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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김추자





풍부한 성량과 떨리는 콧소리, 관능적인 몸짓으로 대중을 매혹시키며
1970년대를 풍미했던 김추자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33년 전 왜 무대를 떠났고,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왔는지 그녀에게 직접 들었다.

여성중앙“테스팅. 테스팅. 아! 아!”



김추자가 돌아왔다. 한반도 반쪽을 들어다 놨다 했다는 김추자의 컴백. 그녀는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곤 가장 먼저 마이크 테스트를 통해 특유의 거친 음성을 들려주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김추자 카리스마인가. 새 앨범 ‘It’s Not Too Late…’를 발표하고 전국 순회공연을 앞둔 그녀다. 무대에 서는 것은 33년 만이지만 기자 회견을 해본 지는 40년이 되었다고 한다.



“33년 만에 나왔습니다. 그동안 살림하고 애 키우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만 그러면서도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릅니다. 감회도 새롭고, 설레는 마음도 들고, 흥분이 되기도 합니다. 모쪼록 마음을 좀 써주십시오.”



새 앨범은 그녀가 과거에 발매한 LP 앨범 이후 처음 발매하는 CD 앨범이다. LP에서 CD로 음반 형태가 달라졌다는 것으로도 격세지감을 실감할 수 있다. 그녀는 1969년 ‘늦기 전에’로 데뷔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님은 먼 곳에’ 또한 같은 앨범에 수록됐던 곡이다. 그녀는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녀는 그야말로 하나의 사회 현상이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표어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였을 정도다. 남진·나훈아·이미자로 대표되는 트로트가 주류를 이루던 성인 가요 시장에 처음으로 새로운 장르의 진입을 가능하게 했다는 음악사적 의미 때문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간첩 소리 듣기 싫어 떠났던 무대

그리워서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록의 대부 신중현 음악의 전달자였다. 신중현은 그녀를 가수로 데뷔시킨 사람이다. 당시만 해도 가수가 되려면 유명 작곡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해서 실력이 쌓이면 레코드사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김추자는 신중현의 음악적 실험을 가능하게 했던 일등 공신이었다. 사이키델릭한 느낌의 한국적 록을 제대로 소화한 김추자는 그때까지 없던 서구적인 느낌의 음악과 강력한 가창력,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대한민국에 문화적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그녀는 1981년 결혼과 함께 더 이상의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열정과 에너지가 예전과 다름없어 보이는데, 활동을 쉰 기간이 33년이나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뒤에서 밴드가 음악을 맡아주고 나는 무대에서 신 나게 공연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일 때가 있었어요. 그 맛에 내가 노래를 불렀지. 신중현 선생님 말마따나 노래는 보디랭귀지라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더 좋은 노래가 나오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나더러 간첩이다 뭐다 말이 많으니까 연예계 활동을 하기가 싫더라고. CIA가 아니냐 하면서 남산을 오라 가라 하는데, 정말 노래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결혼을 했으니 이때다 하고 활동을 접은 거죠. 그때 나한테는 결혼 생활이 오히려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이른바 김추자 간첩설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거짓말이야’를 부를 때 허공을 가르는 그녀의 독특한 손동작이 북한에 보내는 신호가 아니냐면서 한때 그녀가 간첩이라는 루머가 돌았었다. 급기야 이 노래 ‘거짓말이야’는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까지 한다.



시련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1975년에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기소돼 연예협회로부터 무기한 제명 처분을 받고 2년간의 공백기를 갖기도 했다. 매니저의 소주병 테러 사건으로 100바늘 이상을 꿰매고 여러 차례 성형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 또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녀의 컴백을 가장 반가워한 건 가족이다. 독일에서 유학 중인 딸은 진즉부터 엄마의 가수 활동을 채근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신중현·김희갑 선생이 집에 와서 노래를 가르쳤기 때문에 남편이나 아이는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많이 봤죠. 그래서 딸이 ‘왜 노래 안 하느냐’고, ‘엄마는 목에 악기를 달고 다니면서도 아까운 재주 썩힌다’며 늘 성화였죠. 한번은 딸과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제가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 깜짝 놀라했다며 제 덕분에 자기가 대접을 잘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다시 나올 거면 1년이라도 빨리 나오는 게 좋겠다 싶어 이번에 나왔습니다. 내년이면 1년이 더 늙는 것 아닙니까(웃음).”



신중현 또한 병상에서도 그녀의 활동 재개를 격려했다. 그는 그녀의 음악적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는데, 누구보다 그녀의 음색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노래가 그녀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질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그녀의 말처럼 두 사람은 베스트 콤비다. 이번 앨범에서도 총 8곡 중 5곡이 신중현의 곡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해서 바로 갔어요. 침대에서 맨발로 내려오셔서는 제 두 손을 잡고 ‘왔냐’ 하시더라고요. ‘왜 이렇게 상하셨어요’ 했더니 사모님 하시는 말이 술병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매일 술을 드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미련한 짓 하지 마시고 술 끊으세요. 정 드시고 싶으면 하루에 한 잔만 마시고 그 이상은 하지 마세요’ 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노래를 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잘해보라고, 놀던 사람이 노래하면 좋지 뭐, 그러시더라고요.”



