 틈만 나면 미국 TV를 보고 또 봤으니. 얼마 안 지나 미국인 파트너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더라. 검소하고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귀감이 된다. 레스토랑 운영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일에 대해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다.”

1 스노보더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세계스노보드 대회에서 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 이민 후 힘든 시절을 함께 하며 더욱 돈독해진 가족. 왼쪽부터 아키라 백·아버지·어머니·누나. 3 레스토랑은 야구처럼 팀워크가 중요하다. 함께 일하는 스텝들. 4 아키라 백 레스토랑엔 어머니 작품이 걸려 있다. “어머니 그림이 내 요리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이유다. 5 아키라 백 레스토랑이 있는 인도 뉴델리 JW메리어트 호텔 로비. 6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사진 아키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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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인데, 요리의 출발은 일식이고 이름도 일본식 아키라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일부러 일식을 선택한 건 아니다. 그리고 나를 일식 요리사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식당에서 처음 배우기는 했지만 난 한국적 향수가 있는 요리를 한다. 그리고 아키라라는 이름은 어린 시절 별명에서 따온 거다. 한국서 초등학교 다닐 때 야구선수를 했다. 꽤 잘해서 당시 리틀야구 챔피언인 학동초에 스카우트될 정도였다. 이때 농구선수 서장훈도 같은 팀이었다. 일본으로 야구 유학 갈 생각도 했는데 아버지의 일본 사업 파트너가 내이름 승욱이 부르기 어렵다며 마지막 욱(旭)자의 일본 발음인 아키라로 바꿔보라고 제안했다. 일본 유학이 무산되면서 쓰지 않았는데 요리 입문 후 갖다 쓰고 있다. 부르기 쉬우니까. 별다른 뜻은 없다.”

-요리와 스포츠는 전혀 다른 분야인데, 야구·스노보드 다음이 요리라니.

“운동선수 경험이 요리에 도움이 된다. 야구 선수 시절 어린 나이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훈련받았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할까. 이런 경험을 통해 훈련을 반복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특히 야구는 요리와 비슷하다.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면에서 말이다. 또 기본을 중시하는 것 역시 스포츠와 요리는 닮았다. 기본 위에 예술적 감각을 더해야 훌륭한 요리가 된다. 스노보드에서 똑같이 360도 회전을 하더라도 기본기가 탄탄해야 그걸 바탕으로 다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켄이치를 시작으로 노부 등 유명 일식당에서 일했다. 레스토랑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배울 수 있는 곳. 배움의 기준은 당시 인기 TV프로그램 ‘아이언셰프 아메리카’였다. 여기 출연했던 미국 일식의 양대 산맥인 마사하루 모리모터와 노부 마츠히사를 무작정 찾아갔다. 고생은 했지만 새 시스템과 서비스, 매뉴얼을 배웠다. 예를 들어 모리모터는 근태에 엄격하다. 한번이라도 지각하면 해고다. 레시피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지점마다 똑같은 맛을 내는 비결이다. 반면 노부의 특징은 만들기 쉬우면서도 맛이 좋다는 거다. 노부는 최고의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재료를 원없이 다뤄볼 수 있었다. 노부는 일식을 일본이라는 국적 요리에서 글로벌 음식으로 만들어 보통 명사가 되게 한 사람 아닌가. 노부를 보며 일식 요리사로 나를 구속받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나라 요리나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됐다.”

-한국인 최초로 아이언셰프에 출연하기도 했다.

“아스펜에서 2007년 열린 미식 행사 때 ‘마츠히사’ 총주방장 자격으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가 후 ‘아이언셰프’를 제작하는 요리채널 푸드네트워크 PD가 명함을 주더라. 아이언셰프는 일본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건너 온 인기 프로그램이다. 1년이 지난 2008년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옐로테일’ 총주방장으로 옮기기로 했을 때 출연했다. 아이언셰프는 도전자가 내로라하는 다섯 명의 셰프(아이언셰프) 중 한 명을 선택해 경연하는 프로그램이다. 도전자 자격으로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인정받는다.”

-‘노부’의 최연소이자 비(非)일본계 최초의 총주방장이 됐다. 시기는 없었나.

“2003년 노부가 아스펜에 레스토랑을 내면서 총주방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일본계 선배 주방장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연차도 어린, 그것도 한국계를 총주방장으로 삼은 것에 대해 역차별이라느니, 연배 많은 셰프에 대한 테러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노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노부는 ‘노부’와 ‘마츠히사’ 두 브랜드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나는 두 곳 통틀어 유일한 비일본계 총주방장이었다. 당시 셰프 중 몇은 식당을 그만뒀다.”

-주방에서의 원칙이 있나.

“내 주방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다. 꼭 필요한 통화는 프론트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휴대전화는 주방 바깥에서는 쓸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음식 만들 때 집중해서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요리하다 전화를 받으면 흐름이 끊기고 산만해진다. 다른 사람까지 통화내용을 듣게 돼 방해가 되기도 한다. 유일하게 나만 전화를 쓸 수 있다. 예약없이 갑자기 방문하는 VIP손님을 위해 마케팅팀에서 거는 전화 등을 받아야 해서다. 진동모드는 기본이다. 깜빡하고 바꾸지 못해 벨 소리가 울릴 때가 있다. 그러면 ‘미안하다’고 외치고 바로 쓰레기통을 버린다. 올해만 그렇게 5개를 버렸다. 내가 일부러 싼 전화기를 사는 이유다. 또 삼진제가 있다. 잘못을 세 번 저지르면 짐을 싸야한다. 그중 하나가 시간엄수다. 5분을 늦든 1시간을 늦든 지각은 무조건 원스트라이크다.”

-요리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얻는다. 대부분 다른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배운 좋은 방법을 내가 다시 배워 우리 레스토랑에 차용한다. 갈라디너처럼 여러 나라 셰프들과 함께 일할 기회도 잦다. 많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달라.

“두바이·캐나다·미국·중국 등 여러 나라와 레스토랑 내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모국인 한국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배우고 나누겠다. 그리고 한국에 올 때마다 말하지만 한국에 내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 내 나라니까.”


글=송정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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