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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는 곳 나오고 수퍼스타 탄생해야 금융업계 활력

1 낙하산 인사 막아야 희망
KB금융계열 31명, 우리금융계열 28명…. 한 국회의원이 최근 6년간 사기업에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을 조사해 발표한 내역이다. 각 금융회사의 감사는 물론이고 지주회사 회장, 은행장 자리까지 아직도 정·관계의 낙하산 인사가 내리꽂힌다. 전문가들은 이런 낙하산 인사가 은행의 경영 혁신과 영속성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조직 활력에도 해를 끼친다고 지적한다. 과거 관료 출신의 경영자가 “일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금융업계에 규제가 워낙 많고, 규제를 완화하거나 적용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회의 후진성이 낙하산 인사를 양산한 셈이다. 최범수 사장은 “예전엔 어떻게 하면 규제를 회사에 유리하게 끌어오느냐가 금융권 간부의 주요 역량이었다면 지금은 엄청나게 빨리 바뀌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조직의 미래를 구상해야 하는 역량이 핵심”이라며 “선진국에선 교수나 관료 출신이 갑자기 최고경영자(CEO)가 되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흔들리는 금융산업] 전문가 제언


2 대박과 쪽박을 장려하라
올해는 증권업계에 기념비적인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월 애플투자증권이 자진 청산 절차를 선택한 데 이어 최근 BNG증권까지 퇴출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36곳이던 증권사가 지난해 62곳으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짐을 싼 증권사는 한 곳도 없었다. “부실한 회사는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당연한 명제가 증권업계에선 올해 처음으로 실현된 셈이다. 시장은 “공급 과잉이 심각한 증권업계에 청신호”라고 반긴다. 최근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0에 가까워질 정도로 경쟁이 심화된 것도 공급 과잉이 원인이라는 거다. 펀드와 주식 거래는 줄어드는데 2008년 이후 우후죽순 신생 증권사가 들어서며 서로가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박용린 실장은 “경쟁을 통해 잘하는 곳은 살아남고 못하는 곳은 도태돼야 시장의 활력이 살아나는 것은 사실”이라며 “자진 청산을 통해 퇴출이 시작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며 정부가 장기적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한 시장 정리를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지주회사는 시너지를 중심으로
98년 출범한 미국 씨티그룹. 금융지주회사란 점에선 우리나라 금융지주사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운영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씨티그룹은 은행과 보험, 증권 등 계열사를 한 회사처럼 운영한다. 우선 재무·인사·리스크 관리 등 경영 지원 업무는 지주사 차원에서 관장한다. 각 계열사에서 소매금융과 기업금융, 자산 관리 업무 등을 분리해 업무별 경영자를 둔다. 정보와 인력도 계열사를 넘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이른바 ‘매트릭스식’ 지주회사 모델이다. 국내 지주회사는 ^지주회사 내에서 은행의 비율이 너무 높고 ^업종 칸막이를 뛰어넘는 정보나 인력 교류가 없어 사실상 옥상옥 조직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범수 사장은 “우리는 금융계열사가 방대한 수직적 조직이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반면 종적·횡적으로 연결된 매트릭스식 조직에선 기능에 따라 조직과 인력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며 “이 모델이 정착하면 고객들도 원스톱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발판이 된다”고 말했다.

4 동일 호봉제를 없애라
서울시내의 한 대형은행 지점. 창구에 앉아 카드 발급이나 상품 가입을 돕고 대출 상담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정규직 사원이다. 하는 업무는 다 비슷비슷하지만 근무 연차에 따라 많게는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무슨 일을 하건 연차에 따라 비슷한 연봉을 받는 은행권의 동일호봉제 때문이다. 동일호봉제는 은행권의 비용 절감과 혁신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로 꼽힌다. 수익이 줄면 성과급이 줄어 연봉이 확 깎이는 증권사와 달리 은행은 기본급을 많이 주기 때문에 위기 때 인건비 조절이 어렵다. 상품 개발이나 보안, 기업 심사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를 맡아도 단순 업무와 비슷한 연봉을 주니 실력 있는 인재들은 높은 연봉을 좇아 해외로 나간다. 김우진 위원은 “고도성장기엔 매년 임금 상승분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같은 저성장 위기상황에선 비용 관리가 안 되는 임금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며 “직군에 따라 정년을 보장하되 임금을 낮출 것인지, 안정성은 적어도 높은 임금을 줄 것인지 회사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받을 건 제대로 받아라
“금융권의 수익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각종 수수료를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 지난해 7월, 취임 넉 달을 맞은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출입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은행 순이익이 너무 적어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같이 얘기했다. ‘금융 수수료가 오른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최 원장은 바로 입장을 바꿨다. “수수료를 올린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수수료 등 금융권 수익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수익 개선을 위해 넘어야 할 걸림돌이다. 순이자마진(NIM)이 오르면 “서민들을 고금리로 착취한다”고, 자동이체 수수료 등을 올리면 “서민 살림 휘청거린다”고 은행을 비난한다. 김동원 교수는 “카드 수수료나 예금 인출 수수료 같은 문제를 정치인들이 표를 얻는 도구로 활용한다”며 “서비스에 걸맞은 대가를 받지 못하면 금융회사가 수익을 낼 수 없고, 그러면 위험을 감수하는 대출을 할 수 없어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는다”고 강조했다.

