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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에 프랑스 요리, 화려한 유기와 절밥 … 그릇이 품격을 만든다

지난달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관 100주년을 맞이한 한식 갈라 디너가 열렸다. 한 끼 식사 값이 50만원이었지만 세 차례 만찬 예약이 모두 꽉 찼다. 미식가뿐 아니라 유명 요리연구가들도 앞다퉈 만찬장을 찾았다. 그런데 요리연구가들 사이에선 식사 값만큼 화제에 오른 게 있었다. 바로 도예가 이세용씨가 만든 그릇이다. 만찬을 차린 한식연구가 이종국씨는 평소 이씨의 그릇을 애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지막 디저트 순서가 되자 앙증맞게 축소된 주안상 모양 접시 위에 떡이 소담하게 담겨 나왔다. 모두 탄성을 질렀다. 만찬을 다녀온 한 요리연구가는 “그릇도 음식이 돋보이는 데 한몫한다. 너무 탐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요리사에게 그릇 욕심은 신선한 식재료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었는데 담아낼 적당한 그릇이 없다면 음식이 완성됐다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자주 손이 가는 그릇이 생기고 그것은 취향이 되며 나아가 철학이 된다. 좋은 요리는 맛있는 그릇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요리전문가 4인이 있다.

 “음식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품격이 달라집니다.” 김치명인 이하연(56) 봉우리한정식 대표의 철학이다. 이씨는 최근 서울 종로구 식객촌에 한정식집을 내면서 도예가 김희종씨의 작품을 쓰기로 했다. “음식은 눈으로도 즐기기 때문에 좋은 그릇에 담겨야 음식의 맛과 멋이 더 빛난다”는 이유에서다. 한정식뿐만 아니라 밥상에 오르는 김치도 마찬가지다. 그는 “평소에 TV에서 고무 다라이(たらい·<76E5>)에 시뻘건 김치를 버무리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속으로 무지 화가 난다”고 말했다. 김치도 좋은 그릇에 담으면 격조 높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김치는 동그랗게 말아서 그릇에 담아요. 꽃이 피어 있는 듯한 효과를 주기 위해 홍고추를 쓰고요.” 그가 김희종씨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백자 표면에 은을 입힌 그릇이다. “김치 담그는 게 힘든 작업인데 좋은 그릇을 보면 빨리 예쁘게 담가 썰어놔야지 하는 생각에 너무 신이 나고 행복해요.”

 때로는 익숙지 않은 그릇을 통해 음식의 가치가 재발견되기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유기장 김수영씨의 그릇에 사찰음식을 담아낸 전효원(52)씨 경우다. 사찰요리 연구가인 그는 음식이 소박해 보이도록 자기·옹기 등을 선호하고 화려한 빛깔의 유기는 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유기에 담긴 사찰음식을 본 스님들이 먼저 ‘단아하고 귀해 보인다’는 평가를 내렸다. “유기 그릇은 공정이 대단히 복잡하거든요. 그래서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라갈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지요. 부처님 공양물인 사찰음식 또한 재료는 소박해도 정성이 많이 들어가요. 이 둘이야말로 안성맞춤 궁합입니다.” 무엇보다 유기는 화려하면서도 식기(食器)의 기능에 충실했다. 전씨는 “유기 그릇이 보온·보랭이 잘되더라”며 “앞으로 연꽃차는 연화 다기에 마시는 대신 유기 그릇에 담아 여름에는 얼음물을 띄워 차갑게, 겨울엔 광목으로 그릇 바깥을 감싸 따뜻하게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요리 전문가이면서 옹기(질그릇)를 고집하는 이도 있다. 바로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의 박효남(53) 총괄셰프다. 그는 “프랑스 음식이든 한식이든 요리는 옹기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옹기를 만드는 과정 모두 따뜻한 정(情)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도자기는 옹기를 거쳐 만들어집니다. 유약을 입히기 전까지는 다 옹기잖아요. 옹기는 어머니 같은 겁니다. 그 옹기에 음식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맛입니다.” 옹기에 대한 애정은 전북 진안에 있는 30년 지기 이현배씨와의 우정도 한몫했다. 옹기장 이씨 역시 힐튼 호텔 주방에서 초콜릿 등 후식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다. 박 총괄셰프가 담고 싶은 음식과 원하는 옹기 그릇 모양을 이야기하면 이씨의 손에서 바로 그릇이 탄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옹기그릇은 호텔에서 미식가들을 대접할 때 실제 사용되기도 한다. 이씨는 “정성 들여 만든 옹기가 쓰임을 찾으니 보람차다”고 화답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릇의 가치를 음식을 담아내는 식기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채나 총괄셰프인 김병진(38)씨는 “그릇은 음식의 가치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채나는 도자기 브랜드 광주요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광주요가 만든 그릇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1년에 2~3번씩 그릇을 바꾸면서 계절감을 표현한다. 여름에는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푸른색 계열을, 겨울이면 분청 등의 유약을 입혀 질감이 있는 그릇을 사용한다. 원하는 그릇 디자인이 생기면 광주요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릇을 구워내는 과정에도 전문가 못지않게 지식이 쌓였다. “그릇을 고르고 다루는 데 엄격해 번거로움은 있지만 정성을 들인 만큼 음식을 드시는 분께서도 신뢰와 감동을 느끼실 겁니다.”

셰프와 요리사 출신 옹기장 30년 우정
박효남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총괄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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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그릇(옹기)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프랑스 음식을 만들지만 옹기만 보면 괜히 마음이 설레고 들뜹니다.”

이현배 옹기장이 만든 그릇에 프랑스식 해물 스튜를 담아냈다. 투박한 색감이 프랑스 요리의 느끼함을 덜어준다.

정성 깃든 유기·사찰음식 … 최고의 궁합
전효원 사찰요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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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음식과 유기그릇은 정성으로 빚어낸 안성맞춤 궁합이라고 여겨집니다.”

김수영 유기장이 만든 그릇 속에서 화려한 연꽃차가 탄생했다. 단아하면서도 귀한 느낌을 준다. 정갈한 다기에 내어오는 연꽃차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유약으로 색깔 … 계절마다 다른 그릇
김병진 비채나 총괄셰프



“ 음식이 어떻게 담기느냐에 따라 그 음식의 모양이나 의미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요에서 만든 도자원형 평접시 위에 장어깻잎말이 찜을 올렸다. 평평한 접시를 사용하면 오목한 접시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을 담아낼 수 있다.

맛과 멋을 동시에 … 눈으로 즐기는 한정식
이하연 김치 명인



“좋은 그릇은 요리하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자극합니다.”

이하연 김치 명인이 직접 담근 해물보쌈김치를 도예가 김희종씨의 백자 그릇에 담아 선보였다. 절인 배춧잎 속을 해물과 채소로 채워 김치 국물에 담갔다. 빨간 국물이 백자와 대비돼 식욕을 자극한다.

위문희 기자

※ QR코드를 찍으면 13일까지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에서 열리는 ‘2014 공예플랫폼 공예가 맛있다’ 전시회에 나오는 요리전문가 4인의 ‘맛있는 그릇’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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