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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급한 불 끈 김준기 '툭하면 위기설' 이번엔 끊나

크기라야 세 평(약 10㎡ ) 남짓할까. 동서남북 4면이 모두 벽으로 막혀 있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이 몇 개 있을 뿐이다. 여기에 책상 하나, 의자 몇 개가 놓여 있다. 김준기(70·사진) 동부그룹 회장의 집무실은 서울 강남의 한복판인 테헤란로 동부금융센터 34층에 자리 잡고 있지만, 거꾸로 외딴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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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주말도 없이 일을 즐긴다. 동부그룹의 ‘핵심’ 임원이라면 주말에 김 회장과 1시간쯤 통화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4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에도 익숙해 있다. 채권단의 구조조정 압박 강도가 거세지자 지난달엔 이틀 연속으로 회의를 진행한 적도 있다. 김 회장이 2008년 초 한국경영학회가 주는 ‘경영자 대상’을 받는 자리였다. 기자는 주말엔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는 가벼운 질문을 던졌는데, 김 회장은 “나는 산업 농사꾼”이라는 묵중한(?) 대답을 내놨다. 농부가 쉴 틈 없이 정성을 쏟아야 좋은 열매를 얻듯 산업 농사꾼 역시 튼튼한 씨앗(투자 아이템)을 찾고 뿌리내리게 하는데 휴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자칭 ‘산업 농사꾼’ 김 회장이 6일 위기설을 잠재웠다. 그룹의 제조부문 지주회사 격인 동부CNI가 김 회장의 자녀인 주원(41·여)씨와 남호(39·동부제철 부장)씨에게 동부팜한농 주식 2267만여 주(26.44%)를 635억원에 매각한다고 공시하면서다. 여기서 들어온 돈으로 동부CNI는 7일과 14일 만기가 되는 회사채 500억원을 갚을 계획이다. 앞서 채권단은 동부제철 자율협약에 합의했다. 지난달 24일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매각하는 이른바 ‘패키지딜’ 포기를 발표한 이후 확산되던 ‘동부 위기설’이 어느 정도 잦아드는 모양새다.

 하지만 길게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동부엔 위기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엔 전기로 건설에 1조5000억원을 투자했던 동부제철이 문제였고, 이전까지는 반도체가 골칫덩이였다. 김 회장과 동부에 반전 카드는 없었을까.

 2008년 초 프랑스 에라메트로부터 동부합금철(현 동부메탈)을 1조3000억원에 사겠다는 제안이 왔다. 합금철은 철강 제조과정에 들어가 품질을 높여 주는 소재다. 포스코가 만든 철강이 ‘라면’이라면, 이 회사는 ‘라면수프(합금철)’를 만든다. 동부는 합금철 세계 2위다.

당시 김 회장의 대답은 ‘노’였다. “(김 회장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게 주변 얘기다. 그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거래는 엎어지고 만다.

 매수 기회를 놓친 적도 있다. 하이닉스반도체가 주인을 찾고 있을 때였다. 투자은행들이 LG·한화·효성 등을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동부엔 “현금 1조원만 투자하면 나머지는 우리(투자은행)가 댄다. 경영을 일임하겠다”는 파격 제안을 던졌다. 김 회장의 대답은 이번에도 ‘노’였다. “메모리는 아니다. 반도체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고 한다. 동부는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비메모리 쪽에 투자해 왔다. 하이닉스는 2011년 SK의 품에 안겼고, 지난해 매출 14조1600억원에 영업이익 3조3800억원을 올린 ‘금덩어리’가 됐다.

 시스템 정비에 나섰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 경험도 있다. 김 회장은 2000년대 이후 삼성식 관리 경영을 이식하기 위해 삼성 출신을 대거 영입했다. 한때 180여 명의 동부 임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삼성 출신으로 채웠다. 하지만 서로 제 역할을 찾지 못하면서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는 게 동부 안팎의 평가다.

 하지만 서너 차례 비즈니스 기회를 잃었다고 모두 잃은 것은 아니다. 일부 부실을 털고 나면 동부는 여전히 건재하다. 채권단조차 “동부는 동양이나 STX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다시 매물로 나온 동부발전당진은 10% 안팎의 영업이익이 보장되는 사업이다. 포스코를 비롯해 관심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동부 측의 얘기대로라면 동부인천스틸 역시 관심을 보이는 중국 업체가 꽤 있다. 동부메탈 매각도 산은 측과 협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딜로이트컨설팅 김경준 대표는 “삼성·현대에 비해 30년 정도 늦게 창업했지만 그룹 규모를 갖추고 살아남은 곳은 동부가 유일하다”며 “같은 2세대인 대우·율산·벽산·한일 등이 좌초한 것과 대조적이다”며 동부 특유의 강한 생명력을 높이 평가했다.

 여기에 더해 장남 남호씨의 동부화재 지분을 추가 담보로 내놓으라는 채권단의 압박에 김 회장이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사다. 금융감독원은 김 회장의 두 자녀가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이 3528억원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가 6500억원 수준이다. 통상 주식담보대출 인정비율이 50~70%인데 이 범위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채권단에서는 “추가 대출 여지가 많은 만큼 해당 지분을 담보로 내놓아라”고 주장하고, 동부는 “대출 한도가 차서 담보로 제공해도 의미가 없다”며 방어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거센 불길은 잡아 한숨은 돌렸지만 아직 불씨는 곳곳에 숨어 있다. 동부금융센터 ‘산업 농사꾼’의 집무실에 다시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다.

이상재·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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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