6 사전 규제 대신 사후 규제를
“도저히 돈을 벌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을 규제한다. 죽겠다고 하면 다른 사업을 허용해 준다. 그걸로 연명하고 나면 또 다른 규제를 내세운다.” 전용식 위원이 지적하는 감독 당국의 행태다.
최근 일부 자동차보험전업사가 장기 보험을 허용받은 일이 대표적이다. 손해율이 치솟아도 “서민 살림에 충격이 간다”며 당국은 보험료 인상을 억제해 왔다. “적자를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하자 실손 보험 등 장기 보험을 팔 수 있도록 ‘당근’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보험료 책정의 기준이 되는 ‘예정이율’이 시장 금리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당국의 전형적인 가격 규제다. 전 위원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가격은 가급적 업계가 알아서 정하도록 내버려 두되 가격 결정 과정에서 잘못된 점이 있다면 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로 센 벌금을 매겨 일벌백계 하면 된다”며 “일일이 가격을 정해 주고 힘들다고 하면 당근을 주는 초등학생식 규제로는 금융이 선진화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7 수퍼스타를 키워라
미국 씨티그룹 수장을 지낸 억만장자 샌디 웨일. 폴란드 출신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증권사 사환으로 월가에 발을 내디딘 자수성가형 CEO다. 지난해 미국·유럽 금융 CEO 중 최고 연봉을 받은 골드먼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뉴욕 빈민가 출신으로 작은 원자재 투자회사에 입사해 처음 투자를 배웠다. 전문가들은 우리 금융계에도 바닥에서 금융을 배워 CEO가 되는 상징적 인물이 많아야 금융업에 인재가 몰린다고 주장한다.
최근 증권사 구조조정 바람을 타고 20~30대 인력들이 여의도를 떠나는 현상이 금융업계의 병목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범수 사장은 “낙하산 인사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평생 은행에서 일해 온 행원들은 길어야 1~2년 임원 생활 하는 걸 최대 목표로 삼을 정도니 젊은 인재가 왜 한국 금융계에서 평생을 바치겠느냐”며 “능력 있는 인재는 젊은 나이부터 임원 생활을 오래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연공서열 문화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8 연구개발비 아끼지 마라
“삼성전자는 연매출의 13%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그렇지만 금융권은 R&D 투자가 거의 없다.” 김동원 교수는 최근 잇따라 터진 금융사고,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지 않는 풍토 등을 투자 문제에서 찾았다. 97년 JP모건이 채무자의 신용위험을 분리해 사고팔게끔 하는 파생상품인 CDS를 개발한 것처럼 R&D를 통해 혁신적인 신상품을 내놔야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는 상품을 개발하면 감독 당국이 이를 지나치게 규제하지 않고, 시장도 상품을 받아 줄 만한 규모를 갖춰야 하는데 이런 여건이 잘 형성돼 있다고 하기 어렵다”며 “금융생태계 전반이 금융권의 R&D를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진 위원도 “금융회사들의 영업 행태는 ‘오는 고객 안 막고, 가는 고객 안 붙잡는다’고 해야 할 정도로 후진적”이라고 꼬집었다. 고객관계관리(CRM) 기법이나 빅데이터(Big Data) 등을 활용해 고객을 정교하게 분석해야 하는데 이런 기법을 개발한 금융회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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