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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대통령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위기? 무슨 위기(Crisis? What Crisis?)’. 1978~79년 겨울 기간 동안 영국은 공공부문 노조의 잇단 파업으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에 빠졌고 국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이른바 ‘불만의 겨울’이었다. 그 무렵 외국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노동당 캘러헌(Callaghan) 총리는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시 영국 내의 상황을 두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 다음날 더 선(the Sun)지는 캘러헌 총리의 회견 내용에 대해 헤드라인으로 ‘위기? 무슨 위기?’를 대문짝만하게 뽑았다.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이 기사 제목은 캘러헌 총리의 상황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당시 영국 국민 대다수의 생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었다. 그해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권력을 넘겨주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긍정보다 부정의 응답 비율이 높아졌고,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도 역시 새누리당보다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된 데는 잇단 총리 지명의 실패와 사의를 표명했던 현 총리의 유임 등 인사(人事)와 관련된 문제가 영향을 미쳤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최근 상황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과 대응에 대해 적지 않은 국민들이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대다수 국민에게 준 충격을 대통령이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 상황을 정말 위기라고 느끼고 있는지 잘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대통령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야 할 만큼 국민들과 대통령 간의 간격은 컸던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전후로 한국 사회를 시기적으로 구분해야 할 만큼 이 사건이 국민에게 준 충격과 좌절감은 컸다. 지난 몇 십 년간 정신 없이 달려온 결과 우리 스스로 대견해 할 만큼 경제적 성장도 이루었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를 달성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주었다. 주변을 아랑곳 않고 앞만 쳐다보고 ‘빨리빨리’ 달리는 삶의 방식은 이제 한계를 드러냈고, 효율과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받드는 것도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과거처럼 국가가 혼자서 사회 전반을 이끌고 가거나 주도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이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일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누구보다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일 것이다. 대통령의 고뇌는 함께 일할 인물의 선정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비전의 제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다수 국민들의 눈에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 시점에 사의를 표명한 총리의 유임을 결정한 것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컸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국가개조’가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제기된 질문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답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개조가 필요하다는 규범적 수준을 넘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개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더욱이 과거와 달리 다양해지고 규모도 커진 우리 사회에서 ‘국가개조’라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대통령 혼자서 혹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그 한계를 보여준 정부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는 공허하게 들린다.

 이처럼 최근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모습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위기? 무슨 위기’라고 안이하게 대응한 캘러헌 총리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지지율의 하락이 보여주듯이 많은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고 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열린 광장에 머물기보다 닫힌 공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열린 공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고 다양한 견해를 듣기보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소수의 견해와 제언에 의존하는 경우 국민과의 공감대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에게도 현 상황은 위기다. ‘공감의 정치’를 위한 보다 개방적인 국정 운영이 절실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 약력=전 한국정당학회장, 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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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