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영혼의 기억 더듬어 480년 전 잉카로 시간 여행

1 페루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에서 열린 ‘인티 라미’ 축제의 한 장면. 올해도 야마(라마)들이 잘 커서 좋은 털을 제공할 수 있기를 태양신에게 기원하고 있다.
브라질의 카니발, 볼리비아의 오를로 카르나발과 함께 손에 꼽히는 남미의 축제가 있다.

부활 70년, 페루 태양제 ‘인티 라미’를 가다

페루 쿠스코에서 열리는 ‘인티 라미(Inti Raymi: 태양제)’다.

잉카족에게 새해 첫 날은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 6월 21일이었다.

3일이 지난 24일이면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식량과 제물을 모아 태양신에게 제를 올렸는데, 그것이 바로 인티 라미다.

스페인의 지배로 한동안 중단됐던 인티 라미는 1944년 부활해 올해로 70년을 맞았다.

그 뜨거운 축제의 현장에 중앙SUNDAY가 다녀왔다.

2 아르마스 광장에 잉카의 왕 ‘사파 잉카(Sapa Inca)’가 등장하고 있다. 매년 왕 역할을 맡으려는 배우들로 치열한 오디션이 벌어진다고 한다.
해발 3399m 지점이라 숨이 찰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언제든 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 인티 라미가 치러지는 매년 6월 24일이면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울퉁불퉁한 돌바닥을 마구 뛴다. 인티 라미 퍼레이드와 공연이 쿠스코 시내 곳곳에서 순차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앞자리에서 보려면 빨리 뛰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10솔(약 4000원)을 내고 플라스틱 의자를 빌려 뒤에서 밟고 서서 봐야 한다. 10솔이면 이 곳의 한 끼 식사값과 맞먹는다.

3 ‘인티 라미’의 하이라이트 공연이 벌어지는 삭사이우아망. 잉카 민족이 스페인군을 피해 왔던 마을이기도 하다. 돌 하나당 세로 길이가 3m가량 된다.
잉카족 최초 신전 자리에 들어선 성당
잉카 문명은 15~16세기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융성한 시기를 맞았다. 당시 ‘태양신의 아들’로 불리던 망코 카팍이 ‘세계의 배꼽’으로 지금의 쿠스코 자리를 정해 부족을 모았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잉카족은 태양을 섬겼다. 도시 중심을 태양의 길(Av. Sol)이 가로지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1532년 스페인이 잉카족을 지배했고, 1535년 인티 라미는 중단됐다. 유일신을 추구하는 가톨릭에서 태양을 섬기는 걸 놔둘 리 없었다. 잉카족이 처음으로 세운 ‘코리칸차(Qorikancha)’의 신전은 무너졌고, 그 자리엔 산타도밍고 성당이 들어섰다. 잉카 제국은 사실상 멸망했고, 민족에게 인티 라미는 추억으로만 남았다.

이후 400년 가까이 흐른 뒤인 1937년, 쿠스코에 아메리칸 예술학회(The American Institute of Arts)가 설립됐다. 43년에는 인티 라미 복원을 위해 각계의 쿠스코 출신 예술가들이 모였다. 그리고 44년, 쿠스코 삭사이우아망(Sacsayhuaman)에서 400년 전 잉카의 정신이 되살아났다.

잉카 민족은 마추픽추를 비롯한 그들의 주요 거주지에 빼어난 건축물을 남겼고, 이제는 일반명사가 된 ‘잉카 문양’의 도자기와 직물을 풍부하게 남겼다. 하지만 기록이 문제였다.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축제를 벌였는지에 대한 문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건축기술과 음악, 의상, 무용, 무대 연출 등을 오직 사람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다.

인티 라미 복원을 위해 모인 ‘전통 전문가’들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의상은 당시 직물을 짜던 방법대로 야마(라마)의 털을 염색하고 엮어내 만들도록 했다. 음악도 오직 전통 악기인 북과 피리 등만 이용토록 했다.

