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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의 유레카, 유럽] 러시아 턱 밑에 EU 전진기지 … 무역보복 칼 빼든 푸틴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몰도바·조지아 간 협력 협정 서명식이 지난달 27일 브뤼셀에서 열렸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 조지아 총리,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왼쪽부터). [브뤼셀 AP=뉴시스]

지난 5일 러시아는 몰도바의 정육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위생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날엔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산 치즈 등 유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몰도바와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규제를 러시아의 명백한 경제보복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달 27일 양국이 조지아(러시아어로는 그루지야)와 함께 유럽연합(EU)과 포괄적 협력협정을 맺은 데 대한 앙갚음이라는 것이다. 세 나라는 모두 옛 소련국가다.

 러시아는 이들 3개국이 EU와의 협력협정 체결로 친유럽 노선으로 기울자 경제보복을 공언해왔다. 그리고리 카라신 러시아 외무차관은 “우크라이나와 몰도바가 확실히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몰도바의 포도주와 우크라이나의 초콜릿에 대해서도 금수조치를 내린 바 있다. 물론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가스파이프 손잡이를 언제라도 걸어 잠글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EU와 러시아가 제2라운드 전쟁에 돌입했다. 1라운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 합병을 둘러싼 신경전이었다면 2라운드는 경제전쟁이다. EU가 러시아 턱 밑까지 동진·확대하려는데 대해 러시아가 전방위 맞불공격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EU쪽이 우크라이나·몰도바·조지아와 손잡기 한달 전 러시아도 진영을 갖췄다. 지난 5월 29일 러시아는 옛 소련 국가인 카자흐스탄·벨라루스와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창설하는 안에 서명했다. 현재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관세동맹 가입국들인 이들은 내년 1월1일 EEU를 정식 출범시킬 예정이다. 역시 옛 소련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키르기스스탄은 올 연말까지 합세하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EEU를 발판 삼아 러시아 제국을 부활하려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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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EEU 3국의 경제규모를 합해도 2조5000억 달러로 EU의 프랑스 1개국가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 경제는 그렇지 않아도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서방 제재로 고립돼 가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투자 의욕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0.2%로 보고 있다. 뚜렷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한때 ‘집토끼’였던 옛 소련권 국가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묶어 두려고 협력이든 보복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공세를 펼 전망이다.

 우크라이나·몰도바·조지아가 EU와 포괄적 협력협정을 맺은 것은 러시아와 EU의 관계에서 보면 잠재적 폭발성이 큰 이슈다. 친유럽 노선을 명확히 표명한 이들 나라가 장기적으로는 EU에 가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이 “EU로서는 가장 야심적인 교섭에 의한 합의”라며 환영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EU 협력협정은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중심으로 한 경제부문과, 사법·안보 분야 협력 등을 규정한 정치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인구 5억의 세계 최대 단일 시장인 EU 28개국과 교역할 때 상품에 대한 관세 장벽 철폐, 비관세 장벽 축소, 서비스 및 자본 이동에 대한 장벽 축소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GDP(국내총생산)가 매년 12억 유로(약 1조6600억원)씩 증가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활성화는 물론 민주주의 증진 효과도 기대된다. 이들 국가의 유럽과의 통합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값싸고 품질 좋은 유럽 상품들이 무관세로 우크라이나에 들어온 뒤 국경을 거쳐 러시아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쟁력 높은 EU제품에 국내시장을 빼앗긴 협력협정 체결국의 값싼 상품들이 러시아로 유입될 수 있다. 유럽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등에서 상품을 조립하거나 가공해 옛 소련권 관세동맹 국가로 공급하려 할 수도 있다. 러시아를 코 앞에서 압박하고 시장을 직·간접적으로 공략하는 EU의 최전선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러시아로서는 EU의 동진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게 분명하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EU 협력협정은 러시아의 자유무역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보호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옛 소련국가들과 EU사이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관세장벽을 높일 가능성이 높다. 그 동안 소련권 독립국가연합(CIS) 자유무역지대 소속 국가들에 제공해오던 수입세 면제 등의 특혜를 폐지할 가능성이 크다. 또 우크라이나·몰도바 등을 통해 들어오는 유럽 상품들에 대한 관세 인상 등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EU와 협력협정을 맺은 나라들도 위험부담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옛 소련권과의 경제협력 관계 단절로 해당 국가들이 심각한 경제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옛 소련권 국가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 내 자유무역 시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몰도바는 여전히 CIS 회원국이다. 우크라이나는 CIS 탈퇴 절차를 밟고 있다. 조지아는 CIS를 탈퇴하긴 했지만 CIS권 자유무역지대와 관련한 여러 협정은 아직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와 주변 소련권 국가 간 마찰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몰도바는 러시아 뉴스채널 ‘로시야24’의 자국 내 방송을 금지시켰다. 앞서 우크라이나도 지난 3월 러시아 주요 TV방송의 국내 송출을 금지했다. 신경전이 가속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관세동맹을 맺고 있는 카자흐스탄이 EU와 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자원대국인 카자흐는 이미 1995년 EU와 협력협정 체결했다. 내년 초 출범하는 EEU 창설멤버인 카자흐조차 유럽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 푸틴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EU와 우크라이나는 오는 11일 러시아와 3자회담을 열어 우크라이나-EU 협력협정 체결에 따른 문제들을 논의할 예정이다. EU는 러시아에 냉정한 대응을 요구할 방침이다. 날이 갈수록 경제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는 러시아로선 EU와의 경제전쟁에서 이길 승산이 커 보이지 않는다.

한경환 중앙 SUNDAY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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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