흔들어야 노래가 더 잘 나와

음악은 보디랭귀지니까




“부엌에도 라디오, 응접실에도 라디오, 침대 헤드보드 옆에도 라디오. 라디오마다 채널을 다 다르게 해놓고 하루 종일 들었어요. 한 곡 한 곡을 음미하면서 듣죠. 그 옆에서 떨어지지를 않으니까 우리 집 남편하고 아이는‘엄마가 노래에 미쳤다’고도 했어요(웃음)”
그녀는 시종일관 33년의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간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라디오가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노래 연습과 춤 연습을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늘 연습을 한 것과 마찬가지란다.



“부엌에도 라디오, 응접실에도 라디오, 침대 헤드보드 옆에도 라디오. 라디오마다 채널을 다 다르게 해놓고 하루 종일 들었어요.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주택에서 고래고래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를 수는 없고, 대신 한 곡 한 곡을 음미하면서 듣죠. 그러면서 ‘요즘 노래는 이렇구나’ 감을 잡기도 하고요. 낮에도 종일 듣고, 밤에도 잠이 안 오면 라디오를 틀었어요. 그러느라 무질서한 생활을 했죠. 밥 먹다 말고도 라디오 앞으로 달려가고, 그 옆에서 떨어지지를 않으니까 우리 집 남편하고 아이는 ‘엄마가 노래에 미쳤다’고도 했어요(웃음).”



지난 세월 그녀의 주요 일과는 라디오 청취였던 셈이다. 자연히 전통 가요부터 요즘 아이돌 음악까지 한국 대중가요의 변천사를 꿰뚫게 됐다. 나중에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항목별 점수도 매겨보고, 우리 노래와 외국 노래의 다른 점도 따지다 보니 절로 내공이 쌓일 수밖에.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김추자의 컴백을 두고 “25년 전부터 찾아 헤맸는데 못 뵙고, 이제야 소원을 이룬 것 같다”고 개인적 소회를 밝힌 후 “본인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가장 김추자다운 곡으로 돌아왔다”며 그녀가 오랜만에 들고 나온 음반을 높게 평가했다.



올해 우리 나이 예순넷의 그녀가 새롭게 음반을 내겠다고 했을 때 한쪽에서는 우려를 했다. 은둔하다시피 살아온 33년이란 세월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거였다. 그녀의 노래와 퍼포먼스가 녹슬었을 것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마침내 뚜껑이 열렸을 때 그간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의견이 대세가 됐다. 어떤 이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앨범에 실린 ‘몰라주고 말았어’ ‘고독한 마음’ ‘태양의 빛’ ‘내 곁에 있듯이’ ‘가버린 사람아’는 모두 신중현의 곡인데 과거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촌스럽지 않게 재현해내고 있다는 평가다.



가수 윤종신과 그의 동료 프로듀서는 자신들의 트위터에 “오, 이건! 어떻게 33년을 참으셨는지 경악입니다”라는 찬사를 표현했다. 이 같은 반응을 보면 그녀의 새 노래들이 그녀를 추억하는 올드 팬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세련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노래뿐만 아니다. 그녀는 퍼포먼스에 대한 의지도 대단했다.



“예전에도 음악이 나온 다음에는 춤이 자동으로 나왔어요. 원래 춤이라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떻게 추는지는 음악에 따라 달라지죠. 절더러 대한민국 여자 가수 중에 최초로 엉덩이를 흔든 가수라는데 이번에도 뭐, 당연히 흔듭니다(웃음).”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독보적인 개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든지 ‘대한민국 반쪽을 들어다 놨다 했다’든지 하는 말들이 과장이 아니었으리라는 짐작도 해본다. 그렇기에 지금의 젊은 가수들에게 당부하는 그녀의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가수들은 너나 없이 춤을 추면서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누구 하나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뭔가 달라서 좋다는 느낌은 못 받겠어요. 음악 색도 비슷하고, 헤어도 비슷하고, 화장도 비슷해서 어떨 땐 얼굴도 비슷해 보이더라고요.”



다르지 않아서 매력이 없다! 그녀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그녀는 6월 28일과 29일 서울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할 계획이다. 콘서트의 제목은 ‘늦기 전에’로 정했다. “이젠 나이도 있고, 더 늦기 전에 팬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열망이 담겨 있는 제목이다.



“내가 노래를 잘 불렀으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못 불렀으면 안 좋을 테지. 노래를 잘 못 부르는데 결과가 좋은 것도 이상한 일 아닙니까. 절더러 디바니, 전설이니 부르는 것도 영 불편해요. 그런 소리 빼고, 그저 김추자가 돌아왔구나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김추자.”





김추자는…

1951년 강원도 춘천에서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춘천여고 시절 응원 단장, 배드민턴·기계체조 선수로 활약했다. 창에도 소질이 있던 그녀는 춘천향토제에서 ‘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했다. 이후 1969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그녀는 대학교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를 했고 그 해 신중현을 찾아간다. 꼬박 한 달여를 기다린 끝에 통기타로 테스트를 받은 그녀는 신중현으로부터 “목소리가 탄탄하고, 현대적 감각이 몸에 배어 있다”는 칭찬을 듣는다. 그로부터 그녀의 가수 인생이 시작되었다. 신중현이 작곡한 김추자의 음악은 신중현이 추구하던 한국적 록이었다. 그녀는 신중현과 만난 후 ‘늦기 전에’와 ‘커피 한 잔’ ‘거짓말이야’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주옥같은 히트곡을 선보이며 데뷔 후 2년 사이에 12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신중현 이후로는 김희갑·이봉조 등과 의기투합해 ‘왜 아니 올까’ ‘그럴 수가 있나요’ ‘무인도’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취재=조영재 기자, 사진=하지영(studio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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