처음 인티 라미를 기획했던 움베르토 비달 운다(Humberto Vidal Unda) 박사는 44년 인티 라미 첫 개막 행사에서 “우리는 이 특별한 날(6월 24일) 융성했던 잉카의 과거와 만난다”며 “오직 역사의 복원만으로 우리는 태양신을 숭배하고 당시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4 삭사이우아망에서 벌어지는 제례 모습. 태양을 향해 “올해도 풍작을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원한다.
관광객도 따라하기 쉬운 페루 전통춤
인티 라미 전날, 전야제부터 화려하다. 행사 전날인 23일에는 저녁 6시부터 태양의 길을 중심으로 대형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일명 ‘시민의 행진(Desfile civico)’이다. 쿠스코 일대 다양한 조직(은행그룹, 통신사 직원, 마을 상인회, 학교, 레스토랑 업계 등등)이 모여 민속 의상을 입고 전통 군무를 선보이는 자리다. 당연히 자발적인 참여다. 그룹 수는 무려 200개에 달했다. 이 중에는 ‘일본인 관광 가이드’ 모임도 있었다. 일장기만 앞으로 내놨을 뿐 쿠스코의 전통 의상을 갖춰 입고 춤을 선보였다. 원칙대로 악기도 오직 페루의 전통 악기만 활용했다.

페루의 전통 춤은 규칙적인 스텝(Step)이 특징이다. 빠르지도 않고 엇박자도 없고, 선율에 맞춰 게 걸음을 걷듯 옆으로 쭉쭉 뻗어나간다. 어렵지 않다. 치마폭은 부채처럼 펼쳐지고, 양손도 곱게 펴지다 보니 여느 무용 못지 않게 아름답다. 진행방향이 있다보니 행진도 편하다. 밤이 되면 0도까지 떨어지는 쿠스코의 겨울 날씨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지속적으로 춤을 추다보면 댄서들의 이마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렇다면 이들은 언제 이렇게 군무를 준비했을까. 매년 하는 것이다보니 안무 패턴은 몸에 익었다고 했다. 그래도 호흡은 맞출 필요가 있는 법. 끼리끼리 집에 모여 스텝을 맞춰보고 자신의 몸에 맞게 옷도 재봉한다고 했다. 참고로 안데스 지방 쿠스코 일대 옷들은 천을 겹겹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옷 무게가 상당히 무겁다. 전날 밤 무겁게 자신의 의상을 옮기던 한 여학생은 “일 년 가운데 가장 신나는 이벤트”라며 “내일 꼭 구경오시라”고 웃었다. 인파가 너무 많아 행사 당일 이 여학생을 다시 만나진 못했다.

5 왕 사파 잉카가 치차를 바치며 태양신에게 기도하고 있다.
6 잉카의 성상(聖像) 문양. 의식용 칼인 투미(TUMI)를 비롯한 각종 잉카 유물에서 이같은 문양을 볼 수 있다. 7~9 제전 참가자들은 사흘에서 일주일 정도 금욕기간을 갖는다. 몸을 청결히 하고 태양신 앞에 나서기 위해서다.
4만 여 구름 관중 … ‘형제국’ 인도 대사도 참석
드디어 하이라이트, 인티 라미의 날이 밝았다. 오전 8시 반에 코리칸차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발디딜 틈 없이 다섯, 여섯겹으로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추산 인원만 4만 명이 넘었다. 중계 카메라들이 바쁘게 앵글을 잡고 있었다. 오전 9시, 동쪽 건물 틈 사이로 햇볕이 내려 앉았다. 오색빛깔 잉카인들의 복장을 한 공연단이 코리칸차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잠시 뒤 잉카 제국의 왕인 사파 잉카(Sapa Inca)가 산타 도밍고 성당 난간에 섰다. 연기가 피어 오르고, 사파 잉카는 태양을 향해 제례의 시작을 알렸다.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파 잉카 역할은 페루 배우인 니르바도 카리요(Nirvado Carrillo)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맡았다.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관중을 따라 골목을 뛰다 보면 다음 무대인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 도착한다. 오전 10시 30분, 광장의 동쪽을 제외한 세 모퉁이에서 잉카 민족이 속속 등장한다. 광장 가운데에는 잉카의 상징인 무지개천을 둘러 맨 황금신의 상이 있다. 이 시간이면 광장에도 볕이 길게 들어 온다. 사파 잉카가 먼저 감자를 신에게 바치고, 이어 오색으로 염색해 꼬아 만든 야마의 털을 제물로 바친다. 잉카의 여인들은 옥수수와 감자를 들고 광장 주변을 돌고, 그 뒤로 잉카의 남자들이 찻잎을 들고 행진한다. 이들은 동쪽으로 퇴장한다. 마치 태양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은 광경이다.

