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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글탱글 달큰한 속살 ‘게중의 게’ 남해 꽃게

1 함께 끓인 새우와 전복은 모두 냉동실에 있던 것들. 통영 대부분의 가정이 저 정도는 상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운 좋던 평일, 출근했던 아내와 함께 밖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라 해물탕을 먹었는데, 마침 옆에 시장이 있기에 돌아가기 전에 잠시 장을 보았다. 이러저러한 채소를 좀 사고 상비용 새우나 조개 같은 것들도 조금 샀다. 그리고 거기서 꽃게를 발견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꽃게 철이 끝나가고 있음을, 빨간 대야를 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괜히 맘이 급해졌다. 꽃게를 좋아하는 아내는 더욱더 그러했다. 아기를 낳아 키우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 그래서 요즘 시장에 무엇이 새로 나오고 있고 무엇이 사라져 가고 있는지 미처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탓이었다.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꽃게는 눈앞에 있으니 한숨만 쉴 일은 아니었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19> 통영 꽃게

그렇다고 당장 살 수는 없었다. 꽃게를 본 순간 “꽃게탕!”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메뉴에 대한 합의는 이루었지만, 대부분의 해물 요리가 그러하듯, 적잖은 밑준비가 필요한 터라 저녁 8시가 되어서야 귀가하는 아내가 뚝딱 내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육류라면 자신 있지만 어패류 앞에서는 관람자가 되는 나 역시 호기롭게 덤빌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꽃게탕을 해먹을 날짜를 정했다.

D-Day 하루 전에 아내는 호박, 양파, 파, 마늘을 미리 다듬어놓고 띠뽀리와 멸치, 다시마로 육수도 우려냈으며 갖은 양념으로 양념장도 만들어놓았다. 아기를 씻기고 재운 직후부터 TV에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속전속결로 해낸 일이었기에 기합 같은 것도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남은 것은, 그런 아내의 노력에 어울릴 꽃게를 사오는 것이었다.

남해 출신 꽃게를 찾아서
그런데 막상 다시 서호시장엘 갔더니 그날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크고 싱싱한 꽃게는 자취를 감춘 후였다. 내가 너무 늦은 탓이었다. 한 가지에만 늦은 게 아니라 두 가지가 늦었다. 꽃게 철의 끝자락에서야 그것을 사겠다고 허둥대는 것부터 영 잘못된 생각이었을 뿐더러, 새벽에 열리고 아침 7시 무렵에 가장 붐비는 시장엘 정오가 가까워질 때에 어슬렁거리며 찾아갔으니 어디에서도 꽃게를 찾기 힘든 게 당연한 일. 내 아둔함을 탓하며 다시 차를 몰아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2 새벽부터 아침까지 성황을 이루는 서호시장은 관광객보다 통영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 3 손질을 마친 꽃게 속에는 적으나마 아직 알이 남아 있었다 4 끝물이지만 아직 살이 꽉 찬 꽃게. 늦어버린 사람에게 보내준 달콤한 호의였다
아마 꽃게가 서해에서만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먼 데서 온 꽃게가 뭐 그리 귀하다고 전전긍긍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꽃게는 남해에서도 난다. 원래 꽃게는 남해와 서해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놈이라 동해를 제외한 모든 바다에서 잡히는데, 다만 그 수가 서해에 더 많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해의 꽃게가 서해의 그것보다 맛이나 크기에서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려 크기와 맛은 서해의 그것보다 더 좋았다. 적어도 내가 여수에서, 그리고 통영에서 먹었던 꽃게는 그러했다. 살이 훨씬 탱글탱글했으며 단맛 역시 진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래서 이곳 통영 시장에서 팔리는 꽃게들은 대부분 통영 앞바다에서 잡은 것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꽃게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그 맛이나 가치에 대해 왈가왈부해봐야 먹을 수 없다면 모두 공염불이다.

지난 원고에도 소개했던 활어골목을 끝까지 올라가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빨간 대야를 두세 개씩 앞에 두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는 모두 스스로 혹은 가족이 잡아온 것들을 팔고 있기에 어제 있던 것이 오늘도 있다는 보장은 아무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꽃게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을 사는 게 문제였다. 아주머니는 대야에 있던 여섯 마리를 모두 팔아야겠다고 했고 나는 그렇게 많이는 필요가 없다고 했던 것이다.

“한몫에 팔아야지 두 마리 냄기모 나머지는 누가 살기라고.”
“둘이 한 끼만 먹을 거라 다는 못 먹어요.”
“그래도 그리 팔모 계산이 영 시원찮아가….”
“그럼 이렇게 이렇게 해서만 파세요.”

급기야 옆자리에서 낙지를 팔던 아주머니까지 합세해준 덕분에 나는 꽃게 네 마리를 사올 수 있었다. 어젯밤 아내의 꾸준한 칼질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꽃게를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집에 돌아왔다.

제철 재료를 제철에 먹는 즐거움
하지만 이번엔 아내의 퇴근이 늦어졌다. 내가 먼저 아기를 씻기고 재운 후에야 귀가를 했으니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꽃게를 손질하고 육수에 넣어 끓여 상에 올린 것은 9시가 넘어서였다. 그나마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두었던 덕분에, 그리고 아기가 자고 있던 덕분에 우리 부부는 모처럼 한가로운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모든 늦은 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꽃게탕은 맛있었다. 이제 끝물이었지만 살에는 탄력이 넘쳤고 노란 알은 달디달았다. 통영에서 난 것으로만 낸 육수는 시원하면서도 풍만한 느낌이었다. 우리 부부는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애초에 게를 먹음에야 그 속도가 빠를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더 느리게, 아니 정성스럽게 껍질을 까고 다리를 자르며 그 귀한 살을 발라먹었다. 늦어버린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지금이라도 즐길 수 있게 된 데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컸다. 그런 감정은 나보다 아내가 더 절실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은 후에도 30분이나 더 알뜰하게 꽃게를 붙잡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상을 치우고 그제야 불러온 배를 어루만지며 나와 아내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우리가 서울에서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면 이번 꽃게 철은 그냥 보내야 했을 거라고.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지 않으면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그 동네에서는, 늦어버린 사람에 대한 인정이라곤 떠나버린 버스처럼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곳 통영에 사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고마워 했다. 모든 게 늦어버린, 만찬(晩餐)이 있던 밤의 이야기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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