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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예능 괴리 있을 순 있지만 진짜와 너무 거리 먼 ‘진짜 사나이’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서 군대만큼 욕심낼만한 방송 소재도 드물다. 극소수를 빼면 성인 남자 모두가 다녀온 곳이고 가족까지 포함하면 결혼이나 자녀 양육만큼 보편적인 일이니까. 그래서 언제나 군대 프로그램은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배달의 기수’는 빼고라도, 엄마찾기로 전국민적인 화제가 됐던 ‘우정의 무대’, 그리고 ‘유머 일번지’의 ‘동작 그만’ 같은 코미디와 최근의 ‘푸른 거탑’같은 시트콤까지. 대중의 공감과 호기심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 곳이 군대다. 군대로서도 이보다 더한 홍보가 없으니 양쪽이 다 좋은 입장이다.

컬쳐#: GOP 총기 사고와 TV 군대 프로그램

하지만 결혼이나 양육처럼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데서 이 소재를 바라보는 양가적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좋아서 간 곳도 아니고 아주 특이한 환경일 수밖에 없는 군대 문화를 안방에서 온 가족이 예능으로 즐기면서 호감만 키우는 일이 분단 조국의 처지를 생각하더라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아들 군대 보낸 뒤 엄마들끼리 모여서 물어보면 “군복 입은 출연자들만 봐도 눈물이 핑 돌아 못 보겠다”는 엄마도 많다. ‘진짜 사나이 되는 기회다’며 등 떠밀어 보낸 아들이지만 진짜 사나이 안 돼도 좋으니 어떻게든 건강하게 있다 왔으면 하는, 진짜 사나이 될 기회 잃은 남의 집 아들이 더 부럽다는 숨은 진심을 절대 비난 못하겠다. 보내놓고 보니 말이다.

‘우정의 무대’는 단순한 군 위문 공연식 쇼였고 군인들이 엄마를 부르며 눈물 짓는 모습은 숨길 것 없는 진심이었다. 말 그대로 리얼한 감정과 눈물이었다. ‘동작 그만’이나 ‘푸른 거탑’은 어차피 픽션이다. 그때의 추억과 에피소드만을 가져온 리얼하지 않은 이야기다. 한번 기억 떠올리고 웃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MBC ‘진짜 사나이’는 리얼도 아니고 픽션도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어중간한 장르라는 데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든다. 어차피 진짜일 수 없는 예비군뻘, 외국인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기지만 진짜 총과 진짜 수류탄과 진짜 유격, 진짜 불호령이 등장한다. 적어도 몸이 얼마나 힘든지는 알겠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젊은 군인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육체적 고됨이 아니라 정신적 괴로움이라는 건 최근의 잇단 군인 사고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달 전방 총기 사고에서 가슴 쓸어내리며 사태를 지켜본 사람들 역시 동의하는 문제다. 아무리 ‘요즘 군대 좋아졌다’해도,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나약해서’라고 핑계 대봐도 소용없다. 아이들을 나약하게 키운 것도, 좋아진 요즘 군대에서 적응 못 하게 키운 것도 다 남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런 애들 데리고 어찌 됐든 무사히, 그러면서도 탄탄한 군대를 만들어야 하는 게 나라의 의무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에는 군인들을 진짜로 괴롭히는 그런 문제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힘든 훈련 치르고 나면 함께 어울려 위로하고, 진짜 부대 같으면 튀는 성격이라 구박 받았을 청년에게는 따뜻한 멘토가 붙고, 체력적으로 뒤처지는 동료도 ‘고문관’이라며 따돌리지도 않는다.

애꿎은 젊은 생명들이 희생되고, 그러면서도 가해자를 비난만 하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 터져나오는 순간, ‘리얼’을 시늉하는 군대의 버라이어티 쇼에는 아득한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류탄 하나 던지는 훈련을 하는데도 방탄조끼 챙겨 입는 화면 속 모습과, 탈영병을 추적하는데도 총도, 방탄조끼도 없이 동원되어야 했던 병사들의 현실만큼이나.

왜 예능에 다큐를 기대하느냐고, 그럼 일요일 밤 버라이어티 쇼에서 우중충한 현실의 뒷모습을 파고들어야 하느냐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 데 어떡하느냐고 하기에는 ‘군대’라는 특수한 소재를 택한 사람들의 최소한의 책임감이 필요해 보인다. 적어도 진짜 리얼일 수는 없어도, 현실의 모습을 담고, 그것을 바꾸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야겠다는 자세 말이다. 총기 사고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바로 그날 ‘스나이퍼’라며 총을 휘두르는 철없는 연예인 병사의 모습을 내보내는 무신경함, 뚱뚱한 병사에게 대놓고 끊임없이 ‘뚱뚱이’‘멧돼지’라는 자막을 날려 대는 배려 없는 방송을 보며 그런 걸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해외 파병까지 나가는 예능의 ‘스펙터클’에 대한 방송사의 일관된 목표와, 현실은 개선할 의지도 없으면서 화면에 깔끔하고 화기애애한 모습만 홍보하겠다는 군대의 목표가 합쳐져서 나날이 진짜 사나이들의 진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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