오후 2시부턴 쿠스코 시내로부터 2km 떨어진 삭사이우아망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페루의 군인들과 쿠스코 출신 무용단 650여 명이 2시간 동안 군무를 펼쳤다. 쿠스코 출신 무용단은 사실상 쿠스코 주민 자원봉사자다. 행사 기획자는 “참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 오히려 대형을 짜는 게 일이라면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화려한 퍼포먼스의 끝에 이르면 치차(옥수수로 만든 달콤한 맥주)를 태양에게 바치는 모션을 취한다. 우리나라의 제사처럼 조상께 술을 올리는 듯한 모습이다. 물론 음복도 한다. 태양신에게 바쳤던 치차를 무대 위 부족장들이 나눠 마시면서 퍼포먼스가 마무리된다.

다른 공연과는 달리 2시 공연은 입장료를 받는다. 모두 2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늦게 구입할 경우 140달러는 낼 각오를 해야 한다. 다만 쿠스코 지역 방송을 비롯해 각종 뉴스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도 해주고, 촬영 분을 후에 DVD로 판매하기도 한다. 관광지에 갈 때마다 ‘인티 라미 비디오’를 틀어놓고 파는 상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화질은 좋지 않다.

이날 행사에는 인도 대사도 초청됐다. 페루 사람들은 판게아(Pangaea·독일의 지구물리학자 A.베게너가 주창한 대륙 이동설. 하나의 초대륙이 현재의 7대륙으로 나뉜 것이라는 이론)에 따라 인도인들이 페루로 넘어와 정착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현지인들은 “원주민의 대다수가 인도 출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도 대사도 초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미 3대 축제 아닌 세계 10대 축제 자격 충분
올해로 70년째를 맞는 인티 라미는 어느덧 쿠스코 사람들의 자부심이 됐다. 쿠스코인으로서 정통 잉카정신을 계승한다는 생각도 짙다. 그래선지 쿠스코에선 잉카족이 쓰던 케추아(Quechua)어도 종종 들을 수 있다. 쿠스코 원주민 출신이라고 밝힌 한 가이드는 “나는 쿠스케뇨(Cuzqueno·쿠스코 사람을 일컫는 말)로서 언어와 문화, 전통을 이어가는 게 내 할 일”이라며 “스페인어 대신 케추아어와 영어로 가이드를 하겠다”고 말했다.

인티 라미를 주최하는 쿠스코 축제위원회의 아벨 로자스 아라곤(Abel Rozas Aragon·64) 부회장은 “쿠스코인이라면 누구나 축제 무대에 서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대개 20살~25살이면 성인 의례마냥 축제 한 가운데서 춤을 추고 제를 올린다고 했다.

아벨 부회장은 “쿠스코인들은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인티 라미가 다시 치러지기만을 눈물을 머금고 기다렸다”며 “쿠스코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과 그들의 영혼 속에 남았던 기억을 뭉쳐 만든 것이 오늘날의 인티 라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축제들이 상업화됐지만 인티 라미는 전통과 자부심을 지키는 제례(祭禮)로 남아있다. 남미 3대 축제가 아니라 세계 10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왜 동짓날인 6월 21일이 아닌 6월 24일에 인티 라미를 하는 것일까. 쿠스코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마추픽추에 가면 일명 ‘해달력’이 있다. 잉카민족은 해의 그림자가 물방울 모양의 표시를 침범하지 않을 때를 동짓날로 여겼다고 했다. 실제로 올 6월 21일에도 물방울 모양에만 그림자가 지지 않았다(직접 볼 수는 없고 해달력을 지키는 안내원의 휴대전화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잘 보여주지는 않는다). 현재는 그 날짜가 6월 21일로 정확하지만, 당시에는 계산이 틀려 ‘6월 24일’로 여겨졌다고 했다. 실제 동짓날과 사흘 정도 차이가 있어도,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24일에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티 라미 당일 이후에도 축제는 계속된다. 쿠스코 내 민속 춤 경연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에 흩어진 잉카의 후손들도 몰려들어 행진을 한다. 일주일 뒤, 사파 잉카가 야마의 심장을 태양신에게 바치는 것으로 축제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쿠스코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이듬해 펼칠 인티 라미를 준비한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